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는 독특한 색깔이 있는 자동차다. 고전적인 듯 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이 물씬 묻어 있는 차림새, 럭셔리 세단이면서도 스포츠카 저리 가라 할 정도의 탁월한 달리기 성능 등이 이 차의 특성들이다. 영국 럭셔리카의 자존심을 접고 대중차의 대명사인 미국 포드 슬하에 있다는 점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뜨거운 여름, XK8 컨버터블의 지붕을 열고 달렸다.
▲디자인
XK8 컨버터블은 작은 차가 아니다. 길이만 4.7m가 넘는 꽤 덩치가 있는 차다. 공차무게도 1.7t을 넘긴다. 그 큰 몸은 예술적으로 잘 다듬어졌다. 앞에서 뒤까지 미끈하다. 어디서 봐도 재규어임을 알 수 있을 만큼 개성이 살아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예술이 밥 먹여주는 건 아니다. 미학적으로 우수할 지는 모르지만 실용적인 눈으로 보면 못마땅하다. 우선 덩치에 비해 공간이 턱없이 좁다. “쿠페, 컨버터블이 원래 그렇지 뭐”라고 넘어갈 만한 사람만이 이 차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4인승이라고는 하지만 진짜로 성인 4명이 이 차에 타려다가는 “장난하냐?”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뒷좌석 두 개는 말 그대로 그냥 폼으로 만들어놨다고 보면 된다. 아이들이나 겨우 태울 수 있을까.
이렇게 비싼 차에, 이렇게 큰 차에 겨우 둘만 탄다고? 그렇다. 그렇게 만들어진 차다. 그게 불만이면 절대로 이 차 주인이 될 수 없다.
프런트 오버행은 꽤 길다. 게다가 차 높이는 낮아서 경사로를 내려서다 범퍼가 바닥에 닿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접근각이 좁은 것이다.
좁은 곳에서 타고 내릴 때는 신경이 쓰인다. 2도어답게 문짝이 커 열리는 공간을 많이 차지했다. 옆차와 바짝 붙어 있으면 사람이 드나들 공간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2도어의 아픔이다.
보닛은 윈드실드쪽에서 열린다. 정비하기에는 조금 불편한 구조다.
▲성능
날씨는 변덕스러웠다. 쨍한 하늘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달리니 다시 마른 노면이 반긴다. 수밀도 테스트를 하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지붕이 새나 안새나 꼼꼼히 확인하는 데 좋은 기회다. 다행히 비가 새지는 않았다. 의외로 비가 새는 컨버터블을 만났던 기억이 있다. 컨버터블을 타는 이들은 비오는 날 잘 살펴 볼 일이다.
지붕을 닫으면 이 차의 시야는 좁아진다. 낮은 지붕이 머리 앞으로 꽤 나가 있어 운전석에 앉으면 마치 챙이 긴 야구모자를 쓴 것 같다. 자세를 바로 잡느라고 엉덩이를 시트 안쪽으로 바짝 당겨 앉으면 시야는 더 좁아진다. 물론 지붕을 열면 시야는 문제될 게 없다. 시야가 너무 넓어서, 볼 게 너무 많아서 탈이다.
발리파킹 버튼이 있다. 이를 누르면 글로브 박스와 트렁크가 열리지 않는다. 시동을 끄고 차 밖으로 나가서 문을 잠근 뒤 다시 열고 들어와야 발리파킹 버튼이 해제된다. 다소 번거롭지만 때론 필요한 기능이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차 키를 갖고 있으면 언제든 지 그 기능을 무력화할 수 있다.
스페어 타이어는 템퍼러리 타이어다. 무게를 줄이기 위한 배려다.
가속감은 힘있고 묵직했다. 킥다운을 걸고 조금 있으면 시속 160km를 쉽게 넘어선다. 도로사정만 허락하면 시속 200km는 무리없이 주파할 수 있다. 바람소리는 각오해야 한다. 지붕을 열면 시속 120km를 넘기지 않는 게 적절한 속도다. 그 이상 넘어가면 바람소리가 급격히 커지면서 운전자를 위축시킨다.
4.2ℓ 300마력의 힘은 1,775kg의 무게를 가볍게 움직였다. 엔진소리는 귀에 착착 감긴다. 귀를 불편하게 하는 잡소리나 소음이 아니다. rpm이 레드존에 가까워지면서 엔진소리는 박력을 더했다. 그러나 그 뿐, 더 이상 균형을 깨는 소리는 없었다. 레드존에 들어서자마자 연료가 차단돼 더 이상 rpm 상승을 막았다. 힘이 적절하게 잘 다스려지고 있는 것.
마력 당 무게비 5.9kg에 0→시속 100km 가속 6.6초다. 돋보이는 순발력은 여느 스포츠카가 부럽지 않다.
시속 80~90km에서 인터체인지를 돌아나가는데 타이어의 그립감이 압권이다. 그 힘이 차체의 원심력을 이긴다. 달리고 돌아나가는 자세가 스포츠카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여러 장르의 성격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이 차를 간단하게 표현하면 이렇다. "럭셔리 스포츠 컨버터블"
▲경제성
럭셔리라는 수식어가 붙은 차가 싼 값에 팔릴 리는 만무하다. 1억5,100만원. 차의 가치에 비해 가격이 조금 더 높게 책정된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차의 가치를 어떻게 판단하는 가는 전적으로 소비자 각자의 몫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실용적인 기준을 이 차에 들이대는 이들은 5,000만원대 전후의 세단이나 미니밴을 고려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그마저도 비싸다면 국산차를 택하면 된다. 1억5,000만원짜리 차를 둘이만 타는 것과 5,000만원짜리 차를 다섯 혹은 일곱이서 타는 것. 극단적인 대비지만 차의 성격을 보는 데는 딱 좋은 비교다.
7.6km/ℓ에 달하는 연비는 우수한 편이다. 배기량 4.2ℓ에 V8 엔진임을 고려하면 말이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권윤경 기자 kwon@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