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승용차가 등장했다. 푸조 407을 필두로 국내외의 디젤승용차들이 속속 시장에 진입할 태세다. 승용차라고 10인승 미만인 차를 뜻하는 게 아니다. 세단형 승용차다. 그러나 이 차들이 국내 첫 디젤승용차는 아니다. 이미 80년대에 대우자동차의 레코드 디젤이 있었다. 잠깐 등장했다 사라진 차다.
디젤승용차는 그 때만 해도 시장의 주인공이 아니라 상품 구색을 맞추기 위한 조연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요즘 나오는 디젤승용차들은 막강한 폭발력을 가진 주연급으로 대우받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디젤엔진이 소비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만큼 기술적 발전을 이뤘고, 시장에서 이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아서다.
디젤엔진은 승용차와는 궁합이 안맞았다. 국내에선 그랬다. 승합차나 SUV 등에 얹고 승용차에는 가솔린엔진이 사용됐다. 기본적으로 가솔린엔진과 구조가 같은 LPG엔진은 논외다. 승용차가 디젤엔진을 피했던 건 무엇보다 소음과 진동 때문이다. 시끄럽고 덜덜거리는 엔진과 승차감을 생명으로 하는 승용차는 상극이다. 지금까진 그랬다.
이런 와중에 디젤엔진을 과감히 승용차에 올려 국내시장에서 팔겠다고 나선 그 첫 주자, 푸조 407 HDi를 만났다. 도대체 무슨 "깡"으로 디젤엔진을 승용차에 장착한 것일까. 궁금했다.
▲디자인
쿠페라고 해도 좋을 세단이다. 보닛은 길고 트렁크 라인은 짧다. 지붕에서 떨어지는 선이 트렁크 라인과 만나면서 따로 C필러를 구분하기 힘든 구조로 만들었다. 보닛 끝에 자리잡은 새끼사자 엠블럼과 그 아래 상어 아가리처럼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공기흡입구가 눈길을 끈다. 범퍼 모서리와 차체 측면을 가로지르는 몰딩은 거슬린다. 없었다면 보다 깔끔한 모습일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리어 램프는 얼핏 보면 각진 형태가 뉴EF 쏘나타의 그 것과 비슷하다.
실내는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보닛 라인이 길어 운전석에 앉으면 상당히 많이 뒤로 물러앉은 느낌이다. 대시보드 위에서 윈드실드까지는 운동장처럼 넓은 공간이 있다. 실제 측면에서 보면 운전석의 시트 포인트가 휠베이스의 중간점 뒤로 배치됐음을 알 수 있다. 스티어링 휠을 잡은 운전자가 차의 중심보다 살짝 뒤로 물러앉게 되면서 운전자가 느끼는 차의 움직임이 다이내믹하면서도 안정감을 갖는다. 뒷좌석은 상대적으로 좁긴 하지만 170cm 전후의 성인 남자가 앉기에 불편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성능
HDi는 "고압직분사"를 뜻하는 약자다. 풀어쓰면 "High Pressure Direct Injection"이 된다. 공기를 압축한 후 연료를 높은 압력으로 실린더에 뿌려주는 방식이다. 고압분사를 위해 커먼레일이 사용된다. 연료를 뿌려 넣을 때 고도로 정밀하게 제어, 출력은 물론 배기가스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게 하는 게 기술의 관건이다.
407의 HDi는 젤엔진의 선입견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시동을 거는 소리가 의외로 작았다. 분명 굵은 바리톤 음색의 낮은 소리가 디젤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기는 했지만 공회전부터 으르렁거리는 기존 디젤엔진과는 수준이 달랐다. 시동을 걸면서 ‘고수’임을 직감했다. 시승자는 흥분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시승차는 6단 수동변속기를 달았다. 디젤차에는 수동변속기가 제격이다. 엔진반응이 느린데 다시 가속 달과 시간차를 두고 반응하는 자동변속기를 달면 아무래도 굼뜨기 때문이다. 다소 느린 디젤엔진이지만 즉각 반응하는 수동변속기로 보완하면 훌륭한 성능을 보여줄 수 있다. 게다가 이 차의 디젤엔진은 반응이 느리지도 않았다. 최대토크가 32.7kg·m로 3.0ℓ급 가솔린엔진보다 우수한 수준인데다 발생시점이 2,000rpm이어서 가속 페달을 밟으면 차체가 즉각 반응했다. 스포츠 세단과 견줘도 전혀 밀리지 않을 수준이다.
일반적으로는 배기량 2.0ℓ의 디젤엔진이면 가솔린 1.5~1.8ℓ 엔진과 비슷한 성능을 보여야 하는데 이 차는 오히려 그 반대다. 2.0ℓ 디젤이 3.0ℓ 가솔린을 능가하고 있다. 실제 시내주행에서 우수한 순간 가속력, 팡팡 튀어나가는 순발력을 느낄 수 있다. 디젤엔진도 이럴 수 있음을 처음 느끼는 매우 색다른 느낌이었다. 굵은 토크, 탄력있는 파워는 시속 160km까지를 아무런 저항없이 금세 도달했다. 그 이후에서도 가속은 조금씩 더뎌졌으나 속도는 계속 높일 수 있었다.
6단 변속기는 4단 기어비가 0.799로 일찌감치 오버드라이브 상태가 된다. 4단부터는 파워풀하게 밀어붙이는 맛이 떨어진다. 6단 변속기이기는 하지만 사실 6단을 사용할 일은 거의 없었다. 시속 200km를 넘보는 속도에서 잠깐 이용했고, 140km 전후에서 시험삼아 6단을 넣어봤을 뿐이다.
일반 운전자에게 ‘6단’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1년 가야 몇 차례 쓰지 않는다면 그 실용성에 의문을 제기할 법도 하다. ‘6단’으로 시프트업할 일은 많지 않겠지만 6단 변속기가 연비에 유리하고 엔진힘을 효율적으로 쓰는 데 유리한 건 사실이다.
SUV,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소위 ‘지프형차’로 디젤 엔진을 경험했던 이들은 변속기 레버를 통해 온 몸으로 전달되는 진동에 대한 추억이 있다. 엔진에서 변속레버로, 다시 그 레버를 잡은 손을 시작으로 몸과 차제가 "덜덜덜덜" 떨던 디젤엔진만의 그 느낌. 그러나 푸조 407에서는 그런 느낌을 기대하지 않아도 된다. 선이 굵고 낮은 엔진소리는 휘발유엔진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걸 말하고 있었으나 진동은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온 신경을 집중해 흔들림의 흔적을 찾으려 한 결과 시동을 걸 때와 클러치 페달 단 두 곳에서 약간의 떨림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선루프를 작동하는 모터 소리는 너무 컸다. 대신 로터리식 스위치로 선루프를 단계별로 쉽게 열 수 있어 좋았다.
▲경제성
수동변속기차가 자동변속기차보다 비싸다. 수동은 최신식 6단이고 자동은 4단이어서다. 4,950만원과 4,850만원. 독일 럭셔리 브랜드의 엔트리급 모델의 가격 수준이다. 307, 206 등의 아랫급을 거느린 407이 엔트리급일 수는 없다. 가격대비 메리트가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디젤엔진이다. 아무리 연료값이 비싸진다고 해도 디젤이 가솔린보다 비싸지는 일은 없다고 보면 무시할 수 없는 매력이다. 그 뿐인가. 연비는 가솔린엔진보다 훨씬 좋다. 그렇다고 성능이 한 수 아래인 것도 아니니 이 차를 사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기 힘들다.
이리저리 살펴 보고 뜯어 본 결과 아무래도 이 차는 숨어 있는 진주라고 해야 할 듯하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그 진가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지만 성장가능성이 눈에 보이는 차다. 다만, 하나 걱정스러운 건 이제 본격화될 디젤승용차시장에 이 차가 너무 높은 기준을 제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첫 주자가 새로운 기준이 되면 후발주자들은 그 기준을 넘기며 그 보다 우수함을 자랑해야 할 텐데 그게 쉽지 않은 문제라는 점이다. 뒤이어 나올 후발주자들의 분발을 기대해 본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강경숙 기자 cindy@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