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가 마침내 오토 레이싱을 향해 칼을 빼들었다. 몇 년간 창고 안에 처박아뒀던 칼은 녹이 슬고 빛이 바래 예전의 퍼랬던 서슬은 오간 데 없다. 한국타이어는 이제라도 녹을 벗기고, 날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솜씨 좋은 대장장이들을 불러 모았다. 한국타이어의 레이싱타이어(RT)개발팀(팀장 손정호)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예전의 예리함과 날카로움을 되찾겠다는 목표를 위해, 누구나 선망하는 야무진 목표를 위해 회사의 최정예들이 모인 것.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한국타이어는 2000년대들어 모터스포츠와 일정한 관계를 유지했다. 투자에 비해 챙길 이득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 때문에 한국타이어의 모터스포츠는 해외를 중심으로 펼쳐졌고, 국내에서는 숨만 쉬는 정도였다.
한국타이어의 활동이 주춤해진 틈을 타 라이벌 금호타이어는 전사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세계 모터스포츠의 당당한 주역으로 떠올랐다. 다급해진 한국타이어는 부랴부랴 본사의 마케팅 전략팀에 모터스포츠를 전담하는 부서를 배치했으나 곧바로 한계에 부딪혔다. 그 만큼 세계 모터스포츠시장을 읽는 시각이 부족했고 한국타이어의 레이싱 기술력을 알아주는 곳이 드물었다.
승승장구하는 금호타이어에 비해 푸대접을 받아 자존심을 구긴 한국타이어는 모터스포츠를 중장기 핵심전략으로 정하고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한 최상의 방안으로 사내 최고의 전문가들을 집결시키기에 이르렀다.
손정호 RT개발팀장은 “모터스포츠에 대한 회사의 대응은 사안에 초점을 둬 태스크포스팀(TFT)이나 프로젝트팀에서 담당해 응집력이 떨어졌던 게 사실”이라며 “모터스포츠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팀을 꾸렸다”고 말했다. 그는 또 “RT개발팀은 한국타이어 모터스포츠의 헤드쿼터로 국내외에서 펼쳐지는 각종 모터스포츠 이벤트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RT개발팀의 성과는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한국타이어 제품이 국내 최고의 레이스인 BAT GT 챔피언십 하이카 클래스의 공식타이어로 선정된 것. 이 경기는 GT1, 2나 투어링카A보다 수준은 떨어지지만 국내에서는 최초로 세미 슬릭을 적용한 Z211를 선보였다. 이 타이어는 북미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미국의 SCCA에서도 쓰고 있다. 해외에서는 독일 F3의 공식 타이어로 선정됐다. 이 밖에도 일본의 슈퍼 GT에 진출하기 위해 유명 레이싱팀과 테스트를 갖는 등 전방위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RT개발팀은 랠리를 통한 기술력 확보에도 힘을 쏟고 있다. 마케팅전략팀의 요청에 따라 유러피안 랠리 챔피언십(ERC)에 참가하는 포드 피에스타에 타이어를 공식 공급하기로 한 것. ERC는 유럽을 중심으로 열리는 경기로 타막(포장도로)이 대부분이다.
김영수 RT개발팀 차장은 “유럽에서는 그래블(비포장)보다 타막경기가 많아 타이어에 가혹한 조건을 제공한다”며 “충분한 기술력을 축적하면서 궁극적으로 월드랠리챔피언십에서 활동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향후 비전에 대해서도 RT개발팀은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다. 최상의 목표는 세계 모터스포츠의 최정상 F1 그랑프리에 공급될 타이어를 만드는 것. 엔지니어로서 개발에 매달려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돈이 드는 만큼 충분한 검토를 거쳐 단계적으로 진행하기로 방침을 굳혔다.
손 팀장은 “어떤 타이어든 개발은 할 수 있으나 범용성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며 “쓰지도 못할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는 현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팀과 드라이버로부터 인정받는 타이어를 생산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김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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