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지를 시속 240km로 질주하며 벤츠를 앞서는 차. 영화 택시 1, 2편에서 그려진 푸조 406의 모습이다. 택시 1, 2편은 푸조를 위해 만들어진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편에서 406은 벤츠를 우습게 따돌릴 뿐 아니라 성능대결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최고의 차로 등장한다. 창작의 자유를 앞세워 철저하게 ‘푸조를 살리고 벤츠를 죽인’ 영화다. 그 영화를 봤던 사람이라면 푸조에 대한 인상이 제법 강하게 남아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정작 푸조측에서는 이 영화를 그리 반기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도심을 질주하는 게 거의 폭주 수준이어서 푸조 이미지가 오히려 손상 받았다는 설명이다.
영화에 등장했던 406이 후속모델 407에 바통을 넘겼다. 그 407이 얼마 전 한국에서 발표회를 가졌다. 407은 우리로 치면 중형급 차다. 아래로 307, 위로 607을 갖춘 푸조 라인업의 허리에 해당하는 모델이다. 영화 속 406을 떠올리며 407의 핸들을 잡고 서울 도심을 질주했다. 시승차는 배기량 2.2ℓ의 직렬 4기통 엔진을 얹었다.
▲디자인
407은 세단이지만 쿠페와 구분하기 힘든 모습이다. 옆에서 보면 보닛에서 지붕을 지나 리어데크로 이어지는 선이 쿠페의 그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C필러와 트렁크 라인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특이하다. 잘 살펴 보면 C필러가 트렁크와 만나는 부분이 일종의 벽을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옆에서 차를 보면 뒷창의 윤곽이 보이지 않는다. 트렁크 리드 끝부분은 살짝 꺾어 올려 스포일러 구실을 하게 만들었다. 고속주행 시 다운포스를 얻어 차가 뜨는 걸 막아준다.
앞창과 뒷창은 많이 누웠다. 운전석에 앉으면 창 밖으로 보닛조차 보이지 않는다. 대시보드 위로 운동장만큼 넓은 공간이 있다. 넓은 건 좋은데 딱히 활용하기엔 어중간한 그런 공간이다. 창을 누이면 보기에는 좋지만 실내공간 활용성은 그 만큼 떨어진다. 활용할 수 없는 죽은 공간이 많이 생겨서다.
범퍼 위로는 푸조의 사자 엠블럼이 많이 누워 하늘을 향한 채로 자리잡았다. 반면 범퍼 아래로는 라디에이터 그릴이 거의 수직으로 위치해 있다. 지붕에서 A필러를 거쳐 범퍼까지 잔뜩 누운 채로 이어지는 선이 갑자기 수직으로 뚝 떨어지는 형국이다. 그 수직벽 한가운데 라디에이터 그릴이 입을 쩍 벌리고 있다.
엔진룸은 비교적 공간이 여유있는 편이다.
▲성능
손 안에 쏙 들어오는 스티어링 휠이 인상적이다. 운전할 때 차에서 전해오는 첫 느낌은 매우 중요하다. 그 이후 상당한 기간동안 차에 대한 이미지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 첫 느낌이 때로는 영원히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기도 한다.
407은 매우 강력하면서도 특이한 첫인상을 줬다. 딱딱한 서스펜션이 그랬다. 눌러도 눌려지지 않을 듯한 서스펜션이 주는 첫 느낌에서 이 차의 성격을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승하는 동안 내내 그 짐작이 크게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407의 성격을 정의하자면 스포츠 세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하드 서스펜션에 날카로운 핸들링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운전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줬다. 이런 차에서 포근한 승차감을 기대해선 안된다. 적당한 긴장을 느끼며 달리는 맛을 즐기는 세단이다.
타이어는 노면에 밀착해서 흔들림없이 차체를 받치고 달렸다. 타이어와 서스펜션의 궁합은 환상적이어서 최고속도 시속 210km로 주행하면서도 차체는 안정된 자세를 잃지 않았다. 운전자가 느끼는 불안감, 스트레스 수준도 훨씬 낮았다. 고속으로 달릴 수 있느냐 없느냐 못지 않게 중요한 게 고속에서 운전자가 얼마나 안정감을 갖느냐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407은 차급에 비해 매우 우수한 고속주행성능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브레이크 역시 정확히 반응했다. 타이어와 브레이크 주변은 최신 기술이 모여 있는 집합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차에도 ABS, EBA, ASR 트랙션 컨트롤, 전자식 제동력 분배장치, DSC, ESP 등 모든 기술이 브레이크와 타이어에 집합해 있다. 타이어의 회전, 노면상태, 차체의 흔들림 등을 두루 체크해 상황에 따라 엔진출력을 조절하고, 브레이크를 밟는 제동력을 키우는가 하면, 바퀴가 헛도는 걸 막아준다. 즉 운전자가 의도하지 않은 돌발상황을 최대한 막기 위해 기술력이 총동원된 셈이다.
여기에 하나 더,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자동으로 비상등이 깜빡인다. 고속도로 등에서 매우 유용하고, 비상등을 자주 사용하는 운전자들이 좋아할 기능이다.
407은 스포티한 주행을 즐기기엔 더 없이 좋은 차로 보인다. 모든 속도영역에서 안정된 자세를 보일 뿐 아니라 운전자와 차체의 일체감 또한 뛰어났다. 달리기를 즐기며 적극적인 드라이빙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분명히 매력있는 차가 될 것이다.
407의 2.2ℓ 엔진은 스트로크가 긴 롱스트로크 엔진이다. 2.0도 롱스트로크이긴 하지만 스퀘어 엔진에 가깝고, 2.2는 확실한 롱스트로크 엔진이다. 상대적으로 2.2가 고회전영역에서 불리한 구조를 가진 셈이다. 하지만 이는 일반적인 얘기일 뿐 시승차는 실제 주행 시 고속주행에서도 무리없는 성능을 보였다. 나중에 들여올 V6 3.0 엔진은 확실한 숏 스트로크 엔진이다.
▲경제성
407 2.2는 4,750만원이다. 아우디 A4 2.0, BMW 318, 벤츠 C180, 볼보 S60 등과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한다. 차급으로 보면 407이 이들 차보다 한 급 위라고 할 수 있다. 경제성이 앞서는 차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푸조라는 브랜드 인지도가 한국에서는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다. 수입차시장의 과거 동향을 봐도 푸조가 시장에서 주목을 받았던 적은 거의 없는 편이다. 동급의 유럽차들에 비해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건 이 때문이다. 시승차의 연비는 9.7km/ℓ.
프랑스 차는 프랑스 사람 만큼이나 개성이 강하고 성격이 분명하다. 407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역동적인 면을 강조하는 성격을 분명히 했다. 그런 면에서 소비자들의 판단은 훨씬 수월할 수 있다. 게다가 가격면에서도 수입차시장에서는 큰 부담이 안가는 수준이어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분명한 매력을 갖춘 차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강경숙 기자 cindy@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