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진 그랜저, 식욕 줄이고 성능 높여

입력 2005년06월07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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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그랜저를 만났다. 서울모터쇼에서 발표됐으니 근 한 달만에 운전석에 앉을 기회를 잡은 것이다.

드라마 ‘모래시계’에 나왔던 일명 ‘각그랜저’에서 시작된 그랜저의 역사는 이제 4세대로 접어들고 있다. ‘최고의 국산 세단’이었으나 이제는 그 자리를 에쿠스에 물려주고 한 계단 내려앉았다. 대중성 강한 고급차로 위상이 달라진 셈이다.

그랜저는 또 한국차의 위상 변화를 잘 보여주는 차다. 1세대 ‘각그랜저’는 미쓰비시 데보니어를 들여오는 수준이었다. 공동 개발이라고는 했지만 개발의 주도권은 미쓰비시에 있었다. 그러나 이후 뉴그랜저와 그랜저XG 등으로 넘어오면서 현대자동차는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진행된 미쓰비시와의 공동 개발 프로젝트에서 현대의 역할은 갈수록 커졌다. 미쓰비시는 그 반대로 쇄락의 길을 걸었다. 지금 현대와 미쓰비시의 관계는 20년 전 두 회사의 관계가 정확히 역전됐다고 보면 될 듯하다.

▲디자인
그랜저는 컬러풀해졌다. 검정 일색이던 1세대 그랜저에서 회색과 검정, 흰색 등으로 컬러가 조금씩 바뀌다 4세대에 접어들면서 흰색, 미색, 진보라 등 모두 8가지 색상이 적용됐다. 그 만큼 차가 젊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앞은 우람하고 뒤는 심플하다. 옆에서 보면 보닛 라인이 길고 트렁크 라인은 짧다. 반면 앞오버행은 짧고 뒷오버행은 길다. 숄더 라인은 지면과 수평을 맞추며 일직선으로 그어졌다. 지붕과 각을 이루지 않고 곡선으로 내려온 C필러가 쿠페같은 분위기를 만들며 동적인 느낌을 준다. 전체적으로는 차분하고 세련된 분위기다.

트렁크쪽의 볼륨을 보며 BMW를 연상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차의 특정 부분에서 다른 차를 떠올리는 연상작용은 그랜저에서도 피할 수 없다. 정면 모습은 가로 선이 강조된 그릴, 옆으로 길게 배치된 헤드램프 등의 영향으로 조금 퍼져 보인다.

인테리어는 고급스럽게 만들려고는 했으나 그 의도를 제대로 살리지는 못한 것 같다. 변속레버와 센터콘솔을 둘러싸는 부분을 반짝이는 은색 금속성 소재로 처리한 건 좋아 보이지 않는다. 햇빛이 반사돼 눈을 부시게 하는 경우도 있거니와 그 자체가 그리 고급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또 우드그레인이 부분적으로 적용된 핸들의 고급스러움과 배치된다.

계기판과 내비게이션의 주요 버튼들은 한글로 표기됐다. 세종대왕께서 보시면 좋아하실 일이다. GPS 모니터가 달린 스킨 일체형 센터페시아는 여러 조각으로 분할되는 기존 방식이 아니다. 전체가 한 덩어리로 만들어졌다.

▲성능
운전석에 앉았다. 시트 포지션이 조금 높다. 마치 SUV에 앉은 듯하다. 일반적으로 승용차의 운전석은 조금 누운 듯한 자세가 되는데 이 차에선 반듯하게 앉을 수 있다. 주차 브레이크는 발로 밟는 풋브레이크 방식이다.

이 차 성능의 핵심은 람다 엔진이다. 3.3ℓ 람다 엔진은 V6 DOHC 방식이다. 최고출력 233마력. 놀라운 건 이 같은 배기량과 파워를 갖추고도 연비는 ℓ당 9.0km를 기록한다는 사실이다. 꽤 기특한 연비를 갖추기 위해 이 차는 약간의 희생을 감수한 듯 보인다.

233마력이라면 탱탱하고 탄력있는 파워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차 무게 1,689kg이니 1마력 당 7.2kg 정도를 감당하면 된다. 잘 달리는 스포츠 세단급 체격을 갖춘 셈이다. 하지만 순발력은 기대에 조금 못미친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차가 탄력을 받아 가속을 시작하기까지 시간차가 꽤 있다. 성능보다 연비를 고려한 엔진 세팅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초기의 탄력부족은 그러나 금세 사라진다. 멈칫했던 233마력의 파워가 살아나면서 속도를 빠르게 올려 놓는다.

5단 H매틱 변속기를 수동모드에 넣고 달렸다. 시속 60km에서 2단으로 자동변속됐다. 다시 100km에서 3단으로 넘어갔다.

그랜저가 달리는 느낌은 가볍다. 오른 발이 느끼는 가속 페달이 가볍고 스티어링 휠은 가볍다가 적당히 무거워졌다. 고속주행을 할 때 가속 페달에서 전해지는 적당한 반발력이 이 차엔 없다. 쉽고 가볍게 밟힌다. 가벼움은 미덕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여성 운전자라면 이 같은 가벼움이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쉽게 차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서다.

소음에 관한 한 이 차는 더 이상 개선해야 할 부분을 찾기 힘들다. 엔진 소음은 적절한 수준에서 잘 튜닝됐다. 저속에선 조용하고, 고속에선 듣기 좋은 소리로 변한다. 시끄럽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바람소리와 노면 소음 등도 잘 걸러낸다. 안들리는 게 아니다. 소음이 발생할 여지를 줄이고 이왕에 발생한 소음은 그냥 놓아버리는 게 아니라 잘 컨트롤하고 있다. 귀가 피로하지 않은 까닭이다.

스마트키를 적용하면 키를 몸에 지니고만 있아도 출입과 시동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잠긴 문도 키를 몸에 소지한 사람이 손만 대면 열리는 마술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시간이 갈수록 마술은 현실이 돼 사람들은 당연히 이런 상황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후방카메라는 후진할 때 차 뒤의 상황을 모니터로 보여주는데, 안전거리를 파악할 수 있게 노랗고 빨간 선을 그어 운전자의 판단을 돕는다.

▲경제성
그랜저는 2.7ℓ급 Q270과 3.3ℓ급 L330 두 모델로 라인업이 구축됐다. Q270에는 뮤 엔진이, L330엔 람다 엔진이 올라간다. 기존 대형차시장에는 Q270을, 수입차에는 L330으로 대응한다는 게 현대측 전략이다. L330은 3,464만원과 3,564만원 두 종류가 있다.

수입차시장에서 비슷한 가격대의 차들은 그랜저보다 한 급 아래의 모델들이다. 크라이슬러 세브링과 PT크루저 카브리오, 포드 몬데오, 폭스바겐 비틀과 보라, 혼다 어코드 등이 3,000만원대 중반에서 가격이 형성된 차들이다. 그랜저가 가격 대비 매력이 크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 처럼 명확히 구분되던 수입차와 국산차시장이 그 경계를 허물며 서로 섞이는 추세는 갈수록 더해질 전망이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강경숙 기자 cindy@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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