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런이다. 포르쉐가 만든 카이엔이 아니다. 쌍용자동차가 만든 카이런이다. "무한질주"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카이런은 중형 SUV다. 쏘렌토, 싼타페 등이 라이벌이다. 그러나 SUV보다 세단과 경쟁하기로 작심한 듯 하다. 신차발표회나 사전 론칭광고 등에서 줄곧 ‘세단이여 자책말라’거나 ‘세단이 울고 간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세단보다 우수하다는 의미를 담은 메시지다. 부드러운 승차감이 세단 저리가라할 정도라는 것. 쌍용이 중국 상하이자동차그룹에 편입된 후 처음 발표한 모델, 카이런을 시승했다.
▲디자인
첫 인상은 매우 중요한다. 사람이나 차나 마찬가지다. 카이런의 첫 인상은 좋은 편이 아니다. 로디우스를 많이 닮아서다. 쌍용의 패밀리룩을 구축하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디자인이 너무 어설프다. 의욕은 큰데 실력이 따라주지 않는 학생의 연습작품같다.
로디우스의 큼직한 이분할 그릴은 가로로 길어져 납작해졌다. 중세시대 기사 투구를 모티브로 했다는 그릴이다. 범퍼 아래부터 보닛에 이르기까지 촘촘히 배치된 수많은 선들이 거슬린다. 반면 뒷모습은 개성적이다. 좁은 지붕에서 넓은 아래로 퍼져 내려오는 사다리꼴 모양도 그렇지만 쌍용 엠블럼을 중심으로 강한 캐릭터 라인을 그었다. 여기에 청바지 뒷주머니같은 리어램프 등이 하나같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인테리어는 익스테리어보다 한 수 위다. 센터페시아 왼쪽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시거잭까지 동그란 버튼들을 배열해 놓은 건 페라리나 바이퍼를 연상시킨다. 고성능 스포츠카의 이미지를 빌려온 것. 계기판과 대시보드 곳곳에는 직선이 강하게 살아 있다.
이 차는 7인승이다. 트렁크 바닥에 2인용 시트가 숨어 있다. 2열 시트는 아주 쉽게 평평하게 눕힐 수 있다. 두 개의 버튼만 당긴 뒤 시트를 접으면 풀플레이트가 된다. 다양한 시트 조합이 가능하다는 것도 그렇지만 아주 쉽게 이를 조작할 수 있다는 게 더 큰 매력이다. 사실 풀플레이트 한 번 하려고 매뉴얼을 찾아 보물찾기하듯 버튼들을 찾아야 하는 차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차는 누구나 쉽게 눈치 하나로 시트를 재배치할 수 있다.
▲성능
시동을 걸면 디젤엔진이 숨을 토해낸다. 디젤엔진 맞다. 그런데 운전석에 앉아 보면 너무 조용해 디젤엔진인 지 헷갈린다. 기술 발전이 디젤엔진의 가장 큰 특징이자 단점인 소음과 진동을 크게 개선시킨 결과다.
운전을 해보면 쌍용이 왜 그렇게 세단을 걸고 넘어졌는 지 알게 된다. 승차감과 주행성능이 디젤 SUV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수준이다. 부드러웠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부드럽게 속도가 올라간다. 활동적인 반응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부드러운 게 약한 건 아니다. 강함을 이기는 부드러움이다. 부드러운 가속은 잠깐 사이에 시속 160km를 넘겼다. 도로상황이 허락하면 그 이상도 충분히 달릴 수 있겠다.
소진관 쌍용 사장은 발표행사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모든 영업소에 시승차를 배치해 많은 사람들이 타볼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차를 타보게만 하면 팔 자신이 있다는 강한 자신감이다. 차를 타보며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잠재고객일 경우 넘어갈 확률이 매우 높다. 기대 이상으로 승차감이 좋다.
디젤엔진은 고속주행에 약하다는 선입견은 이제 버릴 때가 된 듯 하다. 160km/h를 넘나드는 고속에서도 차는 조용했다. 어지간한 승용차보다 정숙했다. 바람소리도, 엔진소리도 들리는 듯 마는 듯했다. 주행성능도 탄력있다. 빠르게 속도를 높이는 게 디젤엔진답지 않다.
서스펜션도 부드럽다. SUV라고는 하지만 험로주행을 주특기로 하는 정통 SUV와는 거리가 멀다. 이른바 도시형 SUV다. 말이 SUV지 실내에 들어서면 미니밴같기도 하고, SUV같기도 하다. 퓨전 SUV라고 부르면 되겠다.
T트로닉 5단 자동변속기는 운전자의 운전특성을 파악해 변속시점을 스스로 결정할 정도로 똑똑하다. 킥다운으로 몰아붙이면 시속 80km와 120km 부근에서 변속이 일어난다.
독립 서스펜션은 코너링에서 탁월한 특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네 바퀴가 각각 독립적으로 반응하는 방식이어서 차체의 쏠림을 최대한 억제한다. 코너에서 바퀴는 제각각 바쁘게 움직이며 차체의 수평을 유지하는 편이다.
이 차에는 파트타임 방식의 4륜구동장치가 달렸다. 평소엔 뒷바퀴굴림으로 주행하고 필요한 상황에서는 4륜 및 저속 4륜으로 구동할 수 있다. 그 동안 쌍용은 휠 가운데에 오토로킹허브가 튀어나와 있었으나 카이런은 로킹허브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과속만 피하면 차를 제어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다기능 ESP 덕이다. 브레이크 제동력, 전복방지 보조장치, HDC 등을 통합 제어하는 ESP다. HDC는 급경사를 내려갈 때 효과적인 엔진 브레이크 기능을 수행한다. 저속 4륜모드를 택하지 않아도 HDC 버튼을 누르고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아주 천천히 언덕을 내려간다.
리모콘 키는 충전식이다. 열쇠구멍에 끼워두기만 하면 스스로 충전되는 방식. 운전하는 동안 자동으로 충전되니 배터리를 갈아끼울 일이 없다.
카이런은 여전히 프레임 방식이다. 모노코크가 대세인 요즘 프레임을 고집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프레임 방식은 튼튼하고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시대에 한 발 뒤진다는 느낌도 주는 게 사실이다.
▲경제성
놀라운 사실은 1ℓ로 10km를 더 달리는 카이런의 연비다. 배기량 2.7ℓ 엔진임을 고려하면 놀라운 수준이다. 당연히 1등급이다. 이 처럼 우수한 연비는 앞으로 경유 가격이 오르는 악재를 어느 정도 커버할 것으로 보인다. 우수한 연비로 인해 디젤차가 여전히 경제적인 매력을 유지할 수 있는 셈이다.
판매가격도 매력있다. 2,152만원이면 살 수 있다. 물론 가장 아랫급 모델이다. 최고급형은 3,166만원. SUV시장에서 비교적 폭넓은 가격대다. 빚을 많이 갚고 재정상태가 좋아져 차값을 낮출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SUV의 명가가 만든 카이런이다. 곧 유럽시장에 수출을 하고 모델도 좀 더 다양화한다고 한다.
카이런은 쌍용이 상하이자동차그룹으로 넘어간 뒤 처음 나온 모델이다. 카이런의 성적표가 어떻게 나올 지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다. 그 성적표가 몰고 올 후속조치도 벌써부터 관심거리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강경숙 기자 cindy@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