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대는 족히 넘게 새 차를 타본 기자다. 자랑이랄 것도 없다. 남보기엔 복 터지는 일이다. 타보고 리포트를 써야 하는 입장에선 때로 큰 부담이기 되기도 하는 게 새 차를 만나는 일이다. 그런 기자가 꼭 타고픈 차가 있었다. 로버 미니다.
처음 기자생활을 시작하던 시절, 한 선배기자가 미니를 타봤다며 수다를 떠는 게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어깨너머로 본 미니는 좁은 실내에 우측핸들차로 히터도 에어컨도 없었다. 타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었지만 그 기회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 후 기자를 거쳐간 수많은 차 중에 미니는 없었다.
아마도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꼭 그 차를 타고 말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게. 언제였던가. 짧은 영어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던 해외취재에서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 그 차는 다시 기자를 흥분시켰다. ‘미스터빈’에 등장하는 미니를 본 것이다. 미니와 함께 미스터빈 역을 맡은 로완 엣킨슨의 우스꽝스런 연기는 대사도 거의 없었다. 오리지널 필름을 그대로 보며 마음껏 웃을 수 있었다. 이후 미스터빈과 미니는 서로 이미지 연상작용을 하며 기자의 뇌리에 깊게 자리잡았다.
어느덧 세월은 흘렀다. 로버 미니는 BMW 미니 쿠퍼로 발전했다. 미니라는 이름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 차를 서울에서 만나는 순간은 감격에 가까웠다. 남모르게 마음 속에 담아뒀던 여인과 단 둘이 대면하는 순간이 이럴까. 미니의 키를 받고 주차장을 천천히 빠져 나오면서 가슴이 뛰는 걸 느꼈다. 많은 차를 타면서 무뎌진 감정이 다시 떨리는, 실로 오랜만의 설레임이다.
▲디자인
미니는 더 예뻐졌다. 로버시절보다 BMW인 지금이 훨씬 예쁘다. 컬러부터가 팡팡 튀어 몇 백m 밖에서도 알아볼 정도다. 기억 속에서는 맨 얼굴에 키도 작았던 소녀였는데 눈 앞에 나타난 건 성숙한, 아름답운, 곱게 화장한 여인이다. 그랬다. 미니가 커져 있었다. 차 길이가 3m를 겨우 넘겨 어른 넷이 구겨 앉을 정도였던 차가 3.6m를 넘기며 훨씬 넓은 공간을 확보했다.
무슨 인연인 지 BMW의 미니 쿠퍼S를 타고 지나는 길에 오리지널 로버 미니를 만났다. 두 차를 나란히 세워 보니 차이가 확연했다. 차가 커졌다. 차가 작아서 미니라는 이름을 썼을 텐데, 그래서 그 이름이 잘 어울렸을 텐데 커진 미니는 이제 미니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 체격만으로라면 ‘미디엄’으로 이름을 바꿔야 할 판이다.
오리지널 미니의 디자인을 가져 왔으나 미니 쿠퍼S는 전혀 다른 차로 태어났다. 보닛에 뚫려 있는 에어 인테이크는 강한 인상을 준다. 힘이 더 세졌음을 타보지 않아도 알게 해준다. 보디 컬러와는 다른 색을 가진 루프는 귀엽고 깔끔하다. 전형적인 해치백 스타일.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17인치 타이어다. 고성능 세단에도 17인치를 다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미니’에 이 정도 크기의 타이어가 장착된 건 특이하다. 원래 미니의 특징 중 하나가 앙증맞게 작은 타이어였는데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큼지막한 타이어를 채용한 것. 이 때문에 강하고, 고성능차라는 이미지를 남긴다. 이 처럼 큰 타이어를 앞뒤로 바짝 붙여 오버행을 아주 짧게 했다. 오버행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특이한 점은 더 있다. 엔진룸을 보기 위해 보닛을 열면 헤드 램프가 따라 올라간다. 보닛에 헤드 램프가 달려 있는 것. 보닛과 펜더 그리고 헤드 램프까지 한 몸을 이루고 있다. 한 판에 세 부분을 만들 수 있어 제조원가를 낮추는 데 효과를 볼 수 있는 설계다.
실내 디자인은 "오버"다. 사방이 원이다. 마치 동그라미 천국같다. 운전석에 앉아 동그라미를 보고 있으면 어지러울 정도다. 동글동글 동그라미가 내 머리 위에도 하나 있는 것 같다. 시트는 편하게 몸을 지탱한다.
트렁크엔 스페어타이어가 없다. 펑크가 나도 계속 달릴 수 있는 런플랫 타이어를 단 대신 스페어타이어는 생략한 것. 전체적으로는 스페어타이어만큼 차 무게를 줄여 연비향상에도 이바지한다. 타이어에 바람이 완전히 빠진 뒤에도 시속 80km의 속도로 150km 이상을 더 달릴 수 있다.
▲성능
로버는 처음 탄생할 때부터 앞바퀴굴림에 가로배치 엔진이었다. 지금은 흔하디 흔한 방식이지만 처음 태어나던 1957년에만 해도 획기적이었다. 작은 크기,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고민이 만든 결과다. 쿠퍼S에서도 마찬가지다. 엔진룸은 알차게 정리돼 실내공간을 최대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미니는 두 종류다. 쿠퍼와 쿠퍼S. 같은 엔진이지만 다르다. 1.6ℓ로 같은 배기량이지만 쿠퍼는 115마력, 쿠퍼S는 170마력이다. 슈퍼차저에 인터쿨러를 더해 쿠퍼S의 힘이 더 세졌다. 압축비는 8.3대1로 고회전에 맞게 낮췄다. 쿠퍼의 압축비는 이 보다 높은 10.6. 슈퍼차저는 타임랙없이 즉각 반응한다. 밟으면 터지는 파워를 느낄 수 있는 것.
차체에 비해 큰 17인치에 45시리즈 타이어와 하드한 서스펜션은 조금 거친 듯한 성능을 보인다. 과속방지턱을 지날 때 반응이 그렇. 반면 잔진동이 연이어 오는 법이 없다. "쿵"하고 한 번 충격을 전하고는 끝이다. 바로 제자세를 잡는다.
배기음은 매력적이다. 뒷범퍼 가운데로 두 개의 배기구가 자리잡았다. 머플러의 배기구는 가운데로 위치하는 게 배기저항을 줄일 수 있다. 트윈 머플러, 두 개의 배기구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위치시켰다. 그 곳으로 터져 나오는 굵고 힘찬 소리가 매력적이다.
자동변속기는 6단이다. 5, 6단이 오버 드라이브가 된다. 파워풀한 저속구간, 여유있는 고속주행. 6단 변속기는 효율적이다. 그리고 힘도 있다. 0→100km/h를 7.7초에 끊는다. 스포츠 세단에 견줄 만한 성능이다. 그 뿐인가. 최고시속도 220km면 미니라고, 작다고 얕볼 차가 아니다. 고속에서 차체의 거동은 고르지 못한 노면 때문에 약간의 흔들림이 있다. 불안하다기보다는 노면의 변화를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정직한 흔들림이다.
가속 페달을 바닥에 닿게 밟으면 슈퍼차저가 즉시 작동한다. 계기판 속도계는 수직 상승한다. 100, 140, 180‥ 거침없이 속도를 올렸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시속 200km를 찍는 것으로 속도테스트는 마감했다. 충분한 파워, 주행안정성을 갖췄다. 쿠퍼S는 고성능 미니다. 이를 실감했다.
고성능임은 분명하지만 디자인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성능이 좋아 이 차를 산다는 사람보다는 디자인에 반해 이 차를 사려는 사람이 훨씬 많아서다. 그런 점에서 폭스바겐 뉴비틀과 비슷한 성격의 차라고도 하겠다.
▲경제성
쿠퍼S는 휘발유 1ℓ로 11.1km를 달린다고 제원표에 써 있다. 배기량 1.6ℓ에 공차중량 1,160kg면 잘 빠진 몸매다. 슈퍼차저와 인터쿨러를 적용해 성능을 확보하느라 이 정도 선에서 연비를 맞췄다.
판매가격은 쿠퍼가 3,300만원, 쿠퍼S는 3,800만원이다. 가격 결정이 힘들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미니라는 이름 때문에 일반 고객들은 가격에 대해 갖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작은 차니 값도 쌀 것이란 생각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정작 쿠퍼와 쿠퍼S는 미니란 이름이 무색할 만큼 크기도 커졌고 첨단 메커니즘으로 무장하다보니 사람들의 기대와는 거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 심사숙고한 게 이 가격이다.
일단 가격은 선택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차를 계약하고 있어 몇 달씩 기다려야 한다는 소식이다. 궁금한 건 이 차를 기다리다가 지쳐 계약을 포기하기도 한다는데 그런 사람들이 과연 어떤 차를 택하느냐는 것이다. 미니만큼 눈길을 끌고 매력있는 모습을 가진 차를 찾기가 어려울 것 같아 드는 기우다. 많은 사람들이 이 차에 관심을 표했다. 기자가 시승하는 동안에도 이 차를 꼭 한 번 타보고 싶다는 이들이 많았다. 다른 차들과 달랐다. 뜨거운 반응이 여느 차들과 다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쿠퍼S를 타고 난 후에도 여전히 기자에게 로버의 미니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꼭 한 번 타보고 싶은 차는 여전히 로버 미니다. 휘파람 불며 종종 걸음으로 달려보고 싶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강경숙 기자 cindy@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