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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을 가린 대나무숲 속에 자리한 다산초당. |
역사에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전남 강진을 시인 영랑의 고향으로보다 다산의 유배지로 기억하는 이가 더 많을 것이다. 강진읍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만덕리 귤동마을 뒷산에는 다산이 10여년동안 귀양살이를 했던 다산초당이 남아 있다.
다산은《목민심서》,《경세유표》 등의 저서를 남긴 대학자로 너무나 유명하다. 그가 이 곳과 인연을 맺게 된 건 신유교난(1801년 천주교도들을 박해한 사건) 때 강진으로 귀양을 오게 되면서이다. 다산은 강진으로 귀양을 와 5년동안은 동문 밖 주막을 거처로 정하고 근신했으며 3년간은 백련사에 와 있던 혜장선사의 주선으로 이 절의 암자인 고성암 보은산방에서 신세를 진다. 그리하다 외가로 먼 친척뻘이 되는 귤동마을의 해남 윤 씨 소유인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겨 10년동안 적거생활을 했다.
하늘을 가린 대나무숲으로 둘러싸인 다산초당은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과 정석(丁石)이란 친필이 새겨진 우물터가 눈길을 끈다. 지금의 다산초당과 다산동암, 보정산방, 다성각 등은 다산유적보존회와 다산유적복원위원회에서 재건한 것이고, 다산 4경으로 일컬어지는 정석(丁石), 연지석가산(蓮池石仮山), 약천(藥泉), 다조(茶조)가 남아 있다. 정석은 다산이 바위에 새긴 친필 석각이며 연지석가산은 초당 뜰 앞에 있는, 그가 손수 만든 연못과 연못 가운데 있는 석가산이다. 그리고 약천은 다산이 차를 끓일 때 사용했다는 옹달샘으로 그는 이 약천으로 즐겨 차를 끓였다 한다. 다조는 뜰 앞에 있는 크고 넓은 바위를 말한다. 그는 이 곳에서 차를 끓였다고 한다.
초당의 동편 산마루에는 천일각이라는 정자가 있다. 여기에 오르면 강진만의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다산은 자주 이 곳에 올라 강진만을 바라보며 흑산도에 유배됐던 그의 형 정약전을 그리워하며 통곡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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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만의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천일각. |
‘아직은 미명이다. 강진의 하늘 강진의 벌판 새벽이 당도하길 기다리며 죽로차를 달이는 치운 계절, 학연아 남해바다를 건너 우두봉을 넘어오다 우우 소울음으로 몰아치는 하늬바람에 문풍지에 숨겨둔 내 귀 하나 부질없이 부질없이 서울의 기별이 그립고, 흑산도로 끌려가신 약전 형님의 안부가 그립다’
-정일근 시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중에서
다산초당까지 찾아간 걸음이라면 만덕산 기슭에 자리잡은 고찰 백련사를 빼놓을 수 없다. 강진읍에서 강진평야를 지나 바다와 맞닿는 곳에 우뚝 솟은 산이 만덕산이다. 이 절은 고려 때 8국사를 배출하고, 조선시대에도 8대사를 낸 대찰로 절을 둘러싼 동백숲(천연기념물 제151호)과 대웅전 앞에서 바라보는 강진만 일대가 장관이다. 절 밑에서 이 절을 보면 뒷산인 만덕산 봉우리가 연꽃이 피어난 듯이 보인다. 또 절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바다가 마치 호수처럼 펼쳐져 있다.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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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숲에 둘러싸인 백련사. |
강진읍내에 있는 해태식당(061-434-2486)을 비롯해 명동식당(061-434-2147), 흥진식당(061-434-3031) 등은 맛의 고장 강진을 대표하는 맛집이다. 오랜 세월동안 이어져 내려 온 손맛은 한 상 그득 나오는 한정식의 어느 반찬을 집어먹어도 나무랄 데 없다. 반찬가짓수 많기로 소문난 남도 한정식의 진수를 맛보게 된다. 특히 해태식당은 유홍준 교수의 남도답사일번지에 소개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진 유명한 식당.
*가는 요령
서해안고속도로 종착지인 목포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국도 2번을 타고 40km 남짓 가면 강진읍에 이른다. 강진읍 남쪽 외곽 3거리에서 1.6km 달리면 백련사. 다산초당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는 호산 3거리가 나온다. 좌회전해 6km 가면 오른쪽으로 백련사 가는 샛길이 나온다. 절까지는 1.6km 더 들어간다. 다산초당은 백련사에서 나와 남쪽으로 1.2km 더 내려가면 주차장이 나온다. 이 곳에 차를 세우고 산길을 10분 정도 오르면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