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엔듀로대회가 지난 3월6일까지 3일간 태국 동남부 파타야에서 열렸다. 맥시스가 협찬하고 태국정부와 관광청이 후원하며, 세계모터사이클연맹(FIM)이 공인한 이 대회는 매년 3월 열리며 아시아 최고의 국제 공인 엔듀로대회다. 이번 대회에는 유럽, 한국, 일본, 대만, 태국 등 세계 각국 선수 107명이 참가했다. 한국대표단은 12명의 선수와 미캐닉, 운영지원팀, 서포터를 포함해 19명이 참여했다.
바이크와 엔듀로를 알게 된 지 얼마 안됐으나 그 동안 두 차례의 국제대회와 국내대회를 지켜 보니 부러운 점과 배울 점이 적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아쉬운 건 국제 수준의 스포츠 행사에 대한 협찬기업, ORTEV와 같은 소수정예지만 매년 수 차례 세계적인 대회를 운영하는 국제적인 스포츠마케팅기획회사, 행사를 적극 유치하려는 태국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언론매체 등 모터스포츠시장을 구성하는 인프라의 중요성에 대해 아직 우리나라의 인식이 낮은 점이다.
이런 행사를 참가해 가까이 보면 올림픽과 같은 외양성에 치중하는 국가나 지자체 주도의 경직된 홍보행사, 국내 경기에도 무관심하며 문화적인 측면에서 외국의 시장개척에 관심이 미약한 우리나라 기업의 수출전략이 부끄러워진다. 아직 우리가 우리를 모르고, 남을 알고 파고 드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걸 실감한다.
협찬사인 맥시스는 일반 자동차, 소형 트럭, ATV, 모터사이클, 자전거, 카트용 타이어를 생산하는 회사로 대만, 중국, 태국, 일본과 미주, 유럽 등 세계 여러 곳에 생산기지와 영업장(100여개)을 갖고 있다. 매년 열리는 이 대회는 태국이라는 문화상품, 타이어라는 스포츠제품 그리고 엔듀로라는 역동적인 스포츠를 결합한 기업 스포츠 마케팅사업의 일환이다.
태국정부와 시 정부의 포괄적이며 전향적인 관광정책의 실행력도 엿볼 수 있다. 기량육성을 위해 자국 참가자에 대한 보조금 지급, 적극적인 행정지원과 유치 노력, 250여명의 경찰 등 안전요원 제공 등이 그 것이다. 전반적인 시민과 주민의 친절함, 협력과 이해 역시 높은 점수를 줄 부분이다. 외국인에 대한 태국인 고유의 친절한 국민성, 관광산업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부럽다.
한국은 자동차와 타이어부문에서는 뒤지지 않는 국가이며 유수의 기업도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관광문화산업을 국가전략으로 채택하고 있으나 더 큰 발전을 위해서는 보다 성숙되고 세련된 홍보전략, 모터스포츠산업의 육성, 지속성을 갖는 정책지원, 정부·국민·언론 간의 협력적 관계와 공감대 형성이 필요해 보인다.
▲3월2일 수요일(출국 전날)
다른 참가자들은 자신의 바이크를 최상급 수준으로 정비하고 이미 컨테이너에 선적해 보냈지만 현지에서 구해야 하는 경우는 현지 업계의 사정과 바이크의 상태를 알 수 없어 항상 불안하다. 가혹한 환경에서 시간기록으로 경기 참가자격과 등수가 정해지는 엔듀로 시합의 경우 자신이 믿고 확신할 수 있는 바이크가 없다는 건 본인은 물론 다른 선수들에게도 신경을 쓰이게 해 전체 경기진행에 지장을 줄 수 있다. 작년에도 느낀 점이었는데 올해도 현지 렌탈 바이크에 의존하는 모험을 하며 참가하게 됐다. 다른 것으로 갚아주려면 이번에도 열심히 뭔가 찾아내야지.
며칠 전 인터넷을 통해 찾아낸 파타야의 한 렌탈업체와 연결돼 부탁은 했으나 안심은 안된다. 지난 달 막막한 심정에서 인터넷으로 파타야/바이크/렌탈을 검색하다 트라이얼 바이크를 보유한 렌탈(MAIPANG BIKE RENTALS)을 찾았다. 같은 이름을 가진 3개 체인 중 하나다. 렌트가격은 소형 바이크 "주 800바트, 혼다 스티드 600cc 3,000바트, 250cc 트라이얼 바이크 3,000바트"라고 나와 있다. 상태는 모르겠지만 혼다 스틷드 600cc가 하루에 한화로 1만2,900원이니 저렴한 수준이다(보험 제외, 1바트=30원 기준). 가격은 좋은데 성능이 문제지만 말이다.
전화로 문의하니 다행히 여주인과 영어로 대화가 됐다. 엔듀로를 확보한 사람도 파타야에는 드물고 2월은 성수기여서 더욱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찾아봐달라고 부탁하고 다음 날 전화하니 이번에는 인수날짜와 시합일정이 맞지 않는다. 주인의 솔직한 답변과 친절이 마음에 들어 도착시간을 약속하고 물색을 당부해뒀다.
태국은 한국보다 국민소득이 낮지만 작은 가게까지도 인터넷에 소개돼 있고, 영어 대화가 가능한 점, 계약 이행수준이 전반적으로 높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국제 수준이란 용어를 쓰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사회적 노력과 동의가 수반돼야 함을 느낀다.
일단 가장 큰 바이크 문제는 해결됐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이제 장비와 짐을 꾸렸다. 가방, 헬멧, 부츠, 온몸을 감싸는 각종 보호대, 고글, 장갑, 경기복, 2ℓ짜리 휴대용 물통, 연장, 나침반, 지도, 카메라, 손전등, 충전기, 비상식량, 국제면허증 등등. 어느 스포츠나 장비가 필요하지만 개인용 장비를 수납하기 위해 가장 크고 튼튼한 가방이 필요한 종목 중 하나가 엔듀로인 듯하다. 기온이 높아 옷가지가 별로 필요없는 동남아에 가는데도 장비무게가 허용량에 육박하는 근 30kg에 이른다. 아마도 장비의 분량과 크기는 스피드와 위험도에 비례하나 보다.
▲3월3일(D-1일)
아침 7시에 공항버스 편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간밤에 늦게까지 짐을 꾸렸는데 다행히 버스에서 한 숨 자두니 약간 개운해진다. 대부분 해외 나갈 때마다 며칠간은 바빠진다. 해외경기의 경우 피로회복 속도가 빠를수록 컨디션이 유리해지므로 몸관리 노하우를 나름대로 가지고 있다고들 한다.
20여명의 한국 선수단 짐을 체크인 카운터 앞에 모아 놓으니 볼 만하다. 해외여행 다녀 봐도 엔듀로 가방보다 큰 가방을 공항에서 본 기억은 없다. 오전 10시에 이륙한 비행기는 방콕공항에 서울시각으로 오후 4시에 도착했다. 인천-방콕 간은 5시간50분, 방콕-인천 간은 5시간30분이 걸린다.
지도를 보니 공항에서 파타야까지는 150여km다. 공항을 나와 5시에 전세버스편으로 출발, 중간에 잠시 휴식 후 2시간반 정도 걸려 파타야에 도착했다. 호텔에는 이미 다른 나라 선수단이 많이 와 있다. 드문드문 아는 친구들의 얼굴이 보인다. 숙소에 짐을 놓고 참가선수들이 모두 모여 행사진행의 브리핑을 받고 접수를 마무리했다.
전반적인 경기구간의 브리핑을 들으니 매우 위험, 큰 돌조심, 급경사 조심, 나무뿌리 조심, 진흙탕길 조심 등 겁주는 용어가 많이 나온다. 이번 시합이 바닷가라 해안선 모래밭을 신나게 달릴 줄 알았는데 이게 뭐람. 지난해 북부지역 산지가 많은 치앙마이 시합 때 산에서 고생한 적이 있어 이번에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내일 첫 시합의 지도책을 받았다. 번호는 96번으로 당연히 출발순서가 늦다. 속으로 "거의 끝번호이니 코스를 설거지하는 스위퍼들과 같이 다니겠군"이라고 생각됐다. 추월하는 선수도 별로 없으니 먼지도 덜 먹겠네.
다른 선수들은 도착한 바이크를 점검하느라, 검차하느라 바쁘지만 나는 이제 렌털을 찾아 바이크 확보작전을 개시해야 한다. 렌트가 필요한 동료 두 사람과 함께 주소를 들고 어두워진 거리로 나섰다. 바이크 성능에 대해 잘 아는 동료가 동행하니 든든하다. 약간 헤매다가 찾은 렌털은 생각보다 매우 작은 점포다. 여주인을 만나 보니 다행히 다른 점포에 한 대 구해 놓았다고 한다. 점원의 바이크 뒤에 타고 파타야 남측에 있는 좀티엔 해변지역으로 갔다. 이 곳은 저녁 7시만 되면 일과가 끝나 다른 곳을 수소문할 시간이 없다.
좀티엔 콘도 상가 내에 있는 렌털은 규모가 크고 잘 정돈돼 있어 다소 안심이 된다. 점포 앞을 보니 깨끗이 정비된 흰색 스즈키 250cc짜리 엔듀로가 한 대 서 있다. 큼직한 연료통과 커다란 헤드라이트를 달고 있다. 무척 반갑고 대견해 보인다. 의자에 앉으니 다소 높지만 탈 만하다.
그런데 타이어를 보니 마모가 많아 비포장 언덕을 오를 수준이 도저히 아니고 앞브레이크도 거의 듣지 않는다. 바꾸어 달래도 지금 그럴 여건이 되지 않는단다. 자기네는 이 엔듀로를 로드 투어용으로 운영해 왔고, 큰 문제가 없었다는 답변이다. 얌전히 포장도로에서 유유히 폼 잡으며 타면 그렇겠지만 당장 내일 아침에 이 녀석을 끌고 산으로, 들판으로 시합을 나가야 할 입장이기에 무척 난감해진다.
시합을 포기하고 투어를 할 것이냐, 무리한 모험을 할 것이냐, 내일 아침까지 재주를 부려 경주용으로 만들 수 있느냐를 선택해야 하는데 대안이 없다. 주인이 일단 타고 갔다가 내일 반납해도 좋고, 하루치 렌트비를 받지 않겠다고 한다. 일단 빌려서 선수들이 있는 호텔로 가서 방법을 찾기로 했다.
3일치 렌트비는 1,350바트, 보증금 2,000바트, 보험 300바트로 총 3,650바트가 들었다. 보증금은 바이크 반납 후 돌려받는다. 계약서와 보험 약관을 보니 도난 시에는 가격의 50%를 보상해주고 반경 30km 내에서 타도록 돼 있다. 사고발생 시 픽엎 가능한 반경 때문이라고 한다.
계약 후 점포 직원의 바이크로 안내를 받아 호텔로 타고 왔다. 일방통행이 많아 쉽지 않은 초행길이다. 호텔로 돌아와 태국친구들에게 타이어 교환과 앞브레이크도 정비를 부탁했다. 3,500바트를 주고 내일 아침까지 타이어는 새 것으로 교체해서 받기로 했다. 호텔 인근에 큰 슈퍼마켓이 있어 다행이었다. 며칠간 계속되는 경기일 경우 충분한 조달품목을 확보할 수 있는 상점이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 시간과 경비절약면에서도 좋다.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내일 쓸 5ℓ짜리 식수와 음료를 구입했다.
▲3월4일(경기 1일차)
<레그1> 파타야-촌 부리 : 총 224.6km (이동구간 104.6km, 경기구간 120.0km)
다행히 모닝콜 소리를 들으며 5시30분 기상. 아침 식사 후 서비스 에어리어에서 타임카드를 받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어제 정비한 타이어는 새 것이라 안심이 되는데 브레이크는 영 미덥지 않다. 손으로 레버를 잡아도 압력이 형성되지 않는다. 다운 힐과 커브에서는 조심스럽게 엔진 브레이크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ORTEV측 대회 운영팀의 서규원 씨가 "뒷브레이크만 쓰면 다치지는 않겠네요"라고 말한다. 한국팀을 많이 도와주는 듬직한 후원자다.
시원한 바다가 보이는 마리너 옆 광장에서 화려한 식전행사 후 8시에 첫 주자가 게이트를 통과하며 출발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총 720.8km, 3일간의 엔듀로대회의 시작이다. 오늘 시합 총 주행거리는 224.6km다. 경기구간(SS)은 3개 구간 총 120.0km, 도로이동구간(RS)은 4개 구간 104.6km다. 문제는 첫 경기구간인 SS1이다. 거리가 무려 65km에 제한시간은 2시간이다. 전날 브리핑에서는 제한시간이 1시간30분이었는데 오늘 받은 지도책에 30분이 추가된 걸 보면 매우 고된 코스임이 확실하다. 여독으로 몸들도 피곤할 텐데 난이도가 높은 첫 코스가 힘들어 보인다. 지도책을 참고하며 빨간 화살표를 따라 도시를 벗어나 출발지점으로 향한다.
이동구간도 만만한 게 아니다. 여럿이 함께 가면 다행인데 특히 복잡한 도심을 통과하는 중에 차에 화살표가 가려져 놓치면 헤매게 된다. 도로표지는 태국어가 대부분이라 참고가 어렵다. 다시 돌아와 노견에 정차해 방향과 지도책을 살펴 봐야 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오히려 한적한 지방도나 시골길에서는 방향성 유지가 쉽다.
SS1 출발점에 도착하니 이미 앞선수들은 떠나기 시작한다. 순서를 기다려 타임카드를 접수하고 RS1의 도착시간을 기입한 후 SS1의 출발시간을 받았다. 맨 뒷번호라 오히려 느긋해진다. 내 뒤에는 이번 시합에 특별 출전한 태국산 타이거(125cc)가 20여대 따라온다. 엔듀로용이 아닌 나지막한 시티 타입인데 타이어만 엔듀로용으로 장착했다.
언제나 첫 날 첫 경기의 출발대기장소에서는 모두들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하다. 그 모습들이 아름답다. 오늘 날씨는 섭씨 35도에 바람도 별로 없다. 물을 꽤 많이 마실 것 같다. 경기하면서 물을 마시면 정신이 약간 또렷해지곤 한다. 목마름보다는 정신을 차려 코스공략에 집중하려고 물을 마시는 경우가 많다. 바이크는 기름을 먹고, 선수는 물을 먹으며 함께 달린다.
출발선에서 30초 전을 알리는 오피셜의 구령에 시동을 건 후 드디어 누런 황토색 먼지를 길게 뿜어내며 힘찬 엔진음과 함께 태국 남부의 대자연 속으로 출발이다.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날아가고, 물에 빠져 생고생하며 다치기도 하고, 쓴 물이 넘어 올 지라도 지난 1년간 이 순간을 모두들 기다려 왔겠지. 이러한 도전이야말로 한 번 맛보고 빠지면 마약같다는 엔듀로의 매력이다. 코스설계도 점차 예상치 못한 난이도를 기술적으로 높이는 데 주력한 듯하다.
통행차량과 통행인이 통제된 상태에서 이국의 비포장도로와 대자연을, 자기 애마를 타고 마음껏 주행할 수 있다는 건 무척 기분좋은 일이다. 물론 충분히 연습해 즐길 수 있는 선수들의 경우지만 초보 수준의 라이더라도 새로운 주행환경과 힘든 구간을 기량 높은 외국선수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대단히 소중한 기회이자 행운이다.
SS구간은 정교한 설계도같다. 진행방향을 알리는 붉은 화살표, 코스이탈을 예방하기 위한 실링 테이프, 위험지역을 알려주는 코션마크 등 각종 장치로 이뤄진 SS구간을 저고도에서 찍은 비디오테이프로 보면 그런 생각이 들 것 같다. 빠르고 냉철한 판단력과 자신감, 적절한 주행기술과 체력의 안배, 잘 정비된 바이크의 성능과 보호장비 등 그 동안 준비해 온 모든 실력을 종합해 극대화해보라는 것 같다.
무더운 기온에 산악코스가 있는 60km 거리의 SS1 코스는 역시 내게 무척 버거웠다. 절반도 못온 것 같은데 고개길을 오르내리며 넘어진 바이크와 몇 차례 씨름하면서 2ℓ의 물은 벌써 동이 났다. 물이 떨어지니 앞길이 막막하게 여겨진다. 손목에 힘이 빠져 덤불에 박히면서 바퀴에 껴있는 나뭇가지를 쳐내느라 힘도 많이 썼다. 출발한 지 2시간반이니 제한시간이 초과된 지 이미 오래고, 코스를 정리하는 스위퍼들과 함께 달려온 지도 꽤 된다. 묵묵히 따라와주는 그 친구들이 무척 고맙다. 속으로는 경기 포기하라고 무척 많이 생각했겠지.
중간에 포장도로를 만나 잠시 달리다가 다음 코스의 초입을 보니 끔찍한 모래밭이다. 이제 포기하고 돌아가 브레이크를 손봐 내일 경기에 준비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선다. 더 이상 체력을 소모하면 내일 아침에는 일어나지도 못할 것 같다. 스위퍼들에게 먼저 가라고 하고 코스를 이탈하기로 했다. 호텔로 가는 방향은 알아 놓았으니 우선 어디 가서 좀 쉬어야지.
조금 가니 주유소 겸 쉴 만한 가게가 보인다. 가게 앞 평상에 잠시 누으니 거의 탈진상태가 한동안 계속된다. 소나기가 올 때까지 1시간 정도 그대로 누워 있었다. 이 곳 소나기는 겁나게 쏟아진다. 다른 선수들에게 들어보니 거의 대부분 SS1에서 녹았다고들 한다. 가장 잘 타는 UAM 오픈클래스의 선수들도 도착 후 탈진상태였다고. 모두들 여독에 몸들이 안풀린 상태에서 힘든 코스를 먼저 타서 그랬던 것 같다. 호텔로 돌아와 렌털에서 지정해준 곳에 앞브레이크 수리를 맡겼다. 수리를 하고 나니 이제 든든하다.
▲3월5일(경기 2일차)
<레그2> 파타야-촌 부리 : 총 295.8km(RS 167.8km, SS 128.0km)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분다. 아침에 호텔에서 SS4로 가는 RS5구간은 고속화된 왕복 4차선 7번 국도를 이용해야 한다. 측풍을 받으며 달리는데 무척 바람이 세다. 날씨도 구름이 약간 껴서 식수 소모가 적을 듯하다. SS4의 초입구간은 기분좋은 길이다. 넓은 경작지와 야자수 나무가 적당히 있어 경치가 좋다. 모래채취장 부근을 지나면 숲을 통해 경사가 급하고, 큰 돌이 많은 산악지형으로 이어진다.
SS5는 코스의 대부분이 큰 저수지를 따라 가는데 시야가 넓어 모두들 고속으로 달렸다고 한다. 이 코스는 바둑판 모양으로 식재된 지역을 통과하는데 절단된 나무줄기가 무성해 부상자가 많이 발생했고, 저수지 옆 뻘도 적지 않아 빠진 선수가 꽤 있다. 그러나 한국선수들이 선전을 펼친 구간이기도 하다. 안정섭 선수가 2등, 허문범 선수가 5등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SS6는 초반에 구릉과 숲을 통과한 후 언덕을 계속 오르는 코스다. 오르막에 큰 돌들이 산재해 조심스럽다. 언덕 오르막길에 앞선수들이 멈춰 있어 잠시 지체 후 다시 출발하려는데 1단 기어가 안듣고 소리만 요란하다. 언덕에서 클러치를 과도하게 사용했고 이런 환경에도 익숙하지 않은 렌털 바이크라 크게 손볼 일이 발생했다. 경기를 지원하는 픽업트럭이 다행히 가까운 산 아래에 있어서 큰 고생을 면할 수 있었다.
오늘도 스위퍼들의 도움이 크다. 큰 길로 나가 2,000바트를 주고 마을주민의 트럭에 바이크를 실어 파타야의 정비소로 갔다. 태국에 픽업트럭이 많으니 이런 덕도 본다. SS7은 첫 날의 SS1을 역방향으로 타는 코스인데 두 번째 타서 그런 지, 아니면 방향이 쉬워서인 지 모두들 어려움없이 주파했다고 한다. 대회 2일차라 몸들도 풀리고 지형에도 익숙해 간다.
호텔에 돌아와보니 경기중 바이크가 파손돼 차에 싣고 철수하는 선수들도 꽤 보인다.
▲3월6일(경기 3일차, 최종일)
<레그3> 파타야-촌 부리 : 총 200.4km (RS 85.2km, SS 115.0km)
오늘은 마지막 날이다. 지도책을 보니 오늘 첫 코스인 SS8은 SS1, SS7과 같은 코스인데 5km가 단축됐다. 오늘로서 세 번째 타니 익숙해진 코스다. 대회 마지막날 주최측이 서비스 차원에서 배려한 듯하다. 첫 날의 어려웠던 첫 코스를 이제는 즐겨보라는 뜻인가. 그런데 다음 코스인 SS9의 난이도를 보면 그 것도 아니다. 큰 바위산을 넘는 코스인데 모두들 큰 돌을 피하느라 힘들었고, 서로 바이크를 밀어주느라 만만치 않은 코스였다고 한다. 전체 코스의 결합은 선수들의 심리와 체력상태도 고려해야 하니 종합예술 수준이다.
마지막의 SS10은 그런 대로 마칠 수 있는 코스였다. 중간에 코스미스를 할 수 있는 함정, 모래밭길, 계곡부가 진흙 밭인 V형의 각도 높은 오르막 등 어려운 구간도 몇 개 있었지만 제한시간을 5분 정도 초과하며 완주할 수 있었다. 트러블도 없이 그리고 넘어지지도 않고 말이다. 다른 코스도 이렇게 완주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 파타야항의 폐회식장으로 향할 순서다. 행사장에는 그 동안 부상당한 선수들도 모두 나와 있다. 잔디밭에서 웃통을 벗고 푹 쉬는 선수들, 휠체어에 앉아 있는 대만의 유명배우 출신 선수, 완주한 부인을 기다리는 팔 다친 남편선수. 인대가 늘어나 깁스하고 나온 선수 등 이번 시합에서는 부상자가 많다. 그러나 주변 바닷가의 파도와 더불어 모두들 즐거운 축제분위기다. 모두의 얼굴이 더욱 반갑고 아쉬워지는 순간이다. 게이트에 한 사람씩 올라가 완주메달을 받고 단체사진을 찍은 후 모두들 시내 퍼레이드에 나선다. 성원해준 파타야 시민에 대한 팬서비스다.
저녁 7시부터는 호텔 풀장 옆에서 만찬이 열렸다. 화려한 팀 유니폼을 입고 둘러앉아 식사를 하며 이웃팀들과 사진도 찍고 정담을 나눈다. 이번에 한국팀이 만들어 입은 유니폼 상의는 인기가 좋다. 누구의 솜씨인 지 배색과 디자인이 훌륭하다.
종합순위가 발표되고 시상식에서 상품과 상금이 전달된다. KMF 엔듀로위원회의 우병국 국제부 위원장은 FIM측 공인 심판자격으로 직접 시상했고, 조규준 선생은 KMF측 대표로 참가해 원활한 진행에 많은 도움을 줬다. 해외경기에는 보이지 않는 많은 준비와 노력, 희생이 필요하다. 한국팀에서는 UAM/L급에 안정남 선수가 5위, UAM/O급에서 이순범 선수가 6위, 허문범 선수가 7위에 올랐다. 올해는 작년보다 높은 클래스로 많은 선수들이 올라가 기량을 겨뤘다는 데에 의미가 있을 듯하다. 다행인 건 3일차 경기를 완주하고 부상선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제 바이크 선적 준비를 하고 짐을 꾸려야지. 빌린 바이크는 렌털에서 확인받았고, 내일 아침에 원래 있던 타이어와 함께 반납하기로 했다.
내년 행사가 벌써 기다려진다. 많은 도움을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전하며 모두들 건강하고 즐거운 엔듀로 라이프를 향유하시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