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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바람이 나오는 빙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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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계계곡 입구의 물레방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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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계온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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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계계곡의 용추. |
말복 지나면 더위가 한 풀 꺾인다고 하지만 늦더위 기세도 만만찮다. 늦더위 피서지는 어디가 좋을까. 한 차례 피서객이 휩쓸고 간 어질러진 명승지보다 조용하고 깨끗한 휴식처가 그립다.
이 곳은 어떨까. 신기하게도 골짜기에 들어서면 송글송글 이마에 맺혔던 땀이 단숨에 가신다. 마치 에어컨을 틀어 놓은 것처럼 차가운 바람이 계곡의 돌틈 사이로 솔솔 흘러나온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얼음이 어는 얼음구멍도 만난다.
이 쯤에서 “아, 밀양 얼음골!”이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아니다.
이 곳은 경북 의성에 있는 빙계계곡이다. 군립공원으로 경북 8승의 하나로 손꼽히는 이 곳은 차가운 바람이 부는 계곡이라 하여 빙계(氷溪)계곡, 빙계를 둘러싼 산 이름은 빙산, 계곡이 있는 동네는 빙계리라 불릴 정도로 그야말로 마을 전체가 얼음과 관련된 골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한여름에 돌 틈에서 찬바람이 불고 얼음이 어는 얼음골이 전국적으로 몇 군데 있다. 이들 중에도 얼음을 실제 볼 수 있는 곳은 드문데, 빙계계곡에서는 얼음을 직접 볼 수 있고 만질 수도 있다.
좁은 찻길을 따라 계곡 입구로 들어서면 용추, 물레방아, 풍혈, 어진바위(仁巖), 의각, 석탑, 빙혈, 불항(佛項) 등 ‘빙계 8경’이라 불리는 풍경이 펼쳐진다. 하일라이트는 왼쪽 산중턱에 있는 빙혈과 풍혈. 빙혈은 빙산 기슭 바위에 뚫린 동굴로, 입구로 들어서면 서늘한 한기가 단숨에 땀을 씻어낸다. 찬바람은 벽돌로 막아 놓은 구멍에서 쉼없이 뿜어내고 있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도 나온다.
‘이 곳을 찾은 선남선녀들이여, 여기 만고의 신비를 간직한 세계 제일의 빙혈이 있노라’로 시작되는 글귀가 빙혈 벽을 가득 채우고 있고, 조선 후기의 관료이자 성리학자 허목의 <빙산기(氷山記)>도 걸려 있다.
이 빙혈 바로 위에 풍혈이 있다. 빙혈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바위와 바위 사이에 여름에는 서늘한 바람,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좁은 바위굴이 있다. 한 사람이 들어가 간신히 앉아 있을 정도의 좁은 틈바구니에 얼음이 얼어 바닥에 깔려 있다. ‘이거 혹시 누군가 일부러 얼음덩어리를 가져다 놓은 게 아냐’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산중에서 만나는 얼음이 생경하다. 하지만 얼음은 누가 가져다 놓은 게 아니라 그 곳에서 절로 생겨나는 것이다.
이 곳은 해마다 입춘 무렵부터 찬 기운이 들기 시작해 하지 무렵에 얼음이 얼어 평균 영하 4℃를 유지하고, 가을이 되는 입추부터는 녹기 시작해 동지에는 평균 영상 3℃의 기온을 유지하는 신비스런 곳이다. 이런 현상은 학문적으로 단열냉각현상이라고 하는데, 이론만으론 그다지 속시원하게 설명되지 않는 현장이다.
빙혈이 위치한 곳 옆으로 빙산사터와 5층 석탑이 있다. 신라 후대에 빙산사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하지만 석탑 이외에는 여기저기 널린 주춧돌과 기와조각들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 석탑은 높이 약 8m로, 전탑(벽돌로 쌓은 탑) 양식의 5층 석탑이다. 보물 제327호.
마을 건너편에 수십m 높이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그 아래 맑은 시냇물 가운데 우뚝 솟은 크고 작은 무수한 바위는 1933년 10월4일 경북도 내 경북 8승의 하나로 뽑혔다. 계곡 가운데 돋보이는 높이 10m, 둘레가 20m 정도의 유난히도 큰 바위에 빙계동(氷溪洞)이란 커다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는 임진왜란 때 이 곳에 들른 명장 이여송(李如松)의 필적이란 얘기도 있다.
빙계계곡 나들이의 또 다른 재미 하나 더. 찬바람이 불고 얼음이 어는 이 계곡 근처에 온천이 있다. 시설은 그다지 빼어나지 않으나 여러 약효를 지닌 온천수가 좋다. 빙계온천(054-833- 6660).
*가는 요령 : 중앙고속도로 의성IC 혹은 군위IC로 나와 금성면 탑리로 간다. 68번 지방도로를 따라 가음면으로 들어가 79번 지방도로로 옮겨서 달리다가 빙계 간판을 보고 현리 방면 우회전해 들어가면 빙계계곡에 닿는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