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의 극적 반전, 페이톤

입력 2005년05월27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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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 페이톤이 한국 판매를 시작했다. 페이톤은 대중차메이커인 폭스바겐이 작심하고 만든 최고급차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마이바흐, 롤스로이스 등의 럭셔리 세단 바람을 타고 폭스바겐도 페이톤을 내세우며 최고급차시장에 진입한 것.

페이톤을 만드는 공장도 최고급이어서 바닥에는 원목을 깔고 투명유리로 벽을 만들어 훤히 들여다 보인다. ‘럭셔리’를 강조하려는 메이커의 의지는 읽을 수 있으나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이 과연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깨끗하고 정돈된 환경이면 충분하지 단풍나무 원목바닥에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공장은 자연스럽지 않다. 건축물이나 관광자원으로서의 의미가 있을 지 모르지만 자동차공장 자체로만 보면 폭스바겐의 드레스덴공장은 사치다.

페이톤. 사전에는 "말 두 필이 끄는 경(輕) 4륜마차"로 뜻풀이가 되어 있다. 최고급 럭셔리 세단의 이름이 ‘경 4륜마차’에서 왔다는 건 뜻밖이다.

▲디자인
증권사 직원들이 가장 반기는 사람은 허름한 점퍼 차림으로 혼자 객장을 찾는 60대 전후의 남자다. 알부자일 확률이 높아서다. 번듯한 양복에 명품으로 치장하고 007 가방 들고 객장에 나타나는 이들을 십중팔구 ‘빛좋은 개살구’라는 게 증권맨들의 이야기다.

점퍼 입고 객장에 나타난 사내. 페이톤이 딱 그런 이미지다. 크기보다 작아보이는, 소박한 모습만으로는 이 차가 최고급 럭셔리 세단이 맞는 지 의심스럽다. 너무 평범해 보여 파사트와 헷갈릴 정도다. 검소한 디자인이다. 그러나 실내에 들어서는 순간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남들의 눈에서 자유로운 실내는 누가 얘기해주지 않아도 럭셔리 세단임을 실감케 한다. 소박한 늙은이의 점퍼 안주머니에서 수십억원짜리 통장이 나오는 것과 같다.

실내는 정확히 4등분됐다. 뒷좌석에도 2명만 앉게 했다. 센터터널 위로 다리를 벌려 앉아야 하는, 어중간하고 불편한 뒷좌석 가운데 자리를 없앴다. 4개의 좌석마다 서로 다르게 온도를 설정할 수 있다. 시트는 최고 18 방향으로 조절할 수 있다. 허벅지쪽으로 시트를 길게 늘릴 수 있어 편한 자세를 잡을 수 있다.

운전대 한가운데 큼직하게 새겨진 "W" 로고가 고급스러움을 한 단계 끌어내리는 건 사실이다. 솔직히 폭스바겐의 브랜드 이미지가 고급스러운 건 아니다. 사람들은 W라는 폭스바겐 로고를 보며 ‘실속’, ‘합리적’, ‘견고함’, ‘대중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 ‘고급스러움’, ‘최고’ 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토요타가 렉서스로 고급차시장에서 승부를 걸었 듯이 새 브랜드를 내세웠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오죽하면 고급차메이커라는 벤츠조차 마이바흐라는 새 브랜드를 내세웠을까.

센터페시아는 수직으로 배치했다. 16대 9 비율의 모니터가 있고, 오디오와 공조장치 등 다양한 기능을 한 곳에서 컨트롤할 수 있게 했다. 처음엔 손에 익지 않아 서투르고 불편하지만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니 제법 편하게 조작할 수 있다.

이 정도 차에는 꼭 있을 법한 것들이 빠져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후방카메라, 내비게이션, 뒷좌석 TV 모니터 등이다.

▲성능
밖에서 보면 작아 보이지만 실내에 들어서면 큰 덩치임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동작이 꿈뜬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가볍다.

가속 페달을 꾹 밟았다. 차체는 시간차없이 육중한 몸매를 이끌고 달렸다. 공차중량 약 2.4t. 비만을 의심해야 하는 무게지만 420마력에 56.1kg·m의 토크는 무거운 몸을 가볍게 이끈다. 마력 당 무게비가 약 5.7kg, 토크 당 무게비는 42.5kg에 불과하다. 환상적인 동력성능을 기대하게 하는 수준이다.

수동 모드로 가속하면 1단에서 이미 시속 60km에 이를 수 있다. 2단 100km/h, 3단 160km/h를 차례대로 넘긴다. 각단이 허용하는 속도범위는 넓은 편. 아랫급인 V6 3.2나 3.0 TDi에는 6단 팁트로닉 변속기가 장착되는데 이 차에는 오히려 5단 팁트로닉이다. 6단 변속기가 첨단 기술이라는 상징성은 있지만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그래도 폭스바겐 최고의 플래그십카에 5단 변속기는 의외다.

정지상태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풀가속했다. 약 7초 후에 시속 100km에 도달했다. 메이커가 발표한 0→100km/h는 6.1초. 정밀테스트가 아니어서 시간의 정확성을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다만 대강의 시간을 보며 차의 성능을 짐작할 뿐이다.

0→200km/h에 도전하는 흥미로운 시도를 했다. 어지간한 차로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200km/h를 향해 페달을 밟다가 목표속도에 도달하지도 못하고 날 새는 차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W12 엔진을 얹은 차라면 못할 것도 없다. 거침없이 오르는 속도가 뜻밖의 기록을 낼 것만 같았다. 0→100km/h를 하고 난 뒤 어림잡기를 35초대 전후면 시속 200km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차를 세웠다. 가속 페달을 바닥에 닿게 밟아 풀가속을 시작했다. 2.4t의 무게를 가진 페이톤은 불과 25초만에 속도계가 시속 200km를 가리켰다.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고속주행을 하면서 차체가 낮아지고 노면에 딱 달라붙는 느낌을 받는다. 실제 페이톤은 차 높이를 조절할 수 있고 고속주행에서는 스스로 높이를 낮춘다.

동력성능은 대단했다. 그러나 이런 성능이 이 차의 가장 큰 매력일 수는 없다. 스포츠 세단이 아니라 최고급 럭셔리 세단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성능 못지 않게 중요하게 평가해야 할 부분이 승차감이다. 급코너에서 차의 흔들림과 쏠림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폭스바겐이 4모션이라 부르는 풀타임 4륜구동장치가 주행안정성을 기본적으로 높여주는 데다 차의 자세를 전자제어하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어 드리프트나 슬립을 시도해도 제대로 안먹힌다. 차가 흔들림을 스스로 제어해 자세가 불안정하지 않게 만드는 것.

중·저속에서는 물론 시속 200km를 넘나드는 속도에서 의외로 엔진소리는 작게 들렸다. 바람소리는 어쩔 수 없이 속도에 비례하면서 커지지만 엔진소리는 안그랬다.

흔들림이 적고 소음이 거의 없어 운전자와 승객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고속주행이 주는 불안감도 적다. 성능만큼 승차감에서도 큰 점수를 받을 만한 차다.

▲경제성
페이톤은 12기통 엔진을 얹은 W12 6.0과 V6 3.2 모델이 있다. 3.2는 다시 휠베이스가 긴 모델과 짧은 모델 두 종류로 나뉜다. 판매가격은 W12 6.0이 1억5,060만원. V6 3.2 LWB가 1억20만원, NWB는 8,440만원이다. 독일 현지 판매가격보다도 낮다고 한다. 한국 판매법인 설립을 기념해 특별히 가격을 낮췄다는 설명이다.

페이톤은 그러나 미국시장에서의 판매성적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페이톤 전용공장인 드레스덴공장에서 다른 차종도 생산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런저런 배경에서 한국시장에서는 가격을 확 낮춰 소비자들에게 바짝 다가가려 시도하는 게 아닐까.

대중차메이커가 만든 최고급 럭셔리 세단. 차의 좋고 나쁨과는 별개로 포지셔닝의 어중간함이 이 차가 넘어서야 할 과제이자 때론 장점일 수 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 혹은 티내지 않으려고 점퍼를 찾아 입는 부자라면 페이톤이야말로 딱 맞는 차다. 남 보기엔 허름하지만 숨겨진 부분은 최고로 무장하고 있는 차이기 때문이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강경숙 기자 cindy@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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