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를 보면 "연미복"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오랜 시간 차를 지켜 보면서 굳어진 기자의 선입견이다. 그 동안 써 온 기자의 재규어 시승기를 보면 이 표현이 빠진 적이 거의 없다. 어김없이 연미복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건 지금 다시 봐도 그렇기 때문이다.
재규어 뉴 XJ 슈퍼 V8을 만났다. 재규어코리아가 새로 출시한 모델이다. 고급차시장이 커지면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모델로 뉴 XJ 슈퍼 V8이 등판한 것이다.
▲디자인
XJ는 재규어의 최고급 모델이다. 이 차를 옆에서 보면 길다는 느낌이 든다. 5.2m에 달하니 엄청 길다고 할 만하다. ‘좀 얇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길고 두꺼우면 둔해 보인다. 길지만 얇아서 잘 달릴 것 같고 날쌔게 보인다.
둥근 헤드램프, 가운데 자리잡은 그릴, 그 위의 재규어 엠블럼. 전형적인 재규어의 앞모습 배치다. 곡선의 여유가 느껴진다. 둥글둥글한 건 실내에도 있다. 범퍼 모서리와 그릴 주변부에 살짝 크롬을 입혀 액센트를 줬다.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실내는 여유있고 고급스럽게 꾸몄다. 그러나 운전석에 앉아서 보닛 앞이 안보이는 건 운전에 자신없는 이들에겐 불안함을 준다. 좁은 공간에서 차를 움직여야 할 때 더 그렇다.
핸들 가운데에는 아가리를 쩍 벌린 재규어의 얼굴이 새겨졌다. 센터페시아는 볼 때마다 아쉽다. 재규어가 포드에 넘어가면서 변한 부분 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이 바로 센터페시아다. 재규어의 격에는 조금 맞지 않는 것 같아 눈이 갈 때마다 아쉬움이 남는다.
▲성능
제원표에 적힌 최고출력 400마력을 보는 순간 성능을 체크해 볼 의욕은 크게 줄어든다. 충분하고도 남을 힘을 가졌는데 실주행에서 그 힘의 끝을 확인해 본다는 건 불가능할뿐 아니라 의미도 없어서다. 어쨌든 이 큰 힘을 가진, 게다가 잘 생기기까지 한 시승차는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든 필요한 힘을 내줬다. 4.2ℓ의 배기량에 슈퍼차저까지 더했으니 힘에 관한 한 아쉬울 게 없다.
또 있다. 알루미늄 모노코크 보디를 적용한 차체의 무게는 1,689kg에 불과하다. 힘은 세고 그 힘이 지탱해야 할 무게는 낮으니 효율이 좋을 수 밖에 없다. 마력 당 무게비를 계산하면 4.2kg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날개만 달면 날아갈 정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최대토크는 3,500rpm에서 나온다. 이 rpm에서 느껴지는 꽉 찬 힘은 차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해준다.
운전자 마음대로 차를 다룰 수 있는 건 운전을 잘 해서가 아니다. 차가 잘나서다. 운전자가 용빼는 재주를 가졌다고 해도 차가 받쳐주지 않으면 마음대로 차를 다루는 건 불가능하다. 적어도 이 차를 타며 파워에 대한 불만은 있을 수 없다.
첨단 기능과 기술이 모두 집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브레이크 시스템은 이 차의 힘을 적절하게 조절하고 절제시켜준다.
V8 엔진의 힘이야 당연하다고 치더라도 엔진소리는 참으로 매력적이다. 시속 120km를 넘기며 200km 가까이까지 차창을 넘어 스며드는 엔진 사운드는 빠른 박자로 두드리는 드럼 소리를 듣는 듯했다.
변속기는 6단 자동으로 재규어 특유의 J게이트 방식이다. 개인적으로 재규어의 게이트 방식의 변속레버를 좋아한다. 게이트 방식이면 상황에 맞춰 부드러운 D 모드의 드라이빙과 수동처럼 각 단을 수시로 변속하는 다이내믹한 운전을 할 수 있어서다. 굳이 팁트로닉이나 스텝트로닉을 찾을 이유가 없다. 변속충격은 아주 미세해서 억지로 느끼려고 해야 겨우 알아낼 수 있을 정도다.
뒷바퀴굴림의 편안함, 강한 엔진이 주는 다이내믹함, 첨단 기술이 이를 받쳐주는 조화로움. 아쉬울 게 없는 시승이었다. 다만 조금 달렸다 싶은 후 연료 게이지를 볼 때마다 뚝뚝 떨어지는 눈금은 운전자를 새가슴으로 만든다. 연료가 그렇게 사라지는 데에도 불구하고 마음껏 가속 페달을 밟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여기에 연연할 사람은 아예 이 차에 눈길을 주지 않는 게 낫다.
▲경제성
슈퍼 V8의 가격은 1억7,400만원. 재규어의 최고급차답게 가격도 비싸다. 아우디 A8 4.2 콰트로가 배기량이나 가격 면에서 가장 근접한 경쟁모델이다. BMW 750과도 견줄 수 있고, 벤츠 S500보다는 조금 싼 수준이다. 그러나 재규어는 벤츠나 BMW와는 조금 다른 차다. 차를 잘 몰라도 무난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게 벤츠나 BMW라면 재규어는 절대로 아무나 살 수 없는 차다. 재규어를 알고, 그 매력을 이해하는 사람이라야 이 차를 고를 수 있다. 이 차의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이다. 누구나 좋아하고 두루 사랑받을 수 있는 대중적인 차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럭셔리세단시장에서 재규어의 몫을 시사해준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강경숙 기자 cindy@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