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 무덤 지키는 병마용의 그 생생함이란!!

입력 2005년09월25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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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농부에 의해 우연히 발굴된 진시황 병마용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을 그 엄청난 역사적 유물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시안의 한 농부가 우물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아니 뭣이여, 이게 다? 나오라는 물은 안터져 나오고, 무신 이런 쓸모 짝에도 없는 것들이 땅속에서 자꾸 나온다냐. 허메~ 근디 저, 저거는....”

실물 크기의 병마용은 섬세하고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땅을 파던 농부는 기겁을 하며 곡괭이를 내팽개쳤다. 땅 속에서 사람 머리통이 불쑥 나왔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보니 그 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한 흙인형이었다.



1974년, 이렇게 우연히 발견된 진시황 병마용갱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어마어마한 유물들을 쏟아내며 현재까지도 발굴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미 발견된 3개의 갱 외에도 진시황릉 근처에 더 많은 병마용이 묻혀 있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다.



진시황릉.
병마용(兵馬俑)이란 말 그대로 흙을 구워 만든 병사와 말을 말하는데, 진시황이 죽은 후 대군의 일부를 순장시키는 대신 이렇게 인형을 무덤에 묻은 것이다. 갱 속에서 발굴된 내용물을 보면 실물 크기의 토용(土俑) 7,000여개와 100개가 넘는 전차, 40여필의 말, 10만여개의 병기 등이다.



엄청난 그 내용물도 내용물이지만, 토용들의 모습을 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하나하나 모두 제각기 다른 자세와 표정, 복장, 머리모양은 섬뜩하리만큼 섬세하고 정교하다. 그 것도 실물 크기로 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보면 금방이라도 함성을 지르며 갱 밖으로 달려나올 것만 같다.



총 3개의 전시관으로 이뤄진 병마용갱 중 1호갱은 당시 농민이 처음 발견한 것이고, 뒤에 2, 3호갱이 발견됐다.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나눈 화칭츠.


1호갱은 세 곳 중 가장 규모가 크며 동서 길이가 230m, 넓이 612m로 총 면적이 12㎢다. 갱 내에 있는 토병과 말은 가운데를 중심으로 동쪽을 바라보며 정렬해 있다. 특이한 건 모두 한 곳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남쪽의 병사는 남쪽을, 북쪽의 병사는 북쪽을 바라보며 서 있는 점이다. 또 동쪽에 있는 가로 3열의 토병들은 무사토용(武土傭)으로 손에는 궁수병기를 쥐고 있고, 그 뒤로 6,000여명의 갑옷 입은 병사들이 역시 창과 같은 긴 병기를 들고 서 있다.



2호갱은 면적이 약 6,000㎡이며 갱내에는 기마병, 보병, 궁병과 전차들이 혼합된 대형 군대가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화칭츠에는 지금도 소량의 온천수가 나온다. 이렇게 만져보려면 요금을 내야 한다.
3호갱은 1호와 2호갱을 통솔하는 지휘본부로서 6개의 토기 병마용과 4마리의 말과 1대의 전차가 함께 출토됐다. 2, 3호갱은 현재도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에서 전시중이다.



이 곳 병마용갱과 1.5km 떨어진 곳에 진시황 무덤이 있다. 그러나 진시황 무덤은 무덤이라기보다 야산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리고, 아직까지 내부도 개발되지 않은 상태여서 큰 구경거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능묘는 37년간이나 걸려 완공됐는데 둘레가 6㎞, 높이는 40m에 이른다. 이 곳이 아직 개발되지 않은 이유는 진시황이 무덤을 설계할 때 훗날의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수은 등을 이용한 여러 함정들을 설치해뒀다고 하는데 아직 그 비밀을 풀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과학이 조금 더 발전해 그 비밀을 풀 수 있을 때까지 발굴을 미루고 있다나.



진시황릉에서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면 발길을 돌려 양귀비와 당나라 현종이 사랑을 나눴던 화칭츠(華淸池 )로 가보자. 화칭츠가 자리한 여산은 본래부터 산세가 좋고 질좋은 지하 온천수로 인해 역대 황제들의 행궁이 자리했던 곳이다.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를 위해 화칭츠를 만들었는데, 실제 양귀비가 사용했던 욕조가 남아 있다. 양귀비가 젖은 머리를 말렸다는 누각을 비롯해 구역 내에는 여러 정자들이 눈길을 끄는데, 그 중 산 중턱에 자리한 오간정은 1936년 서안사변 당시 장개석이 황급히 몸을 숨겼던 곳이라고 한다.

중국 서예 예술의 보고로 통하는 비림.


시안시내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는 비림(碑林)이다. 중국 서예 예술의 보고로 통하는 이 곳은 당대 명필 구양순과 안진경, 이양수 등의 친필 석각과 조철, 소식, 조맹부 등 숱한 명사들의 진적비 등이 집중돼 비석의 숲을 이룬다 하여 비림이라 불린다.



대안탑(大雁塔)은 서안시 남쪽 4㎞ 지점의 자은사(慈恩寺) 경내에 있다. 서안시의 상징적인 탑 중의 하나로, 《서유기》로 잘 알려진 당나라의 소승 현장(삼장법사)이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의 번역과 그 것을 소장하기 위해 세운 탑이다. 처음에는 5층탑이었으나 뒤에 10층으로 증축됐고 병화로 일부 허물어졌다가 다시 복구됐다.



즉석에서 탁본을 떠 관광객들에게 판다.
멀고 먼 실크로드로 떠나는 출발지였던 종루(鐘樓)와 고루(鼓樓)를 빼놓고 시안을 다녀왔다고 말할 수 없다. 시 중심부 대로에 종루가 있고 그 근처에 고루가 있는데, 원래 종루에는 종이, 고루에는 북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종루는 무게 5,000근의 거대한 철제 시계가 하나 걸려 있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서유기》의 삼장법사 이야기가 전해오는 대안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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