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피카를 처음 본 건 지난 5월 서울모터쇼 현장에서였다. 퍼시피카는 크라이슬러 부스의 메인 무대를 차지한 주인공이었다. 2년마다 열리는, 그나마 이번에는 3년만에 열린 모터쇼에서 메인무대에 올랐다는 건 그 만큼 그 회사에 있어 중요한 차라는 의미다. 혹은 때를 잘 만난 차일 수도 있다.
▲디자인
퍼시피카는 잘 다듬어진 모습이다. 잘 생겼다. 어느 방향에서 차를 봐도 군더더기없이 깔끔하다. 앞으로 살짝 기운 벨트라인이 무난하고 얌전한 디자인에 역동적인 힘을 강조하는 ‘포인트’가 되고 있다.
실내는 2개의 시트가 3열로 배치된 6인승이다. 2열시트는 특히 여유가 있다. 억지스럽게 3명이 구겨 앉는 게 아니라 2명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3열은 약간 좁은 듯하다. 물론 2, 3열 시트는 접어두고 짐칸으로 쓸 수 있다. 그러나 2열 시트는 완전히 접혀 들어가지 않는다. 접다 만 듯한 기분이다.
획기적이라고 평가할 만한 건 내비게이션 모니터를 계기판으로 옮긴 것이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운전자가 따로 모니터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릴 필요없이 계기판을 보면 내비게이션 모니터도 함께 보인다. 계기판 안쪽 위에 원래의 모니터가 있고, 거울을 통해 반사된 그림이 운전자에게 보여진다. 때문에 선명하다는 느낌은 조금 덜하다. 내비게이션은 리모컨으로만 조작할 수 있다.
퍼시피카는 ‘세그먼트 부스터’, 즉 차종 구분을 파괴하는 모델이라고 크라이슬러는 소개했다. 세단과 SUV의 장점만을 모았다는 설명이다. 차의 장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조금 오버했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기자가 보기에 이 차는 딱 ‘미니밴’이다.
▲성능
내려보며 운전하는 맛은 색다르다. 도로 위를 달리는 많은 세단들을 눈 아래로 두면서 달리면 멀리 보이는 시원함이 더해져 상쾌하다. 게다가 퍼시피카는 상시 4륜구동차다. 평상시에는 100% 앞바퀴굴림으로 달리고, 도로상황에 따라 뒷바퀴로 최대 90%까지 동력을 전해주는 방식이다.
때마침 장맛비가 내리는 길을 네 바퀴로 단단히 버티며 달렸다. 비나 눈이 오면 4륜구동차를 타는 운전자들은 괜히 우쭐해진다. 험한 환경에서 잘 달려줄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어서다. 그 믿음을 확인하면서 ‘역시 4륜구동’임을 뿌듯해 한다.
빗길에서 시속 80km는 만만한 속도가 아니다. 게다가 곡선로에서는 더 그렇다. 퍼시피카는 그 속도로 곡선로를 여유있게 빠져 나왔다. 세단보다 키가 높아 차의 기울어짐이 커지고, 이 같은 현상은 다시 운전자의 불안감을 높여 브레이크 페딜에 발이 올라가거나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게 만들기 마련이지만 퍼시피카는 커브에 진입했던 80m/h 속도 그대로 돌아 나왔다. 드라이버에게 신뢰를 주는 차만이 보일 수 있는 성능이다. 그런 면에서 주행안정성은 칭찬해주고 싶다.
문제는 직진가속이다. 가속 페달을 바닥에 붙이고 한참을 갔는데 속도계는 시속 140km를 넘기 힘들다. 3.5ℓ 253마력이면 결코 작은 힘이 아니다. 그러나 정작 실제 체감하는 힘은 70~80% 수준이다. 2,169kg에 달하는 차체무게에 작지 않은 원인이 있다. 6,400rpm에서 최고출력이 나오고 최대토크도 34.5kg·m로 3,950rpm에서 발생한다. 비교적 고속회전에 맞춰져 있어 2,000~3,000rpm의 평상적인 주행영역에서는 ‘힘’을 체감하기가 쉽지 않다.
퍼시피카의 뒷서스펜션은 5링크 방식으로 벤츠 E클래스와 같다. 세단만큼 편안한 승차감을 가졌다며 제시하는 증거다. 그러나 E클래스의 그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해도 차의 지상고가 다르고, 타이어가 다르고, 구동방식도 다른 만큼 승차감이나 차의 거동이 다를 수밖에 없다.
운전석에 무릎 에어백이 적용되고 3열에도 측면에 커튼식 에어백을 배치한 점은 안전에 대한 배려 혹은 노력으로 평가할 만하다.
변속기는 4단 오토스틱이다. 오토스틱은 팁트로닉, 스텝트로닉 등과 같은 의미다. 이 같은 변속기들이 널리 보급돼 요즘에는 아주 흔해졌다. 누구나 쉽고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운전하기에도 부담이 없다.
▲경제성
이 차의 판매가격은 5,690만원이다. 수입 미니밴 중에서 이 차와 비교할 수 있는 차는 같은 크라이슬러의 그랜드보이저와 푸조 807 정도다. 퍼시피카는 그랜드보이저보다는 한 단계 더 비싸지만 807이나 포드 익스플로러,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등 아메리칸 풀사이즈 SUV들과는 비슷한 가격대다.
연비는 7.8km/ℓ로 우수하다고는 할 수 없는 수준. 배기량이 3.5ℓ로 작지 않은 탓도 있으나 풀타임 4WD 방식이 아무래도 연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건 분명해 보인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강경숙 기자 cindy@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