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영국 여왕의 행차 이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안동 하회(河回)마을. 냇물이 마을을 돌아 흐른다고 해 물도리동으로 불리는 이 곳은 수백 년전 반촌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금방이라도 유생들의 글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올 것만 같았던 이 조용한 마을이 그러나 이제 몰려드는 인파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어느 곳이나 할 것 없이 세간에 알려지면 피할 수 없이 치르게 되는 유명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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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교당에서 바라본 만대루. |
북적거리는 행락인파, 야박한 상흔, 어색한 분위기 등 기대와 다른 하회마을의 변한 모습에 실망한 이들이 있다면 바로 이웃해 있는 병산서원으로 향할 일이다. 비포장의 좁은 진입로에 선뜻 걸음을 옮겨 놓기 망설여질 지 모르지만 향수를 자극하는 시골길을 따라 들어가면 때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이 펼쳐진다. 아무 수식없는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병산서원으로 가는 길목은 바로 그런 깨달음을 준다.
푸른 들판은 푸른 들판인 채로, 꼭대기에 구름을 매단 키 큰 미루나무는 미루나무인 채로, 뽀얀 먼지가 쉴 새 없이 이는 비포장도로는 비포장인 그 자체로 눈물겹게 아름답다. 고추밭 위를 낮게 날아다니는 빨간 잠자리떼, 옥수수밭 사이로 장난스럽게 몰려다니는 바람들, 자지러지는 매미의 울음은 우리가 오래 전 잃어버린 바로 그 여름날의 서정을 되살려준다.
그 때 불현듯 길이 끝나며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 깎아지른 기암절벽과 절벽 아래로 흐르는 맑고 풍성한 물줄기, 그 물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곱디고운 백사장. 무릉도원을 연상케 하는 빼어난 그 절경 속에 병산서원은 자리하고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 건축이자 한국 건축사의 백미”라고 극찬한 이 곳은 전문가가 아닌 범인의 눈에도 예사롭지 않은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하회마을이 조선 중엽의 유학자 서애 류성룡과 그의 형인 겸암 류운룡이 벼슬길에 나가면서 풍산 류 씨들의 동족부락으로 자리잡은 마을이듯, 병산서원도 류성룡 선생과 관련 깊은 곳이다. 전신은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으로, 고려말부터 사림(士林)들의 학문의 전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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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산 아래로 흐르는 맑고 풍성한 물줄기와 백사장. |
1613년 류성룡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존덕사(尊德祠)를 창건해 위패를 봉안했고, 1629년 선생의 셋째 아들인 수암 류진 공을 배향했으며, 1863년 병산(屛山)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그 후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면서 많은 학자를 배출한 이 곳은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내렸을 때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의 서원 중 하나가 됐다.
경내 건물로는 존덕사, 입교당, 신문, 전사청, 장판각, 동재, 서재, 만대루, 복례문, 고직사 등이 있다. 특히 유생 200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너른 누각인 만대루가 시선을 끈다. 만대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식 건물로 서원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도록 건축됐다. 병산 아래로 흐르는 낙동강의 유유한 물줄기 위로 이따금 날아드는 백로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또 하나 눈여겨 볼 것은 백일홍꽃 그늘이 드리워진 곳에 자리잡은 토담 화장실. 마치 달팽이집처럼 뱅글뱅글 둘러쳐진 흙담의 막다른 곳이 화장실이다. 툭 터진 하늘을 안은 자연 속의 화장실. 세상에 이 보다 더 아름다운 화장실을 본 사람이 있는가.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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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보존된 병산서원. |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들어서 달리다 서안동 IC에서 빠진다. 국도 34번을 따라 가면 하회마을 이정표를 볼 수 있다. 이정표를 따라 916번 지방도로를 타고 가면 하회마을 진입 전 왼쪽으로 병산서원 이정표가 나온다. 좁은 진입로를 따라 4.2㎞ 정도 들어가면 병산서원이다.
현지 교통은 안동시에서 병산리행 시내버스가 있다. 혹은 안동시내에서 하회마을행 버스를 이용, 하회마을 진입로 3거리에서 내려 병산서원까지 걸어가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 있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