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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감포 바닷가 풍경. |
"이히힝". 바람은 밤새 미친 말처럼 울어댔다. 달빛에 잠긴 파도는 무수한 은비늘을 뒤척였다. 집어등을 밝힌 오징어잡이배는 수평선을 기웃거리며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기를 되풀이 하고‥. 그러나 아침 바다는 간밤의 그 몸살을 흔적도 없이 씻어낸다. 정숙한 처녀처럼 수굿한 낯빛을 하고 순결한 푸른빛을 가감없이 내보인다.
겨울 감포. 눈발처럼 날아다니는 무리지은 갈매기떼, 한참을 거닐어도 만나기 힘든 사람의 그림자, 인적 드문 그 해변에 발이 묶인 고깃배가 그리운 눈빛으로 하염없이 먼 바다를 바라보고‥.
겨울 감포를 찾아가는 길은 설레임이다. 언제 어느 때 가도 늘 같은 눈빛을 한 그 바다가 거기에 있어서이기도 하고, 그 곳에는 듣기만 해도 가슴 뜨거워지는 대왕암과 감은사지 3층석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감포읍에서 남쪽으로 8km 남짓 내려가면 양북리 바다에 ‘나는 죽어서도 용이 돼 왜구를 막겠다’고 한 문무대왕의 수중릉(대왕암)과 그 수중릉이 한눈에 들어오는 정자 이견대가 자리하고 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 제30대 문무왕((661~681)은 자신의 유골을 화장해 동해에 묻으면 용이 돼 왜구를 막겠다고 유언을 남겼다. 대왕이 숨을 거두자 유언에 따라 낭산 능지탑에서 화장해 봉길리 앞바다에 수장했다. 해안에서 약 200m 떨어진 바닷 속 천연 암초의 한가운데를 뚫어 화장한 뼈를 묻고 그 위에 길이 3m, 폭 2.2m의 거북등같은 큰 바위를 올려 놓았다. 그리고 사방에 수로를 뚫어 바닷물이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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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무대왕 수중릉인 대왕암. |
문무대왕의 수중릉인 대왕암 맞은 편 언덕에는 이견대(利見臺)가 서 있다. 신라의 3기(奇)라고 일컫는 금자(金尺), 화주(火珠), 옥피리(玉笛) 중 하나인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이 곳에서 얻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문무왕은 생전에 경주로 통하는 동해 어귀에 절을 짓고 싶어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아들 신문왕이 부왕의 뜻을 이어받아 즉위 이듬해 절을 완공하고 부왕의 큰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감은사라 했다. 신문왕은 문무대왕이 죽어 용이 돼 여기를 지키겠다는 유언에 따라 감은사 금당 구들장 초석 한쪽에 용이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 놓았는데 지금 감은사터 초석에서도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이견대에서 내륙으로 차를 돌려 조금만 들어가면 들판에 늠름히 서 있는 감은사지 3층 석탑을 곧 만난다. 매운 겨울 바람에도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있는 감은사지 3층 석탑의 기품 넘치는 기상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맛있는 집
감포읍에는 감포항을 지키는 등대처럼 오랜 세월 감포의 맛을 지키고 있는 소문난 맛집이 있다. 40년 넘는 세월동안 복어탕을 전문으로 해 온 은정횟집(054-744-2644)이다. 감포 앞바다를 비롯해 근해에서 잡히는 참복을 써서 끓이는 은정횟집의 복어탕은 물의 온도조절까지 신경쓴다. 시원하고 개운한 국물맛은 미나리향이 더해져 더욱 감칠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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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은사지 3층 석탑. 기품 넘치는 기상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
경주시내로 나가면 팔우정거리에 즐비하게 늘어선 식당가의 해장국은 그 맛이 정갈하고 담백하다.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하고 있다. 선지국, 추어탕도 맛볼 수 있다. 오랜 전통의 경주쌈밥은 철따라 나는 맛깔스런 재료를 전국에서 가져와 밥상이 늘 싱싱하고 풍성하다. 대릉원 주변에 도로를 끼고 늘어서 있다.
*가는 요령
경부고속도로 경주 인터체인지에서 나와 경주시내를 통과해 9.5km 가면 불국사와 보문단지로 나뉘어지는 신평리 3거리다. 여기서 곧장 직진해 국도 4호를 타면 공사중인 경주~감포 간 추령재를 넘는다. 추령재를 벗어나 어일리 검문소가 있는 3거리에서 우회전해 지방도 929호를 타고 6.5km 가면 왼쪽으로 감은사지 3층 석탑이 보인다. 이 곳에서 400m를 가면 수중릉이 있는 양남면 봉길리 앞바다다. 이견대까지는 300m.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경주버스터미널에서 감포행 시외버스를 타면 된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