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가 그랜드카니발을 새로 발표했다. 카니발은 기아에게 매우 중요한 차다. 승용차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하는 기아가 그나마 체면을 지킬 수 있는 건 카니발 등 RV의 선전 덕분이다. 적어도 카니발없이 ‘RV의 기아’는 존재할 수 없다.
요즘 추세가 그렇듯 그랜드카니발 역시 세계시장을 겨냥해 만들었다. 연간 20만대를 생산해 국내에서는 4만대만 팔고 나머지를 해외시장에 내다팔겠다는 게 기아의 계산이다. 26개월간 2,500억원을 들여 개발했다고 기아측은 설명한다. 올 9월 미국을 시작으로 내년 상반기에는 유럽 등지에 수출할 계획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시장을 겨냥했다는 카니발은 11인승이다. 세금의 그물을 빠져나가려는 국내용이다.
현대자동차의 신차발표회에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정몽구 회장은 그랜드카니발 발표회에 참석해 행사를 이끌었다. 진행자는 정 회장을 소개하면서 “세계 품질경영을 이끄는”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붙였다. 현대·기아의 화두다. 세계시장에서 품질로 인정받겠다는 말이다.
정 회장은 예전같지 않은 시원하고 높은 톤의 목소리로 그랜드카니발을 소개하며 “초일류 메이커로 기아가 우뚝 설 것”임을 자신했다. 무슨 이야기인 지 잘 들리지 않는 예의 그 웅얼거리는 말투가 아니었다. 또렷하고 분명한 목소리를 들으며 카니발이 어쩌면 크게 좋아졌겠다는 기대를 해봤다.
▲디자인
그랜드카니발은 훨씬 커졌다. 길이가 무려 5m를 넘는다. 휠베이스만 해도 3,020mm에 달한다. 11인승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왜 11인승을 고집했느냐는 굳이 캐물을 이유가 없다. 승용차로 분류돼 비싼 세금을 내는 걸 피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쌍용자동차가 11인승 로디우스를 출시했으나 큰 재미를 못보고 있는 마당에 그랜드카니발의 등장은 11인승 미니밴시장을 본격적으로 활성화시킬 수 있는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물론 쌍용측은 바짝 긴장하며 시장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실내는 4열로 구성됐다. 운전석과 2열 시트까지는 어느 정도 여유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3, 4열 특히 가장 뒤쪽인 4열 시트는 11인승을 맞추기 위해 좁은 공간에 억지로 끼워 넣은 듯 하다. 좁다. 그러나 모든 좌석들이 앞뒤로 움직일 수 있어 공간활용을 다양하게 할 수 있다. 맨 뒷좌석을 접어버리고 9인승으로 여유있게 공간을 쓸 수도 있다.
"컨버세이션 미러"도 있다. 광각렌즈처럼 뒷부분을 폭넓게 비춰주는 거울로 뒷좌석에 앉은 아이들을 살펴 볼 수 있게 만든 거울이다.
▲성능
엔진은 2,902cc 170마력을 얹었다. 16밸브 커먼레일 디젤엔진이다. 비교적 여유있는 힘이다. 디젤엔진이라 순간적으로 힘을 높이는 능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시속 160km까지 꾸준히 속도를 높였다. 떨림과 소음은 이제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개선됐다. 문제는 내구성이다. 3년, 5년 후에도 소음·진동, 배기가스 등이 새 차일 때와 비교해 크게 나빠지지 않는 지 지켜 볼 필요가 있다.
그랜드카니발은 운전하기가 부담스럽다. 차가 커서다.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앞이 툭 튀어 나온다. 좁은 공간에서 차를 움직일 때 심적인 부담이 크다. 회전을 할 때는 자꾸 시선이 사이드 미러를 통해 차 뒷부분을 살피게 된다.
이 차는 11인승이어서 1종보통 면허를 가져야 운전할 수 있다. 의외로 1종 면허를 가진 이들은 많지 않다. 시장이 그 만큼 좁음을 말해주는 사실이다.
승용차나 휘발유차의 민첩함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차의 동력성능을 우수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때론 답답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꾸준히 뿜어져 나오는 힘은 ‘은근과 끈기’를 연상케 한다. 디젤엔진의 특성이다.
큰 차에 달랑 둘이 타서 시승을 해서 그런 지 힘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11명 정원을 다 태운다는 가정을 해보면 어떨까. 사실 이 차에 어른 11명을 다 태운다는 건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제일 뒤에서는 무릎을 가슴에 바짝 대고 쪼그려 앉아야 할 정도다. 레조에 7명이 다 타는 거나, 카니발에 11명이 다 타는 거나 억지스러운 일임은 분명하다.
시트를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공간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게 한 건 아이디어다. 하지만 고정되지 않은 시트들이 가끔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건 신경쓰인다. 물론 잘 살펴서 조정하면 해결되지만 살펴야 할 시트가 모두 열하나 다. 일일이 살피는 게 만만한 일은 아니다.
창문틈에 신체나 이물질이 끼이면 닫히던 유리창은 즉시 아래로 후퇴한다. 안전을 위해서다. 반면 닫힘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다거나 차창을 닫다가 내리는 과정을 반복하다 이물질이 끼이면 문이 열리지 않고 이물질을 꽉 물고 닫히는 경우가 생긴다. 조금 더 신경써서 봐야 할 부분이다.
비슷한 해외의 미니밴들을 벤치마킹해서 많은 좋은 점들을 받아들였고, 또 일부는 경쟁차들보다 우수한 장치들을 선보인 건 칭찬할 일이다. 청출어람. 벤치마킹하면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하는 셈이다.
자동차의 성능만을 떼어내 카니발을 평가하면 ‘중상’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박력과 순발력을 갖춘 건 아니고, 운전하기도 편치 않다. 시속 200km를 넘나드는 고속주행을 할 수 있는 차도 아니다. 그저 꾸준히 힘을 내고 묵묵히 달린다.
그랜드카니발에는 재미있는 장치들이 있다. 우선 자동으로 열리는 오토슬라이딩 도어. 버튼을 누르면 뒷문이 저절로 스르르 열린다. 크라이슬러 그랜드보이저, 푸조 807 등이 카니발에 앞서 이를 적용했다. 뒷문(테일케이트)도 자동으로 열린다. 또 하나, 지금까지 슬라이딩 방식으로 열리는 뒷문은 차창이 내려가지 않았지만 그랜드카니발에서는 차창이 완전히 내려간다. 이 것만으로 뒷좌석의 답답함이 크게 개선됐다.
휠베이스가 길면 회전반경이 커지는데 이 차에는 회전반경 제어장치(VRS ; Variable Rack Stroke)가 적용됐다. 회전할 때는 바퀴를 조금 더 돌려 차가 많이 회전하게 만든 장치다. 지난 5월 서울모터쇼에서 기아 부스를 찬찬히 살펴 봤다면 이 장치에 대한 기억을 살려낼 수 있을 것이다.
▲경제성
그랜드카니발은 미니밴인 만큼 효율성, 기능성은 매우 뛰어나다. 연비도 자동변속기가 10.2km/ℓ에 달할 만큼 우수하다. 배기량 3.0ℓ에서 조금 빠지는 차가 연비 10.0km/ℓ를 넘기는 건 대단한 일이다. 가솔린엔진에서는 구현하기 힘든 수준. 디젤엔진의 효율은 이 처럼 우수하다.
이 차는 연간 자동차세로 6만5,000원만 내면 된다. 계산에 밝고 검소한 사람들이라면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는 유혹이다.
그랜드카니발의 가격은 GX 고급형이 1,980만원, GLX 기본형 2,270만원, 리미티드 고급형(AT 기본)은 2,920만원이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권윤경 기자 kwon@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