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하면 사람들은 스포츠카를 떠올린다. 당연하다. 911, 박스터, 카레라 등등 하나같이 쟁쟁한 스포츠카다. 그런 포르쉐가 SUV 카이엔을 만든다는 소식은 작은 충격이었다. 그 결과물, 카이엔을 뒤늦게 만났다.
알려진 대로 포르쉐는 스포츠카메이커다. 소형차에서 대형차까지, 세단에서 SUV·MPV 등 이것저것 다 만드는 이른바 ‘종합 자동차메이커’가 아니다. 그런 포르쉐가 스포츠카가 아닌 SUV를 만들었다는 건 분명 사건이다.
카이엔은 폭스바겐 투아렉과 형제차다. 폭스바겐과 포르쉐가 손잡고 최고급 SUV 개발을 함께 한 것. 그래서 만들어진 차가 투아렉과 카이엔이다. 두 차는 같은 듯 다르다. 플랫폼을 함께 사용하지만 따지고 보면 엔진과 변속기가 다르다. 두 회사가 함께 만들어 엔진과 변속기를 달리 해서 파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물론 상당 부분의 주요 부품을 공유한다.
카이엔의 등장은 SUV의 최고급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수년 전 세계 자동차시장에 불어닥친 럭셔리 바람이 SUV시장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함께 개발된 투아렉과 함게 SUV시장에 갑자기 고급 모델들이 늘어났다. 볼보도 SUV를 내놨다. 럭셔리 SUV로는 ‘SUV의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레인지로버 정도를 꼽았는데 불과 몇 년새 쟁쟁한 모델들이 속속 진입했다.
카이엔은 모두 세종류의 모델로 라인업을 이룬다. 카이엔 터보, 카이엔S, 카이엔. 그 중 카이엔S를 탔다.
▲디자인
앞에서 보면 포르쉐, 뒤에서 보면 SUV다. 멀리서 봐도 한 눈에 알 수 있는 강한 개성을 지녔지만 그렇다고 무리한 디자인은 아니다. 굵은 선이 강하게 전체적인 인상을 지배하고 있을 뿐 디테일은 간결하고 부드럽다. 포르쉐의 DNA를 숨길 수는 없는 법, 911의 이미지가 묻어 있다.
실내에 들어서면 진한 가죽향기가 코를 간지럽힌다. 역시 키박스는 왼쪽에 있다. 키가 왼편에 있는 건 자동차 경주에서 유래했다. 왼손으로는 키를 돌리고 오른 손으로 기어를 조작하면서 0.01초라도 빨리 출발해 시간을 단축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배치다. 그래서 포르쉐의 키박스는 운전대 왼편에 있다. 카이엔도 마찬가지다. 지금에 와서는 다시 그 의미가 조금 바뀐다. 왼편에 있는 키박스를 보며 사람들은 촌각을 다투는 레이스를 연상하지 않는다. 포르쉐임을 알리는 몇 가지 증거 중 하나로 볼 뿐이다. 기능적 특성이 그 차의 상징으로 의미가 변한 것이다.
시트는 헤드레스트까지 일체형으로 만들어져 몸을 감싸듯이 받쳐준다. 엉덩이 안쪽에서 허벅지까지, 머리도 안전하게 지지해 준다.
계기판과 운전대는 현란하다. 원과 선이 어지럽게 교차한다. 짙은 회색톤 실내에 대시보드와 도어패널의 가운데를 가르는 크롬선이 엑센트다. 센터터널이 실내를 좌우를 명확히 가른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는 험로에서 사용할 수 있게 손잡이가 놓여 있다.
▲성능
카이엔S는 V8 4,511cc 엔진을 얹었다. 최고출력 340마력의 자연흡기 엔진이다. 2,500rpm부터 5,500rpm까지 최대토크 42.9kg·m를 고르게 발휘한다. 엔진은 배기량이 크지만 무게는 가볍다. 알루미늄을 많이 적용해서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반응속도가 빠르다. 터보가 아니어서 타임레그가 없다. 강하고 즉각적인, 그러면서도 차체의 흔들림이 적은 가속이 이어진다. 강한 힘은 차체에 부드럽게 전해진다. 강함과 부드러움의 오묘한 조화가 이 차에 녹아 있다.
엔진 소리 또한 매력적이다. 포르쉐의 미학은 소리를 파트너로 인정한다. 없애야 할 적으로 여겨 소리를 죽이는 게 아니라 공존해야 할 파트너로 보고 듣기 좋은 소리로 튜닝해낸다.
시승차에는 6단 팁트로닉 변속기가 달렸다. 좀 더 잘게 쪼개진 변속기어는 주행상황에 맞게 적절한 힘을 내게 해준다. 변속충격은 신경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미미하다. 변속기는 코너, 오프로드, 오르막, 내리막 등지에서 각각의 상태에 맞게 변속기어를 바꾼다. 차의 힘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스스로 판단해 움직인다. 언덕길에서는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도 차가 뒤로 밀린지 않는다. 파워 스티어링엔 속도에 대응하는 서보트로닉을 적용했다. 저속에서는 가볍고 속도가 높아질수록 핸들이 무거워진다.
온로드에서 카이엔은 스포츠카를 능가하는 성능을 보인다. 7.2초만에 시속 100km를 넘기고 코너링에서도 거침없이 달린다. 2,300kg이 넘는 거대한 체구가 네바퀴굴림의 힘을 얻어 매우 안정적이다. 고속주행할 때도 속도감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오프로드에 차를 올렸다. 온로드에서 스포츠카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인 카이엔은 오프로드에서 다시 정통 SUV의 저력을 발휘했다. 워낙 고가의 차여서 차체가 상할까 조심스러울 뿐 길이 험해서 움직이지 못할 일은 없겠다. 강한 힘에 포르쉐 트랙션제어(PTM) 장치를 갖춰 모든 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기능을 가졌다.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주행상태, 도로상황에 따라 전후좌우측으로의 동력전달이 달라진다. 디퍼렌셜 록은 물론 ABS에 ABD 등의 기능이 있다.
이 차의 에어 서스펜션은 6단계로 차 높이를 조절할 수 있다. 기본 레벨의 최저지상고는 217mm. 이를 기준으로 위로 2단계, 아래로 4단계로 차 높이를 다르게 할 수 있다. 그 차이는 위로 56mm, 아래로 116mm다. 차체 높이에 따른 제한속도가 있어 차의 안전을 유지해준다.
포르쉐가 카이엔의 등장을 예고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의문을 던졌다. SUV도 포르쉐가 될 수 있나. 이렇게 대답하겠다. “물론! 카이엔도 포르쉐다.”
▲경제성
럭셔리 SUV라는 수식어가 없어도 ‘포르쉐’라는 말만으로도 사람들은 차값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짐작한다. 1억1,000만원. 카이엔 터보는 1억8,700만원에 달한다. 가격비교는 차라리 같은 포르쉐끼리 하는 게 낫겠다. 2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911 터보보다는 싸다. 형제차라고 하는 투아렉은 4.2가 1억원을 조금 넘겨 1억59만원에 팔린다. 레인지로버 4.4가 1억2,990만원이니 카이엔만 비싼 건 아니다. 어쨌든 ‘럭셔리’ 소리를 들으려면 이제 판매가격 1억원은 넘겨야 하는 시대다.
높은 배기량, 풀타임 4륜구동, 2.3t에 달하는 무게. 그래서 이 차는 먹성이 대단하다. 5.6km/ℓ에 불과한 연비는 수시로 운전자의 지갑을 열게 만든다. 기꺼이 지갑을 열 각오가 된 사람만이 이 차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시승/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강경숙 기자 cindy@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