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프라이드다. 전혀 다른 새 차를 만들어 놓고 이름은 ‘프라이드’를 리바이벌했다. 기아로서는 두 번째다. 프라이드 앞에는 스포티지가 있다. 역시 리바이벌한 이름이다. 캐피탈, 콩코드가 연상되는 건 왜일까.
기아는 80년대로 돌아가는 복고 분위기다. 명곡은 세월이 흘러도 후배가수들이 다시 부르며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명차도 마찬가지다. 세월이 지나 기억이 아련해질 때쯤 다시 등장하는 명차들이 있다. 명곡, 명차는 반드시 리바이벌된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바이벌한다고 모두가 명곡이고, 명차였다고 봐선 곤란하다. 모두의 기억에서 잊어졌는데 뜬금없이 다시 등장해서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상상력이다. 며칠 밤을 새며 씨름하는 치열한 창작의 고통을 기꺼이 치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과거의 명성에 기대는 쉽고 편한 길을 택하는 이들도 분명 있다. 다시 프라이드를 본다. 어느 쪽인가. 빈곤한 상상력의 산물인가. 아니면 명차의 부활인가.
새로 등장한 프라이드의 엔진 라인업은 1.4와 1.6ℓ 가솔린 엔진, 1.5ℓ 디젤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알찬 구성이다. 내심 디젤엔진차를 타보고 싶었으나 시승차로 준비된 건 모두 1.6 가솔린엔진차였다. 디젤은 5월중 판매를 시작한다고 하니 그 때쯤 다시 시승할 기회를 만들기로 하고 가솔린엔진 1.6 CVVT를 타고 달리기에 나섰다.
▲디자인
옛날 프라이드와 새 프라이드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름만 같을 뿐이다. 과거 모델을 리바이벌할 때는 디자인의 일관성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포드 선더버드를 보면 그렇다. 폭스바겐 비틀은 어떤가. 미니 역시 확 달라졌지만 핏줄을 느끼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디자인의 일관성 혹은 개연성을 가지고 있어서 옛날 차와 새 차의 연관성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프라이드에는 그런 디자인적 요소가 많이 부족하다. 과거 프라이드와 현재의 프라이드가 같은 핏줄이라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 해치백 프라이드를 뇌리에 담고 있는 이들이 노치백 세단 프라이드를 만나는 건 어색한 일이다. 그렇다고 이 차의 디자인에 큰 문제가 있다는 건 아니다. 소형차로는 조금 큰 듯한 이미지를 주는 건 긍정적 요소다.
한국에서는 작아도 커보이는 차가 먹힌다. 소비자들은 남들이 튀는 컬러에 눈에 확 띄는 디자인의 차를 타는 건 즐겁게 보지만 정작 자신의 차를 고를 때는 매우 보수적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면에서 새 프라이드는 ‘내 차’를 사려는 보수적인 소비자들에게 잘 먹힐 모양새다.
큼지막한 헤드 램프는 최근의 유행을 충실히 따르고 있고 보닛, 캐빈룸, 트렁크로 분명하게 나뉘는 세단 스타일은 안정적이다. 시승차는 노치백 세단이지만 라인업에는 해치백 모델도 포진하고 있다.
투톤 처리된 범퍼와 이어지는 검정색 사이드 가니시는 거슬린다. 그 쓰임새가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없으면 더 멋있어 보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외국에서 경쟁해야 할 푸조 206이나 폭스바겐 폴로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남들 다 하는 거 따라 하는 것도 좋지만 때로 그 것이 거기에 꼭 있어야 할 이유가 없을 때엔 나만 안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실내는 멋있다. 디자인이 소형차에 어울리게 아기자기하다. 센터페시아는 아랫 부분을 자른 듯이 파냈다. 때문에 오른쪽 무릎이 기댈 데가 없어졌다. 그래서 편하다. 센터페시아에 기대면 진동충격 등으로 무릎이 아플 때도 있다. 기대지 않고 그냥 허공에 떠 있는 무릎이 오히려 편하다. 시트컬러도 심플하면서 특색이 있다. 알루미늄 페달, 풀오토에어컨 스위치 등의 감각이 새롭다. 눈길이 가다가 멈춘다. 글로브 박스에 멀티박스, 여기저기 수납공간이 있어 좋다.
▲성능
성능과 관련한 차의 첫 인상은 가속 페달을 밟는 순간에 결정된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기자는 그랬다. 시승하는 과정은 처음 받은 그 느낌, 첫 인상을 하나하나 확인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 만큼 시승하는 입장에서 차의 첫 인상은 강하고 또 중요하다.
가볍다. 프라이드의 첫 느낌이다. 가속 페달을 툭 밟은 뒤 느껴지는 차의 반응이 그랬다. 잡아끄는 느낌도 없다. 엔진의 힘이 차체를 쉽고 가볍게 이끌고 있었다. 112마력. 무게는 약 1.1t이다. 강한 힘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군더더기없는 몸무게다. 적당한 파워에 날렵하게 다이어트한 몸매가 바로 가벼움의 원천이다. 힘이 무게를 이기는 것이다.
이 차의 가벼움은 고속주행에서의 불안함과는 별개다. 시속 160km에서 180km가 넘도록 속도를 끌어올리며 차의 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차체에 부딪히는 바람소리는 급격히 커졌지만 차의 거동은 안정됐다. 발걸음 가볍게 속도는 높이면서도 흔들림은 잘 제어해 고속에서도 안정적이었다. 서스펜션과 타이어가 차체를 잘 받쳐준 결과다.
굽은 길을 돌아나갈 때도 부담이 크지 않다. 가볍게, 부드럽게, 필요하면 강하게‥.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성능을 발휘한다. 가변밸브타이밍 방식의 엔진은 낮은 속도에서부터 고속에 이르기까지 부담없이 차를 이끌었다. 물론 즉시 반응하고 한계성능이 높은 스포츠카같은 성능을 기대해선 안된다. 소형차에 맞는 성능을 기대해야 실망도 덜하다. 따라서 속도가 높아질수록 커지는 바람소리, 시속 160km를 넘어서면서 급격히 줄어드는 탄력에 실망해서는 안된다.
트렁크를 열면 작은 스페어타이어를 만난다. 임시로 정비소까지 움직일 때만 끼우는 템퍼러리 타이어다. 1년에 한 번 쓸까말까한 스페어타이어를 무겁게 싣고 다니느니 작고 가벼운 걸 준비해서 성능과 연비를 모두 높이자는 의도다. 요즘엔 스페어타이어가 아예 없는 차들도 많다.
▲경제성
가격은 1.4 DOHC가 840만~932만원, 1.6 CVVT는 998만~1,198만원이다. 1.5 VGT 디젤은 1,146만~1,214만원. 대충 1,000만원에서 안팎으로 100만원 정도 차이나는 가격대다.
시승차인 1.6 AT의 연비는 13.0km/ℓ. 디젤엔진인 1.5 VGT는 수동변속기를 달면 20.5km/ℓ에 달한다. 소형차인 만큼 경제성은 이 차가 포기할 수 없는 가장 큰 덕목 중 하나다.
프라이드의 역사를 잠깐 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 이름이 갖는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어서다. 프라이드는 기아가 만든 첫 승용차다. 86년 12월 자동차산업합리화조치가 일부 해제되면서 기아가 승용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기아의 기술 협력선이던 포드와 마쓰다 그리고 기아, 이렇게 3개 회사가 ‘메이플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합작 개발한 결과 프라이드가 개발됐다. 이 차는 미국 등 해외시장에서는 포드 페스티바로 팔렸다.
과거의 프라이드는 86년 12월 생산에 들어가 이듬해 2월 출시된 이래 2002년 2월 단종될 때까지 내수 70만대, 수출 80만대 등 모두 150만대 넘게 팔렸다. 현대에 쏘나타가 있다면 기아엔 프라이드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만큼 중요한 차다.
처음 이 차가 나왔을 때 가장 반겼던 이들은 레이서들이었다. 국내 레이스가 한창 태동할 때였던 그 당시 대부분의 레이서들이 프라이드를 타고 경기장을 달렸고, 당연히 시상대에도 부지런히 올라갔다. 과거의 프라이드는 작고, 가볍고, 잘 달리고, 튼튼한 그런 차였다. 새 프라이드가 옛날 프라이드의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고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을까. 관심을 갖고 지켜 볼 일이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강경숙 기자 cindy@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