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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지 배론성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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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사영의 그 유명한 백서가 기록된 토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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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성요셉신학교가 된 학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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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단장된 잔디광장. |
‘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가을에는/사랑하게 하소서……/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가을에는/호올로 있게 하소서……/나의 영혼,/굽이치는 바다와/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시인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를 가만 읊조리다 보면, 왠지 가을엔 ‘호올로’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다. 현실의 무거운 머리를 떨치고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그 어떤 순결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 강원도 원주에 있는 배론성지는 바로 그런 곳이다. 굳이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이 곳은 가을날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지로 적합한 곳이다.
이 곳은 한국 천주교회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사건과 유적을 간직한 뜻깊은 곳이다. 다소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지명인 ‘배론’(舟論)은 치악산 동남 기슭에 우뚝 솟아 있는 구학산(985m)과 백운산(582m)의 연봉이 둘러싼 험준한 계곡 양쪽의 산골 마을로, 골짜기가 배 밑바닥처럼 생겼다고 하여 배론이라 불리어졌다.
1784년 이 땅에 천주교가 전례된 지 얼마 안돼 1791년 신해교란이 일어나자 천주교도들은 이 곳으로 피난해 와서 농사와 옹기구이로 살아가며 신앙생활을 하던 곳이다. 일반인에게는 이 곳이 그 유명한 ‘황사영의 백서’가 기록된 역사적인 장소로 더욱 기억된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덕이 뛰어났던 황사영은 16세에 과거에 급제해 정조의 귀염을 받았으나 정약종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천주교를 믿게 됐다. 1801년 신해박해가 일어나자 지명수배된 황사영은 서울을 빠져 나와 경상도와 강원도를 거쳐 마침내 제천 배론에 숨어들어 왔다. 이 곳에서 그는 이름과 성을 바꾸고, 옹기점 옆에 토굴을 파 그 속에서 8개월간 은거하면서 이 당시의 박해상황과 천주교 신도의 구원을 요청하는 백서를 집필했다. 하지만 그 계획이 발각되고 체포된 그는 23일간 취조와 형벌 끝에 대역부도 죄인으로 나이 27세에 극형에 처단됐다.
황사영의 체포로 압수된 백서는 고금천하에 둘도 없는 흉악한 글이라고 해 이를 의금부 창고 속에 집어넣어 근 100년동안 숨겨 오다가 1894년경 오랜 문서들을 정리 소각할 때 천주교인들의 손으로 다시 넘어 왔다. 가로 62cm, 세로 38cm인 흰 명주 비단에 한 줄에 110자씩 122행 1만3,384자로 작성된 백서의 원본은 로마 교황청 문서보관소에 보관중이다.
이 밖에도 배론성지는 1855~1866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성요셉신학교가 소재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천주교회사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생 중 한명인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 번째 신부가 된 최양업의 분묘가 소재한 지역으로 의의를 두고 있다.
지금의 모습은 1958년 원주교구에 속해 원주교구장이 개발 착수, 그 후 진입로를 비롯한 성지 일원을 말끔히 정리하고 단장했다.
*가는 요령
서울에서는 영동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 제천I.C(충주방면) - 5번 국도 - 봉양읍 구학리 배론성지에 이르는 길이 가장 빠르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이용하거나 청주, 조치원 방향에선 38번 국도를 타고 충주 - 박달재터널 - 봉양읍소재지(좌회전) - 5번 국도 - 봉양읍 구학리 배론성지에 이른다. 현지 교통편은 제천에서 배론성지를 오가는 시내버스가 있다. 25분 소요.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