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 겨울밤, 이따금 마을 어느 집에서 개 짖는 소리가 컹컹 들려오고 세찬 북풍이 문풍지를 울려대는 밤. 군불로 뎁혀진 아랫목에 둘러앉아 어른들은 얼음이 동동 뜬 동치미 무를 씹고, 아이들은 다락에서 꺼내온 곶감을 먹는다. 그 때 누군가 우스개 소리라도 하면 둘러앉은 사람들이 왈칵 웃음을 쏟아놓는다. 밖에는 사르륵사르륵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고 먼 산에서 아득히 들려오는 여우울음….
요즘 아이들에게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옛날 이야기’로 여겨지겠지만 돌이켜 보면 불과 몇 십여 년 전 우리가 살았던 시골의 겨울밤 풍경이다. 특히 ‘겨울밤’ 하면 자연스레 연상되는 게 곶감일 만큼 곶감은 우리 정서 속에, 우리 추억 속에 친숙하게 녹아 있는 별미다.
경북 상주는 그 추억의 보고다. 전국 곶감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곶감마을로, 상주에서도 노음산 아래 위치한 외서면 남장리는 첫손 꼽히는 곶감마을이다. 가을이면 남장리는 온 동네가 빨갛게 물든다.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한 알전구처럼 황홀한 빛을 발하는 주황색 감들이 나뭇가지가 휘도록 알알이 매달린다.
‘곶감은 한로가 환갑이다’라는 말이 있다. 한로가 지나면 감이 물러 연시가 되기 때문에 그 이전에 나무에서 감을 따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높은 산에 둘러싸인 지형적 특성으로 상주 곶감은 ‘상강’을 전후해 딴다.
그 무렵 상주 곶감마을은 가장 바쁜 한철이 된다. 연시가 되기 전 나무에서 ‘털어낸’(따낸) 감들의 껍질을 벗기고 줄줄이 엮어 타래에 건 뒤 건조장에 내거는 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감 껍질 깎는 일을 기계가 대신한다지만 그래도 동리 아낙네들은 삼삼오오 모여 바쁘게 일손을 움직인다. 부지런한 아낙들의 움직임으로 집집마다 건조장에는 알몸이 된 감타래로 가득 채워진다. 건조장에 매달려 온몸으로 바람을 맞고 있는 그 모양 또한 장관이다.
이렇게 건조장으로 옮겨진 감은 한 달에서 한 달 보름 정도 말려지면 맛있는 곶감이 된다. 대략 11월말부터 이듬해 3월까지 이 곳을 찾아가면 맛있는 곶감을 맛보고 살 수 있다.
좋은 곶감 고르는 요령은 곶감 사이사이를 잘 살펴 곰팡이가 없고 깨끗한 것을 선택한다. 색이 아주 검거나 지나치게 무른 것, 딱딱한 것은 피하도록. 또 곶감은 쓰임에 따라 모양과 크기, 건조 정도가 적당한 걸 사야 한다. 수정과에는 씨가 없고 작은 것으로 꼬치에 꿰지 않고 한 개씩 잘 말린 것, 곶감 쌈은 중간크기에 약간 덜 말라서 부드럽고 살이 많고 씨가 없는 것, 제상 등의 고임에는 꼭지가 위쪽에 가도록 납작하게 눌러서 말린 걸 쓴다. 보통 곶감 1접은 100개를 말하고, 100접은 1동이라 한다. 값은 한 접에 3만~5만원 내외.
*볼거리
▲남장사
신라시대의 천년고찰인 남장사는 진감국사가 불교음악인 범패를 최초로 보급한 사찰로 유명하다. 보광전 철조 비로좌나불과 후불목각탱은 국내 불교미술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손꼽힌다. 무엇보다 남장사를 찾아가는 큰 즐거움은 호젓한 절집 분위기가 그만이다. 요란한 단청으로 장식한 절들과 달리 단아하면서도 소박한 분위기는 절로 사색하는 마음을 이끌어준다. 절 뒤로 이어지는 산책로도 근사한 분위기다.
▲자전거 박물관
남장리 마을 입구에는 최근 문을 연 자전거 박물관이 있다. 자전거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국내외에서 생산된 여러 종류의 자전거들이 전시돼 있다. 이 곳에서는 자전거도 대여해주고 있는데, 차가운 겨울바람을 가르며 남장사까지 페달을 밟아 달려 보는 것도 재미있는 추억거리다.
*먹거리
남장리에서 나와 오른쪽 보은 가는 길목으로 4km 남짓 가면 남장송어집(054-534-5539)이 기다린다. 식당건물같지 않은 옛날집을 그대로 식당으로 개조한 이 곳은 넓은 앞마당이 모두 송어 양식장이다. 빠르게 물살을 가르거나 솟구쳐 오르는 송어떼를 직접 볼 수 있다. 신선한 송어회는 기본, 직접 재배하고 짠 야채와 들기름으로 맛을 낸 비빔회, 튀김, 소금구이는 물론 어린이를 위한 송어피자, 송어가스 등도 있다.
*가는 요령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김천 인터체인지에서 빠진다. 3번 국도를 타고 상주 -> 상주로터리 -> 국도 25번 보은 방향 -> 남장리 곶감마을.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