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이슬러가 새차를 들여왔다. 300C다.
이 차를 처음 만난 건 미국 대사관저에서다. 가을 햇살이 쏟아지는 대사관저 정원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새로 부임한 미국 대사가 열심히 차 자랑을 하는 모습은 어쨌거나 보기 좋았다.
크라이슬러는 헤미 엔진을 강조했다. 모터스포츠에서 크라이슬러가 전성기였던 시절의 엔진이다. 53년 나즈카에서 우승했고, 64년 데이토나500 및 나즈카에서는 1~3위를 휩쓸었던 엔진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서 잠깐, 300C의 뿌리가 되는 300 레터시리즈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가야 한다. 300 레터시리즈는 55년부터 65년까지 생산된 고성능 럭셔리 세단 시리즈다. 300은 최고출력을 의미한다. 즉 2차대전 후 미국 자동차회사들이 강력한 성능을 추구하면서 최고출력 300마력에 이르는 차를 만들었다는 것. 이후 300 뒤에 일련의 알파벳을 붙여 크라이슬러 레터시리즈가 탄생했다는 것. 300C는 그 명맥을 잇고 있다는 설명이다.
전성기를 누리고 사라졌던 그 이름을 오늘에 다시 되살린 것은 그 때를 그리워함이다. 그 전성기를 오늘 다시 누리고 싶은 욕망이 담겨 있다. V8 5.7ℓ 340마력짜리 헤미엔진에는 가변배기 시스템에 전자식 5단 자동변속기를 달았다.
슈퍼카급 세단을 시승할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는 기자에게 주어진 시승차는 V6 3.5ℓ 엔진이다. 이럴 땐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쩝”
V8 5.7ℓ 헤미엔진은 이미지 메이커로 포진시키고 V6 3.5ℓ가 주력으로 운용된다면 시승의 의미가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헤미를 만나보고 싶은 욕심에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헤미를 그리워하며 헤미가 아닌 300C를 탔다.
▲디자인
디자인의 독창성은 평가자들의 입에 지퍼를 채워 버린다. 뭐를 닮았다느니, 카피했다느니, 이미지를 차용했다는 소리는 새 차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메뉴. 그러나 이 차에선 그런 태클이 생략된다. 디자인에서의 시빗거리가 없어서다. 그 정도로 독창성이 강한 디자인이다. 격자형 라디에이터 그릴과 큼지막한 헤드램프는 수직으로 배치됐다. 그릴 위로 크라이슬러의 상징인 골드 윙이 자리잡았다.
5m가 넘는 크기는 보는 이를 압도한다. 보닛은 길고 리어데크는 짧다. 오버행은 앞이 짧고 뒤는 앞보다 조금 더 길다. 엄청나게 길어 보이는 휠베이스도 눈길을 끈다.
옆모양은 언밸런스다. 벨트라인이 높다. 그 만큼 차창은 좁아졌다. 작은 차창은 뭔가 비밀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탁트인 개방감이 주는 맛이 있고, 적당히 밀폐된 실내에서 느끼는 안정감도 있다. 300C는 후자를 택했다. 실내에서 자연스레 차창에 팔을 얹어 놓기는 어렵다. 올라간 차창에 팔을 얹으면 자연스럽지 않고 엉거주춤한 자세가 돼서 폼이 안난다. 편하지도 않다. 괜히 팔을 어디다 둬야 할 지 고민하지 말고 팔짱끼고 좁은 창 밖을 응시하는 게 낫다. 창이 좁은 대신 뒷창이 완전히 열리는 건 보너스다.
가죽시트는 언제봐도 고급스럽다. 가죽보다 더 고급스러운 시트 소재는 아직 없는 듯하다. 충분히 고급스러운 시트에 앉아 캘리포니아 호두나무와 가죽으로 만든 클래식한 핸들을 잡았다. 대시보드의 소재는 그리 고급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변속레버와 센터콘솔 사이에 있는 컵홀더 수납공간이 여닫히는 질감도 좋지 않다.
뒷바퀴굴림 방식이어서 차 바닥에는 좌우를 가르는 높은 센터터널이 있다. 뒷좌석 가운데 앉는 사람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실내공간은 여유롭다. 앞은 물론 뒷좌석까지 충분히 여유가 있어 미국 럭셔리 세단의 면모를 세워준다.
▲성능
300C는 함부로 운전하기 힘든 체격을 가졌다. 덩치가 커서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스티어링 휠도 묵직하다. 가벼운 핸들을 기대해선 안된다. 차의 무게가 느껴질 만큼 적당한 무거움이다. 그렇다고 운전하기 힘들 정도는 아니다.
3.5ℓ 엔진은 SOHC 방식이다. 기본에 충실한 엔진구조다. 뛰어난 운동성능보다 무난함에 더 가치를 뒀음을 눈치챌 수 있다. 최고출력은 250마력. 에쿠스 3.5가 210마력이니 같은 배기량이지만 상대적으로 우수하다고 할 만하다. 하지만 차이름 ‘300’이 출력을 의미한다면 300C 3.5는 진정한 의미에서 300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마력 당 무게비가 7kg를 조금 넘어 고성능 세단 수준은 된다. 킥다운으로 가속하면 1.7t의 덩치가 앞으로 돌진하는 가속감이 느껴진다. 곧 고속주행상태에 이른다. 시속 100km 도달시간은 9.2초. 매우 빠른 편은 아니다.
움직이는 동안 차의 자세는 안정적이다. 직진은 물론 코너에서도 그렇다. 300C는 후륜구동차다. 직진에 강하고 과격한 코너에 다소 약한 게 FR 방식의 특징이다. 그러나 이는 일반론일뿐 300C는 급한 코너에서도 안정된 자세를 좀처럼 흐트리지 않았다. ESP 덕이다. 굳이 우리말로 풀면 전자식 주행안정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TCS(트랙션 컨트롤 시스템)과 ABS가 함께 적용돼 어지간한 흔들림은 즉시 제어된다. 요즘엔 이 TCS가 기본으로 장착되는 추세다. 어지간한 차에는 다 달려 있다. 안전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이를 믿고 막무가내로 차를 몰아붙여선 안된다. TCS가 물리학의 여러 법칙들을 무력화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TCS가 감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버리면 차는 여지없이 통제불능이 된다. TCS 믿고 덤비다간 다친다.
무게 때문일까. 차는 고속으로 치달을수록 안정감을 준다. 시속 170km에서 체감속도는 훨씬 밑돈다.
게이트 방식의 4단 자동변속기는 엔진 동력을 훌륭하게 컨트롤했다. 엔진 힘은 부드럽게 전달되고 변속충격은 미미했다. 5단을 넘어 6단 변속기가 적용되는 시점에 여전히 4단 변속기라는 게 아쉽긴 하지만 굳이 5단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완성도 높고 가격이 저렴한 4단 변속기가 비싼 5단 변속기보다 나쁘다고 할 수 없어서다.
이제 안전에 대한 메이커의 자랑을 한 토막 들어보자. 자화자찬이지만 근거가 있다. 지난 8월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실시한 앞좌석 충돌테스트에서 별 다섯, 최고등급을 받았다고 크라이슬러는 전했다. 그 만큼 안전하다는 것이다. 타이어에 5mm 이내의 펑크가 났을 때엔 스스로 바퀴 공기압을 유지해준다. 커튼형 사이드 에어백은 헤드라이너에 탑재됐고, 앞좌석에는 멀티스테이지 스마트 에어백이 있다. ‘스마트’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차 속도 및 충격 강도에 따라 에어백 팽창을 단계별로 조절한다는 것이다.
▲경제성
300C는 고급 세단이면서 가격은 낮게 잡았다. 가격 대비 성능으로 호소하겠다는 전략이다. 즉 ‘가격을 고려하면’이라는 전제를 달아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받겠다는 것으로 300C는 이 점에서 매우 호소력이 있다. 이 차의 가격을 보면 깜짝 놀란다. 동급의 국산차보다 싸서다. 300C 3.5는 5,680만원, 5.7 헤미는 6,580만원이다. 에쿠스 3.5의 시판가격은 4,768만원부터 5,930만원까지다. 에쿠스 4.5는 7,122만원. 300C가 에쿠스보다 싸다. 이 쯤되면 고민에 휩싸이는 사람들이 많겠다.
국산 대형차 소비자들의 귀가 솔깃할 테고 현대차 관계자들도 뜨끔할 지 모른다. 크라이슬러의 이 같은 공세가 시장에서 어떤 결과로 나타날 지 흥미진진한 구경거리다. 수입차와 국산차의 본격적인 전쟁을 300C가 예고한 셈이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강경숙 기자 cindy@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