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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봉 정상에 오르는 등산객들. 정상에는 진흥왕 순수비가 있다. |
한 남자가 있다. IMF 한파 때도 용케 직장에서 살아남았건만 계속되는 불황의 늪을 이번에는 건너지 못했다. 45세. 끗발 좋은 갑오의 나이. 그런데 말로만 듣던 ‘사오정’(45세 정년)이 되다니. 남자는 아직도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아침이면 말쑥한 양복차림으로 집을 나와 하루 종일 버스에 몸을 맡긴 채 이 거리 저 거리로 이동한다. 그 날도 버스에 올라 분루를 삼키며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낯선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던 남자는 퍼뜩 자세를 고쳐 앉았다. 광화문을 지나던 7018버스 안에서였을 거다.
서울생활 20년이 넘었지만 북한산이 그 곳에 있다는 사실을 느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출퇴근길에 매일 보았을 풍경이었건만 어쩌면 그렇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을까. 버스가 세검정 3거리에서 홍은동으로 접어들 무렵 남자는 후다닥 차에서 내렸다. 홍제천을 낀 산언덕엔 만발한 개나리와 진달래, 미끈미끈한 바위들이 마치 겸재의 산수화 속 풍경같았다.
도심에서 불과 10여분 거리. 남자는 그 곳에서 북한산을 만났다. 탕평대 성에서 비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온갖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꽃잎을 다 떨궈낸 벚나무는 푸른 잎사귀들이 새파랗게 솟고 있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던 남자의 눈 앞이 흐릿해졌다. 황사 때문인가. 아니다. 늙은 소나무에 기대앉았던 남자의 어깨가 들썩거리더니 짐승소리같은 단발마를 토해내며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을 쏟아냈다. 봄볕은 참으로 대책없이 화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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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로봉. 북한산은 봉우리마다 암봉, 암벽, 암석이 줄을 잇는다. |
북한산은 늘 그 곳에 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잊고 지내는 동안에도. 언제 어느 때 찾아가더라도 말없이 감싸 안아주는 넉넉한 가슴을 가지고 변함없이 그 곳에 있다.
서울시내는 물론 수도권 어디에서도 접근이 쉬운 북한산은 연평균 탐방객이 500만명에 이르러 ‘단위면적 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돼 있다. 1983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북한산(삼각산)국립공원은 총 넓이 78.45㎢로 북한산(삼각산)과 도봉산지역을 포함한다. 북한산의 인수봉, 만경대, 백운대, 노적봉, 보현봉, 비봉, 원효봉과 도봉산의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오봉 등 20여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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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이 발 아래로 펼쳐진다. |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뤄진 주요 암봉 사이로 맑고 깨끗한 계곡이 줄 잇는 그 속에 1,300여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또 삼국시대 이래 과거 2,000년의 역사가 담겨진 북한산성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 문화유적과 100여개의 사찰, 암자가 곳곳에 자리한 북한산은 다양한 볼거리와 생태, 문화, 역사 학습장소로도 손꼽힌다.
“북한에 있는 산도 아닌데 왜 북한산이야?”
산 이름과 관련해 아이들에게 자주 받게 되는 질문이다. 북한산은 남한산(성)과 대비해 북쪽의 큰 산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옛 이름인 부아악(負兒嶽 ; 큰 암봉 뒤에 어린이 형상의 바위가 붙어 있는 산 또는 뿔처럼 뾰족한 산)을 비롯해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국망봉)의 세 봉우리가 솟아 있다하여 불렀던 삼각산(三角山)도 북한산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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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산길에 승가사를 만난다. |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산의 정상부는 높고 깎아지른 듯한 화강암 덩어리로 형성돼 있다. 정상부의 거대한 세 봉우리가 남북으로 빚어내린 북한산의 비봉능선과 산성주능선, 도봉산의 포대능선과 사패능선에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비바람에 의해 기기묘묘하게 형성된 크고 작은 암봉, 암벽, 암석들이 저마다의 특색을 자랑하고 있어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등반 가이드
북한산은 우이령을 중심으로 북한산 지역과 도봉산 지역으로 나뉜다. 각 등산로 입구(매표소)에서 능선까지는 1시간~1시간30분, 주요 정상부까지의 왕복에는 3~5시간이 소요된다. 북한산(비봉능선~산성주능선)과 도봉산(포대능선~사패능선)의 남북 능선 종주에는 각각 6시간 이상이 걸린다. 종주코스는 상당한 체력이 요구되며 곳곳에 급경사 암봉이 있으므로 초보자는 단독산행을 피하고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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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방로. |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