볼보 S60R. 차 이름만으로 중형 세단임을 눈치챌 정도의 사람이라도 제일 뒤에 붙은 R의 의미에 궁금증을 갖게 된다. R이 뭘까. 고성능 세단에 따라 붙는 이니셜임을 안다면 상당한 내공을 가진 마니아라 할 수 있다. 숫자와 문자가 조합된 단 네 개의 글자 안에 숨은 뜻을 고스란히 풀어내면 이렇다. 고성능 중형 스포츠 세단. 같은 카테고리에 속하는 아우디 S와 RS, BMW M, 벤츠 AMG 등과 경쟁하겠다는 볼보의 스프린터다. 독일 스포츠 세단의 대안으로 만들었다는 스웨덴 볼보의 고성능 세단 S60R을 탔다.
▲디자인
차의 곳곳에는 R 표시가 박혀 있다. 스티어링 휠, 휠, 라디에이터 그릴, 계기판 등 눈길 닿는 곳마다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 만큼 강조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문자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그 R이 무얼 뜻하는 지 제대로 읽어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쉬운 일이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어떤 차든 가장 핵심적인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갖는다. 대부분의 차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다. 볼보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라디에이터 그릴을 딱 보면 이 차가 볼보인 지 안다. 바이제논 헤드램프, 범퍼 아래로 아가리를 쩍 벌린 공기흡입구 등이 역시 이 차의 중요한 특징이지만 이 차의 상징성은 라디에이터 그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어 스포일러는 보는 각도에 따라 직선과 곡선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모습이다. 기교를 부리지 않으면서도 나름대로의 격을 갖춘 디자인이다. 스포일러는 사실 언뜻 보면 있는 듯 없는 듯 살짝 꺾인 선 정도다. 도날드 덕의 꼬리같은 스포일러다.
실내에 들어서는 순간 확 깬다. 밝은 주황색 가죽 시트가 분위기를 살려준다. 회색과 주황색이 어우러진 실내는 기존의 다른 차들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점잖고 차분히 가라앉는 고급 세단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차는 많이 다르다는 걸 실내에 들어서는 순간 직감하게 된다. 계기판 역시 짙은 청색으로 구성돼 눈길을 끈다. 대시보드에는 내비게이션 모니터가 숨겨져 있다. 리모컨으로 전원을 켜면 모니터가 스르르 올라온다. 색다른 배치다. 다만 모니터는 전방 시야를 조금 가린다. 운전에 불편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엔진룸에는 5기통 엔진이 가로로 놓였다. 풀타임 4륜구동 방식이지만 가로 엔진을 채택해 공간효율을 높였다. 평상시에 앞바퀴가 95%의 구동력을 확보할 정도로 FF에 비슷한 구동방식을 갖게 된 것도 가로로 엔진을 배치한 덕이다. 평소엔 5% 정도의 구동력만 전해지는 뒷바퀴는 최대 70%까지 구동력을 확보하게 된다. 전자제어식 4륜구동장치가 적용된 덕이다.
▲성능
고성능을 강조하는 이 차에서 가장 중요한 성능상의 특징은 액티브 섀시 세팅이다. 쇼크 업소버를 전자제어해 상황에 맞게 조절해주는 것. 운전자가 컴포트, 스포츠, 어드밴스 중 하나를 고르면 전혀 다른 주행감각을 느끼게 된다. 편안한 승차감을 원하느냐, 아니면 아주 딱딱한 주행감각을 원하느냐 혹은 그 중간을 원하느냐에 따라 차의 반응이 달라지는 것이다. 특히 컴포트와 어드밴스의 차이는 차에 무관심한 이들도 쉽게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서스펜션 반응이 확연히 다르다.
어드밴스를 택하면 변속기는 자동적으로 S(스포츠) 모드로 변환된다. 이 상태에서는 노면충격을 온몸으로 느끼며 달릴 수 있다. 시트를 통해서 엉덩이, 핸들을 통해서 손이 노면상태를 그대로 전해 받으며 달리는 맛은 색다르다.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기는 마니아라면 어드밴스를 주로 택하게 된다. 고성능을 표방하는 R 모델임을 감안하면 역시 이 차의 맛은 편안한 승차감보다는 딱딱한 차체를 체감하며, 으르렁거리는 금속성 엔진 소리를 즐기며 내달리는 데 있지 않을까.
고성능 세단에 걸맞게 타이어는 40시리즈다. 235/40ZR 18. 납작한 타이어를 보는 것만으로도 믿음직스럽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시속 160km 정도는 무시로 드나든다. 그다지 고속이라는 느낌도 없다. 안정감이 특히 뛰어나서 시속 200km를 넘보는 속도에서도 불안감이 덜하다. 4륜구동장치와 우수한 서스펜션 덕에 제대로 고속주행을 즐길 수 있다.
조향성능을 매우 특이하다. 속도감응식 서보트로닉이 적용돼 차 속도에 따라 조향력이 달라진다. 전체적으로 스티어링 반응이 예민하다. 조향각은 좁다. 대개의 경우 세단의 스티어링은 다른 쪽으로 완전히 돌아가는 데 3바퀴 이상을 돌려야 한다. 하지만 이 차는 두 바퀴와 4분의 3 바퀴 정도를 더 돌리면 끝이다. 유턴할 때 그 만큼 조향각이 좁아져 회전반경이 커진다.
브레이크는 반응이 빠르고 정확했다. 잘 달리는 것 못지 않게 제대로 서는 게 고성능차의 미덕이다. 이 차는 그런 미덕을 갖췄다. 급브레이크를 밟자 엉덩이가 가죽시트에서 살짝 미끄러졌다.
▲경제성
이 차의 판매가격은 8,034만원. BMW M3가 1억원을 넘기는 것과 비교하면 매력있는 가격이다. 특히 뒷바퀴굴림 방식의 스포츠 세단과 비교할 때 풀타임 4륜구동이라는 매력도 작은 건 아니다. 대신 연비는 우수하다고 할 수 없는 수준. 네바퀴굴림의 취약점이다. 메이커가 발표한 연비는 8.0km/ℓ. 계기판에 나오는 실제 주행연비는 이 보다 조금 떨어지는 수준이다.
그 동안 볼보의 이미지가 가족과 안전을 강조한다는 것이었다면 이번 S60R은 그런 이미지에서 살짝 벗어나, 재미있는 차라는 인상을 준다. 볼보답지 않게 재미있고 파워풀한 고성능 세단이라할 수 있다.
사족. 아버지가 아들에게 충고하는 많은 말 중 하나를 소개한다. “5년 이상 쓸 물건이라면 너의 경제능력 안에서 가장 좋은 것을 사거라. 결과적으로 그것이 절약하는 것이다”
8,000만원 넘게 주고 이 차를 사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한다면 한 번쯤 떠올려볼 만한 말이 아닐까.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강경숙 기자 cindy@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