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람보르기니의 추억, 간디니

입력 2005년05월30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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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첼로 간디니.
부가티 EB110, 치제타 모로더 V16T, 피아트 X1/9, 람보르기니 카운타크와 미우라, 란치아 몬테카를로, 란치아 스트라토스….



이 차들은 모두 이탈리아의 유명한 카디자이너인 마르첼로 간디니의 손길을 거쳐 탄생됐다. 이 모델들의 특징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듯 간디니는 예술적인 감각이 풍부한 디자이너다. 1938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예술적인 감각을 기본으로 성장했다.



간디니는 학업을 마치고 카로체리아 기아에서 인테리어 및 익스테리어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카디자인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 건 1965년 주지아로를 대신해 카로체리아 베르토네에 입사하면서부터. 이후 1979년까지 14년간 간디니는 베르토네에서 세계적인 명차들을 만들어냈다. 주요 양산차로는 피아트 X1/9, 람보르기니 에스파다와 미우라, 알파로메오 몬트리얼 등을, 컨셉트카로는 마잘(1967년), 카라보(1968년), 브라보(1974년), 레인보(1976년), 시빌로(1978년), 툰드라(1979년) 등을 디자인했다.



이 가운데 미우라는 간디니가 베르토네에 입사한 이후 만든 첫 작품이다. 맥라렌 F1은 최근 레이서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친숙한 모델이지만 1960년대엔 독특한 디자인의 모델이었다. 또 1963년 첫 스포츠카를 양산한 람보르기니는 신생 업체에 불과했다. 당시 람보르기니는 V12 미드십 엔진을 얹은 슈퍼 스포츠카에 대해 커다란 부담감을 갖고 있었다.

람보르기니 미우라 앞모습.


이 때 탄생한 미우라는 이들의 우려를 단번에 씻어줬다. 1966년 제네바모터쇼에서 데뷔한 이 차는 모노코크 프레임, V12 4.0ℓ 325마력 미드십 엔진을 장착, 최고시속 280km의 성능을 자랑했다. 처음 공개됐을 당시 관람객들에게 충격을 준 건 당연했다. 이후 탄생한 람보르기니 마잘 프로토타입 역시 람보르기니의 차세대 디자인 방향을 제시한 모델이었다.



간디니의 성공한 컨셉트카들 가운데 하나가 오토비안치의 러나보트(1970년)다. 이 차는 쐐기형 외관과 골격으로 강한 인상을 줬으며 당시 카디자인의 교과서가 됐다. 그는 이 차의 디자인을 란치아 풀비아 랠리카에 사용했다. 또 1971년엔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5회 우승하고 3회 세계 챔피언십을 차지한 란치아 스트라토스로 또 한 번 세계 자동차업체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후 스트라토스에 자극받은 피아트는 러나보트를 기본으로 한 스포츠카를 만들기로 베르토네와 계약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모델이 바로 간디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X1/9이다. 이 차는 1972년 토리노 모터쇼에 850 스파이더의 후속모델로 데뷔했다. 세미 오픈 방식으로 멋을 부린 모델이지만 의외로 가격이 싸 당시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스포티한 스타일링과 경쾌한 주행성능으로 장수한 모델이다.



람보르기니 미우라 옆모습.
간디니는 베르토네를 그만 둔 뒤 자신의 디자인회사를 차렸다. 독립한 이후엔 람보르기니 디아블로의 디자인에 참여했으며 현재까지 세계 주요 모터쇼에 컨셉트카 등으로 계속 인사하고 있다.













진희정 기자 jinhj@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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