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면 수줍게 얼굴 붉히는 고장이 있다. 복숭아 산지로 이름난 충남 연기군 일대는 4월중순이면 이 고을 저 고을 동네방네 화사한 복사꽃으로 뒤덮인다. 연분홍 복사꽃이 시샘하듯 꽃망울을 터뜨리는 봄날의 그 황홀한 풍경도 구경거리지만 그 곳에 가면 백제의 얼이 남아 있는 고즈넉한 고찰 비암사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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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암사 전경. |
비암사 가는 길은 전의면 다방리쪽으로 개설된 지방도를 따라 고개를 넘어간다. 이정표가 부실해 찾아가는 길이 자칫 혼돈스러울 수 있으나 단순한 코스 안에 위치해 있으므로 의외로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사방골에서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만한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면 산언덕에 자리잡은, 소박하지만 단아한 모습의 절집을 만난다.
비암사의 봄날 풍경은 애잔한 여운을 던진다. 절 마당에 수령 800여년이 넘는 늙은 느티나무가 힘겨운 세월을 가지에 걸치고 길손을 맞는다.
비암사의 창건 연대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다. 2000여년 전 하선제 오봉 원년에 창건한 삼한 고찰이라고도 하고, 고려초 도선국사가 세운 절이라는 설도 있다. 또 문무왕 13년에 혜명대사가 지은 절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그 무렵 끊임없이 계속됐던 백제부흥운동에서 가족과 친구들을 잃은 백제 유민들의 뜻을 모아 지은 절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설이 오래 전부터 내려오고 있으나 아직 확인된 내용이 없고, 다만 지금 남아 있는 목조 건물인 극락보전은 조선 왕조 때 지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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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암사 대웅보전. |
인적 드문 이 조용한 절집에 지난 1960년 3월 설레임과 흥분된 기운이 감돌았다. 극락보전 앞에는 높이 2.9m의 삼층석탑이 있었는데, 이 석탑 꼭대기에서 작은 석불이 발견된 것이다. 높이 43cm의 아미타불 삼존 석상이 왜 탑 꼭대기에 있었는 지 알 수 없었으나 통일신라 초기에 만들어진 삼존석상은 그 만든 솜씨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됐다. 또 석상에 새겨진 명문을 밝혀낸 결과 계유년 신라 문무왕(661~680) 대로 추정돼 비암사의 건립 연대를 추정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됐다. 백제가 멸망한 후 그 유민들의 뜻을 모아 세운 절이라는 설이 유력해진 것이다.
이 곳에서 발견된 삼존불은 뒷날 국보 106호로 지정돼 ‘계유명전씨 아미타불 삼존석상’이라는 이름이 붙어 서울 국립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임진왜란 때는 불에 타서 초석만 남기도 했고, 돌보는 이가 없어 세 번씩이나 칡덩쿨 속에 묻혀 버리기도 했던 수난을 겪은 비암사는 지금도 찾는 이 드물어 따사한 봄볕을 쬐며 꼬박꼬박 졸고 있다.
오가는 길에 만나는 고복저수지는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곳. 가물치, 붕어, 잉어 등의 풍부한 어족을 가진 낚시터로 유명하며 주변마을에는 포도, 복숭아, 배 과수단지가 조성돼 있다. 저수지 강에 위치한 민락정이라는 정자에 오르면 저수지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봄날이면 저수지를 빙 둘러 핀 벚꽃이 하얀 눈송이처럼 수면 위로 날리는 광경이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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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복저수지. |
*맛집
저수지 순환로를 따라 달리면 한방오리, 메기매운탕, 붕어찜 등등의 메뉴를 자랑하는 온갖 맛집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미식가가 아니더라도 차창 안으로 마구 넘어오는 그 매콤하고, 달콤한 냄새에 발목이 잡히고 만다.
*가는 요령
조치원에서 천안 방면 1번 국도를 타고 16km 가면 전의리에 이른다. 공주 방면으로 좌회전해 691번 지방도를 따라 10km 남짓 달리면 전의면 금사리. 이 곳에서 다방리 방면으로 좌회전, 군도 3번을 따라 2km쯤 들어가면 비암사 주차장에 이른다. 대중교통편은 조치원에서 다방리행 시내버스가 하루 8회 운행된다. 약 4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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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붕어찜. |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