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허머 H2

입력 2005년08월28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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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V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랜드로버 디펜더는 영국군 군용차로 2차대전 때 세계를 누볐다. SUV의 대명사 짚을 탄생시킨 건 미군이다. 역시 2차대전 때 야전에서의 기동력을 높이기 위해 미군 당국이 여러 조건을 내걸어 이를 충족시키는 차를 만들어낸 게 바로 짚이다. 한국전쟁에서도 짚은 맹활약했다. 여기에 하나 더, 허머가 있다. 덩치 큰 양키를 연상시키듯 큰 체구로 세계의 전장을 누비는 미군의 발 험비. 아프가니스탄에도, 이라크에도 미군이 있는 곳이면 당연히 험비가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험비의 탄생은 짚과 유사하다. 미군 당국이 필요한 조건을 내걸고 AM제너럴이 이를 충족시키는 차를 만들어낸 것. 짚을 처음 개발했던 회사도 AM제너럴이다.

험비라는 말을 풀면 "HMMWV ; High Mobility Multipurpose Wheeled Vehicle"이 된다. 우리말로 풀면 ‘기동성 높은 다목적차’쯤 된다. 그렇게 개발된 험비를 민간용으로 만들어 내놓은 게 허머다. 워낙 덩치가 커 이를 조금 더 축소시킨 게 H2. 올해엔 좀더 작은 H3까지 나왔다.

오늘의 파트너는 H2. 슈퍼카를 주로 수입판매하는 G럭스에서 보유중인 허머 H2를 한나절동안 빌렸다.

▲디자인
허머보다 작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만만치 않은 덩치다. 작은 탱크를 보는 듯 하다. 허머에선 덜 다듬어진 야생의 냄새가 많이 났다면 H2는 많이 순해졌고 세련된 모습이다.

H2를 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작다”와 “크다”로 양분된다. 이전의 허머를 아는 이들은 작다고 하고, 처음 이 차를 보는 이들은 크다고 한다.

에어로다이내믹과는 전혀 상관없는 고집스런 디자인이 오히려 더 눈길을 끈다. 상자 몇 개 포개서 만든 것 같은 투박한 모습이다. 옆에서 보면 투박하고 거친 이 차의 매력을 잘 느낄 수 있다. 세련미와는 거리가 있다.

보닛은 좌우측 두 곳에 있는 고정장치를 풀면 쉽게 열린다. 고정장치가 노출돼 도난 위험이 있다. 보닛을 여는 순간 H2에 가졌던 막연한 거리감이 확 사라진다.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가진 차가 의외로 쉽게 보닛이 열리기 때문이다.

운전석에 앉으면 장갑차 안에 파묻히듯 들어앉은 느낌이 든다. 세상을 보여주는 차창이 실제 이상으로 좁아 보이고 차체가 든든하게 탑승객을 감싼다. 좁아 보이는 차창이지만 보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7개의 구멍을 가진 라디에이터 그릴은 짚의 상징이기도 하다. 짚과 허머는 혈통이 같다. 두 차 모두 AM제너럴이 탄생시켰다. 지금은 크라이슬러와 GM으로 제각각 팔려가 이산가족이 됐으나 같은 핏줄을 가진 차다.

버튼들이 많이 있어 처음 운전석에 앉으면 당황스럽지만 하나하나 살펴 보면 기능들을 알 수 있고 쉽게 조작할 수 있다. 구동방식을 조절하는 버튼은 센터페시아 왼편에 세로로 나란히 배치됐다.

▲성능
이것저것 뜯어보느라 만난 지 꽤 시간이 지나고서야 시승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전쟁터에 나서는 병사의 마음으로 시동을 걸었다. 꽤 크고 우렁찬 소리를 기대했지만 H2는 얌전하게 기지개를 켰다. 기대했던 소리는 그 다음에 들렸다. 가속 페달을 밟는 순간 엔진으로 빨려들어가는 공기의 흐름이 꽤 크게 울렸다. 6.0ℓ 316마력의 힘이 소리로 먼저 다가온다.

스페어타이어를 달고 차 길이를 재면 5.2m에 달하지만 시승차는 스페어타이어를 떼어내서 길이가 4,820mm다. H2에 스페어타이어는 사실 큰 의미가 없다. 펑크에 대한 부담이 거의 없어서다. 런플랫 타이어여서 펑크가 나도 움직일 수 있다.

타이어는 거의 앞뒤로 바짝 나가 있다. 특히 앞타이어는 범퍼와 맞닿아 있어 프런트 오버행이 거의 없다. 여기에다 최저지상고가 254mm이고, 에어 서스펜션이 있어 최고 272mm까지 지상고를 높일 수 있다. 험한 오프로드를 달리기에 더 없이 좋은 체형이다. 오버행이 짧아 접근 이탈각이 크고 지상고도 높아 어지간한 장애물은 피할 필요도 없이 그냥 통과할 수 있다.

때마침 비가 내려 물이 고인 곳을 치고 달려야 했다. 일반적으로 차가 물을 가르면 물이 차를 기준으로 양옆으로 튄다. 이 차는 앞타이어에서 튀긴 물이 앞창으로 들이친다. 타이어가 앞으로 바짝 붙어 있고 머드 타이어여서 물이 옆으로 밀려나는 게 아니라 앞창을 덮치듯이 튀기는 것이다.

한적한 포장도로에서 원형주행을 했다. 핸들을 돌린 채로 가속 페달을 점점 깊게 밟아 나갔다. 시속 60km를 넘기며 타이어가 힘들어하고 80km에서 비명을 지른다. 4계절용 타이어가 아닌 머드 타이어다.

미끄러운 흙길과 풀밭에 차를 올렸다. 풀타임 4륜구동이어서 타이어의 미끌림은 거의 없다. 경사가 급한 언덕을 오르내렸다. 비가 왔고, 풀밭이어서 상당히 미끄러운 길인데도 아무 문제없이 코스를 통과한다. H2 앞에 일상에서 만나는 사소한 장애물은 아무 문제될 게 없다. 어지간하면 그냥 장애물 위로 통과한다. 당당한 풍채에 강한 구동력이 뒷받침돼서 물러서거나 꼬리내리고 돌아가야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힘겨운 길에서는 막강 디퍼렌셜이 기능을 발휘한다. 센터페시아에 나란히 마련된 스위치를 누르는 것만으로 위기탈출은 성공한다. 후륜 디퍼렌셜 록, 고속 4륜모드, 4H 록, 4L 록 모드 등이 있다.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의 기능을 택해 사용하면 된다.

자동 4단 변속기는 배기량, 성능에 비해 다소 의외다. 5단 혹은 6단이어도 좋을 듯 한데 4단이라니. 그러나 변속쇼크가 거의 없이 안정적으로 차의 움직임을 돕고 있다. 엔진이 주연이라면 이 차의 변속기는 훌륭한 조역을 해내고 있다.

▲경제성
차값이 얼마일까. 1억원이다. 시승차를 제공한 G럭스의 판매가격이다. 이 곳 말고도 몇 군데에서 이 차를 팔지만 시세가 1억원 정도로 형성돼 있다.

H2는 이전 허머보다 훨씬 더 대중 가까이로 다가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아무나 쉽게 탈 수는 없는 차다. 차의 모양, 크기뿐 아니라 가격에서도 그렇다. 흔치 않은 차, 많이 팔리지 않는 차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마음 먹기에 따라 쉽게 이 차를 탈 수도 있다. 1억원 넘는 차들이 요즘엔 꽤 있고 나름대로 시장을 형성하면서 꾸준한 판매실적을 보이고 있다. 굳이 허머 H2라고 눈으로만 보고 마는 차일 필요가 있을까. 용기를 내서 다가서면 H2는 손을 내밀고 문을 열어준다. 강한 남성이라면 한 번쯤 이 차의 주인이 되는 꿈을 꿀 만 하지 않을까.

<시승차 협조 : G럭스 02-3446-4276>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권윤경 기자 kwon@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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