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는 사람을 만나면 느낌이 새롭다. 전에 안보이던 면도 보이고, 익히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면도 다시 발견한다. 머리, 옷, 액세서리 등으로 스타일을 바꾸고 나타나도 “그 친구 여전하군”이란 소리가 나오는가하면, 옛날 그대로의 모습이어도 느낌이 확 다른 경우도 있다.
오랜만에 만난 벤츠 E클래스가 그랬다. 옛모습 그대로지만 크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E350. 벤츠가 새로 만들었다는 V6 3.5ℓ 엔진을 얹어 한국을 찾은 이 차를 만났다. 벤츠 라인업의 주력인 E클래스 중에서도 떠오르는 강자라고 할 수 있는 모델이다.
▲디자인
E클래스는 벤츠의 카리스마를 간직하고 있다. 라디에이터 그릴과 보닛에 세워진 앰블럼을 누구나 인정하는 차, 벤츠임을 자랑하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보닛 위의 별 하나 때문에, 즉 단지 벤츠라는 이유로 벤츠를 산다. 차를 안다는 사람은 물론이고, 전혀 모르는 이라고해도 벤츠는 안다.
오랜만이라고 해야 1년이 채 안되는 사이에 다시 타본 E클래스다. 겉모습만 뜯어보면 하루 종일 돋보기를 들이밀고 관찰해봐도 변화를 찾기 힘들다. 단정한 뒷모습, 간결한 옆모습. 벤츠는 결코 화려하게 뽐내거나 잔재주를 부리는 법이 없다. 이 처럼 단정하게, 간결하게 그러나 위엄있게 우리들 앞에 존재한다.
위에서 차를 내려다보면 유리가 지붕을 다 덮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내공간과 지붕 유리 사이를 막고 있는 얇은 막을 걷으면 하늘이 보인다. 환한 자연광이 듬뿍 쏟아져 들어오는 공간에서 핸들을 잡으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운전자의 심리에 여유를 주는 건 안전을 위해서도 나쁠 게 없다. 일종의 심리적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다.
계기판에 표시되는 모든 계기들은 은색으로 차분하고 격조있게 표현된다. rpm 게이지가 출렁이고 엔진소리가 으르렁거려도 쉽게 흥분되지 않는다.
▲성능
운전석에 앉으면 푹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든다. 레이싱 포지션이 되는 것. 운전대를 붙들고 가속 페달을 밟아 뜨거운 도시 위로 나섰다. 무겁다. 핸들도 그렇고 가속 페달도 그랬다. 밟으면 밟는 대로, 혹은 그 이상으로 팡팡 튀어나가는 탄력은 없다. 자꾸 페달을 더 밟게 되는 이유다. 272마력의 파워 그리고 2,400rpm부터 5,000rpm 구간에서 나오는 35.7kg·m의 굵은 토크도 실감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단계를 지나고 차가 탄력을 받기 시작하면 숨겨뒀던 성능이 발휘된다. 고속안정감에 힘입어 시속 180km까지 속도를 올리는 데 아무런 저항이 없다. 꾸준히 끈기있게 속도는 높야졌다. 그래프를 그린다면 45도 각도로 치고 오르는 속도다. 한 번쯤 중간에 꺾이거나 쉬었다 갈 법도 한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스펜션과 타이어의 뛰어난 성능도 있지만 7단 변속기의 부드러운 변속에 힘입은 바 크다. 조용히, 그러나 힘있게, 그렇다고 가볍거나 경망스럽지 않게 잘 제어된 고성능을 느끼게 해준다.
아직도 4단 자동변속기가 대세인 요즘 6단도 아닌 7단 자동변속기를 적용한 건 너무 앞선 게 아닌가 싶다. 7단 변속기를 단 차를 운전하는 입장이라면 그 성능을 확인해보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가장 쉬운 방법이 최고속도를 한 번 찍어보는 것일 텐데, 아쉽게도 도로상에서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속도는 시속 110km가 최고다. 처녀, 총각을 한 방에 집어넣고 아무 일도 없이 하룻밤을 보내라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5단 기어비가 1대1이고 6, 7단이 오버 드라이브 상태가 된다. 5단에서 킥다운을 걸면 3단으로 내려간다. 한 단을 건너뛰어 변속이 이뤄지는 것. 효율성, 순발력면에서 효과가 있겠다.
내비게이션은 오로지 리모컨으로만 조작할 수 있어 불편했다. 수입차의 가장 큰 취약점이다. 현지화된 내비게이션이 없거나, 있어도 원래 OEM 장착품만큼 품질을 내기 힘들다는 게 이 차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 아쉬웠다.
▲경제성
9,780만원. 1억원에 약간 못미치는 가격이다. 쉽게 1억원이라고 보면 되겠다. 세계 최고 브랜드임을 가격이 말해주고 있다. 가격만 놓고 보면 동급 배기량의 다른 차들보다 확실히 비싸다. 가격으로 승부를 거는 차가 아닌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연비는 7.9㎞/ℓ. 배기량을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수준이다. 연비가 좋다고 칭찬할 수도, 나쁘다고 탓할 수도 없는 ‘적당한’ 수준의 연비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강경숙 기자 cindy@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