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여름이 뒷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직도 한낮에는 후끈거리는 열기가 여전하지만 기세는 완연히 한 풀 꺾였다. 붐비지 않는 조용한 산책로를 거닐며 몸과 마음을 함께 맡겨 보자. 더위에 지치고, 피서다 뭐다 들떴던 기분이 제자리를 찾는 데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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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원 같은 분위기의 서오릉. |
서오릉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에 위치하고 있으나 서울이나 다름없는 지리적 위치 덕분에 서울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빽빽한 나무숲과 그 사이로 이어지는 산책로, 넓은 잔디밭과 벤치들은 능이라기보다 공원같은 분위기다. 문화재를 보호한답시고 출입금지 팻말을 곳곳에 붙여놔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다른 묘역들과 달리 이 곳은 방문객들에게 아낌없이 너른 품을 펼쳐 보인다.
서오릉은 조선왕조의 다섯 능이 서쪽에 모셔져 있다 해서 서오릉이다. 구리시 동구동에 있는 동구릉 다음으로 큰 조선 왕실의 족분이다. 서오릉이 능기로 지정된 건 조선조 세조 3년. 당시 세조의 원자로 태어났지만 20세에 돌아간 덕종을 위해 풍수적으로 길지를 두루 찾다가 순산순수(順山順水)의 적지로 추천된 곳이 바로 여기다. 세조는 친히 이 곳을 답사한 뒤 경릉지로 정하면서부터 조선 왕실의 족분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 뒤 덕종의 아우인 예종의 창릉을 비롯해 숙종비 인경왕후의 익릉, 숙종의 명릉, 영조비 정성왕후의 홍릉이 들어서면서 일대 족분을 이루고 서오릉의 명칭을 얻게 됐다.
경릉은 세조의 아들 덕종과 그의 비 소혜왕후의 능이다. 덕종은 세조의 원자로, 세조 즉위와 함께 세자에 책봉됐으나 세조 3년 20세 되던 해에 요절했다. 그 후 그의 아들 성종이 즉위하면서 덕종으로 추존됐다. 소혜왕후 한 씨는 서원부원군 한 확의 딸로, 세조 즉위년 수빈에 책봉되고 월산대군과 성종 형제를 뒀으며 성종 2년 왕비로 진책됐다. 불교에 심취했던 소혜왕후는 초, 한, 국 삼자체의 불서와 부녀자의 예의범절을 가르친 여훈을 저술했다. 아들 교육에 매우 엄격해 세조가 우스개로 "폭비"라 했다고 한다.
이 곳의 능제(陵制)를 눈여겨 보면 왕우비좌(王右妃左)의 일반 상례와 반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왕비가 생전에 덕종의 추존에 따라 왕비로 책봉됐기에 능제도 왕릉 형식을 갖추었으나, 왕은 당초 세자로 돌아갔으므로 세자묘대로 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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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오릉은 방문객들에게 아낌없이 너른 품을 펼쳐 보인다. |
창릉은 조선조 제8대 예종과 그의 계비 안순왕후 한 씨의 능이다. 예종은 세조의 둘째 아들로, 의경세자가 돌아간 후 그 뒤를 이어 세조 4년(1457) 8세의 나이로 왕세자로 봉해졌다. 계비 안순왕후는 한백륜의 딸로 처음에는 동궁에 들어가게 돼 소훈으로 있다가 예종 즉위년에 왕비로 책봉됐다. 제안대군, 현숙공주 등 1남1녀를 낳았다.
익릉은 숙종 왕비 인경왕후 김 씨의 능이다. 이 곳 능표(陵表)는 송시열이 찬(撰)했고 심익현이 글씨를 썼다.
명릉은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민 씨, 제2계비 인원왕후 김 씨의 능이다.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이 쌍분(雙墳)으로 만들어졌고, 인원왕후 능이 우측에 있다.
홍릉은 영조 원비 정성왕후 서 씨의 능이다. 영조는 왕후의 택조를 정하면서 장차 함께 묻히고자 허석(虛石)의 제도를 쓰고 능상석물은 쌍릉을 예상, 배치해 놓고 있다. 하지만 영조의 능이 동구릉에 자리잡게 되자 홍릉 우측의 공간은 빈 채로 남아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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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창원은 조선왕조 최초의 ‘원’이다. |
서오릉에는 5개의 능 외에도 조선왕조 최초의 ‘원’으로 명종의 첫째 아들인 순회세자와 공회빈 윤 씨의 묘소인 순창원과 숙종의 후궁으로 많은 역사적 일화를 남긴 장희빈의 대빈묘가 있다. 제21대 영조의 후궁인 영빈 이 씨의 묘소인 수강원도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인현왕후와 장희빈은 서오릉에 함께 잠들어 있는데, 이들은 저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만나고 있을까.
*가는 요령
서오릉은 통일로, 녹번동, 불광역 4거리, 연신내 4거리 등 어느 곳에서도 진입이 가능하다. 서대문에서 구파발쪽으로 가다가 녹번 3거리나, 연신내 4거리에서 좌회전해 서오능로를 타고 들어가면 서오릉 입구까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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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빈묘는 그 유명한 장희빈이 잠든 곳이다. |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3호선 녹번역에서 내려 5번 출구로 나와 은평구청 방향에서 좌석 및 일반버스를 이용한다. 6호선 구산역에서 내릴 경우 서오릉 방향 출구 좌석버스만 탈 수 있다.
서오릉 주변에는 여러 음식점과 기념품 좌판이 줄을 잇는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