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은 대중차메이커란 이미지가 강하다. 근래들어 페이톤, 투아렉같은 고급차를 만들고 있으나 폭스바겐은 여전히 럭셔리 브랜드가 아닌 대중적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비틀과 골프 때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 두 차종은 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비틀 생산대수는 2,000만대를, 골프는 이 보다 많은 2,300만대를 넘기면서 지금껏 팔리고 있다. 골프보다 더 많이 팔린 차는 토요타의 코롤라가 유일하다.
한 메이커가 2,000만대 이상 판매된 모델을 둘씩이나 만들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폭스바겐이 대중차메이커의 지존인 이유다.
폭스바겐의 간판모델로, 그 잘 나간다는 골프가 지난해 가을 유럽에서 풀모델체인지된 뒤 지난 10월 한국에도 상륙했다. 이름하여 5세대 골프다. 74년 만들어진 1세대 모델 이후 30년만에 5세대로 진화한 것이다. 판매실적을 보면 그 30년동안 매일 2,100명이 골프를 구입했다는 말이 된다. 이 쯤되면 입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베스트셀링카라면 이 정도 신화는 이뤄야 되는 게 아닐까.
오랜 시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잘 팔리는 차라면 굳이 타보지 않아도 좋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베스트셀러의 롱런은 불가능하다. 어떤 매력이 있길래 그 많은 사람들이 골프를 선택했을까. 5세대 골프를 타고 꼼꼼히 살펴 봤다.
▲디자인
골프는 해치백이다. 해치백은 많은 사람에게 친근감을 준다. 꼬리가 잘린 잘룩한 모습이 어색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바로 그런 점이 누구에게나 친숙할 수 있는 요소가 된다. 어딘 지 어리숙한 면이 있어 누구나 부담없이 다가설 수 있다는 말이다.
새 골프는 동글동글해졌다. 이전 골프에 비해 직선과 각이 많이 사라지고 대신 곡면과 원이 중심을 이뤘다. 앞면, 뒷면 모두 어디선가 본 듯한 인상이어서 낯설지 않다. 이전 모델이 익숙해선가, 딱 보면 ‘골프다’하는 맛은 줄었다.
예나 지금이나 골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C필러다. 두꺼워서 강인해 보이는 C필러는 자칫 어색해지기 쉬운 차의 뒷모습을 훌륭하게 마무리해준다.
새 골프는 커졌다. 4세대 모델보다 길어지고(55mm), 넓어지고(24mm), 높아졌다(41mm). 그 만큼 실내공간도 커졌다. 자동차도 시대의 요구에 맞춰 진화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부분은 도어다. 도어 바깥부분이 내장된 쇠막대기에 붙어 있는 형태여서 부딪혀 찌그러졌다고 해도 도어 전체를 바꾸는 게 아니라 외장 패널만 교체할 수 있다. 도어를 모듈화한 덕이다.
폭스바겐의 엠블럼인 "W" 마크는 라디에이터 그릴에 큼직하게 자리잡았다. 뒤에서는 둥근 원 안의 W 마크를 누르고 잡아당겨야 해치백 도어가 열린다. 헤드 램프를 자세히 보면 전구가 자리잡는 부분 바로 앞에도 W 마크가 있다.
실내는 군더더기없이 간결하다. 불필요한 장식이 없다. 도어를 잠그는 스위치도 운전석 도어 손잡이에만 달랑 하나 있다. 검소하고 합리적인 독일 사람을 보는 듯하다.
그렇다고 안전장치를 소홀히 한 건 아니다. 설계단계에서 차의 충돌안전을 고려해 오프셋충돌은 물론 측면충돌에서도 실내를 최대한 보호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추돌사고의 경우엔 2005년도 기준을 이미 충족시켰다. 운전석 및 조수석 에어백과 측면 에어백, 커튼 에어백이 모두 기본 장착됐다. 대중적인 차라고 안전까지 미흡한 건 아니다.
운전석은 전동시트지만 조수석은 동그란 레버를 열심히 돌려야 시트를 누일 수 있다. 레버 하나만 잡아당기면 바로 등받이가 뒤로 넘어가는 시트에 익숙한 사람에겐 다소 불편할 수 있다.
▲성능
앞바퀴굴림의 해치백 세단. 한국에서는 소형차의 기준과도 같은 체형이다. 그러나 골프는 여기에 2.0ℓ 엔진을 얹었다. 크기는 소형, 성능은 중형 이상이다. 크기보다 성능을 중시하는 유럽차의 전형이랄 수 있다. 성능보다 크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강한 한국시장에서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운전은 재미있고 편하다. 차 크기가 작아 움직이는 데 부담이 없는 데다 힘은 150마력으로 센 편이라 자유자재로 운전할 수 있다. 가속을 멈추지 않으면 시속 180km까지 무난하게 도달한다. 그 이상 가속은 시간이 걸린다. 해치백답지 않게 고속주행에서도 안정감있게 차가 움직이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해치백은 속도를 높일수록 차체의 거동이 일반 세단형보다 불안해지고 이에 따라 운전자가 느끼는 불안감도 급격히 커진다. 골프는 이 같은 단점을 훌륭하게 보완한 듯하다.
골프의 엔진은 가솔린 직분사(FSI) 방식이다. 고압 연료를 직접 연소실에 분사해 성능과 연비를 개선하는 방식이다.
자동변속기는 6단으로 수동 기능을 겸한 팁트로닉이다. 5, 6단변속기는 이제 대세다. 6단 변속기는 주행과정을 좀 더 세밀하게 나눠 기어 단수를 정할 수 있는 만큼 효율성에서 앞선다. 저속에서 더 큰 힘을 낼 수 있고, 고속에서는 효율적으로 힘을 사용해 연비개선에도 유리하다. 대신 가격인상 요인이 된다. 여전히 4단 자동변속에 만족하며 이를 단 채 새 차를 선보이는 메이커들은 진지하게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자동 모드에서는 가속반응이나 변속이 더딘 듯하다. 수동 모드로 옮기면 더딘 감은 사라진다. 수동 모드에서도 변속을 하지 않은 채 가속 페달을 계속 밟아 rpm을 높이면 레드존 부근에서 자동으로 시프트업된다. 하지만 rpm이 치솟으면서 엔진소리가 커져 변속을 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메이커에서는 보디 쉘 디자인으로 소음 수준을 낮췄다고는 하나 해치백 차체를 타고 넘어가는 바람소리를 감추지는 못한다. 앞창과 사이드 미러에 걸리는 바람소리는 운전의 재미로 삼을 만하다. 대신 엔진소리, 도로소음 등은 조용한 편이다. 한참을 달려도 보닛은 뜨겁지 않다. 차가운 보닛은 엔진소리를 막는 데 그 만큼 신경썼다는 증거로 봐도 좋다.
EPS와 ESP가 있어 차의 움직임은 안정적이고 재미있다. 먼저 EPS는 전동식 파워핸들이다. 유압이 아니라 전기의 힘으로 핸들을 움직인다. 핸들을 잡은 손을 아주 조금만 움직여 조작해도 차체가 그에 따라 반응한다. 주행하면서 핸들조작에 따른 차체의 반응이 금방금방 느껴지는 재미는 색다르다. 자기학습 기능이 있어 도로 경사면을 인식하고 그 반대방향으로 차의 움직임을 미세하게 조절한다. ESP는 전자식 주행안정성 프로그램이다. 주행조건에 맞춰 차체의 자세를 제어해 안정적으로 유지해주는 것. 급격한 코너나 차의 미끄러짐 등이 있을 때 효과적이다.
언덕길에서 정지 후 다시 출발할 때 차가 뒤로 밀리지 않을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되겠다. 전혀 안밀리는 건 아니지만 초보 운전자라도 충분히 대응할 만큼 적게 밀린다.
▲경제성
골프는 고급차가 아니다. 고급차로는 지금과 같은 판매실적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대중적인 모델이어서 2,300만대 판매를 넘기는 금자탑을 쌓아 올릴 수 있었다. 골프의 국내 시판가격은 스탠더드가 3,180만원, 디럭스가 3,730만원이다. 수입차시장에서는 낮은 가격대다. 그랜저XG 3.0이 3,100만원 전후의 가격대다. 대중적인 수입차와 고급 국산차. 선택이 쉽지 않은 문제다.
골프는 소형급 차체에 중형급의 성능 그리고 국산 대형급의 가격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링카라고는 하지만 국내에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긴 힘들다. 작은 수입차는 인기가 없어서다. 아직은 작은 틈새시장이지만 나름대로 선전하면 골프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강경숙 기자 cindy@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