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은 물 위에 떠 있다. 마치 현실이 아닌 듯한, 물 위에 떠있는 절은 꿈 속처럼 아름답다. 그 곳에 노승과 한 아이가 있다. 개구리 등에 돌멩이를 매달며 노는 봄날의 동자승은 소년으로 자라나고, 어느 여름날 암자에 요양 온 소녀와 사랑에 빠져 산사를 등진다. 십여년 후 살인을 저지르고 가을 산사로 피해 온 남자는 고통에 절규하고, 겨울 산사로 되돌아 온 중년의 남자는 이제 내면의 평화를 구한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인생의 길을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을 배경으로 그리고 있다. 이 영화의 무대가 됐던 주산지를 찾아가는 길에는, 문득 내가 서 있는 이 계절이 어디인 지를 자문하게 만든다. 인생의 계절과 자연의 계절이 함께 흘러가고 있는 지, 아니면 그 반대인 지….
드라마나 영화 등으로 유명세를 타는 곳이 어떻게 변모하는 지 익히 보아 왔던 터에 주산지로 가는 걸음은 그리 가볍지만 않았다. "이 곳은 또 영화로 인해 얼마나 망가졌을까.’그런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주산지로 향하는 길은 양쪽으로 도열한 코스모스와 과수원을 따라 더없이 한적하고 아름답다.
다행히, 다행히도 주산지는 망가지지 않았다. 영화 덕분으로 꽤 많은 여행객들이 몰려들고 있음에도 깨끗한 모습을 지키고 있고, 무엇보다 주변에 흉물스런 상가건물들이 아직까진 들어서지 않고 있다. 한 때 승용차가 주산지까지 들어갈 수 있었으나 지금은 500m 남짓 떨어진 곳에 주차장을 만들어 놓고 차의 진입을 막은 건참 잘한 일이다. 다른 촬영지들과 달리 영화가 제작된 후 물 위에 세웠던 절집 세트를 미련없이 없앤 것도 현명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000영화 무대’가 된 곳이라며 큰 현수막을 내걸고 얄팍한 상흔이 판치는 곳으로 전락시키지 않은 것 또한 다행한 일이다. 이 곳을 찾는 관광객을 위해 주산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를 설치한 게 이 곳의 유일한 변화다.
영화로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기 전까지만 해도 주산지는 사진작가들이나 가끔 찾던 숨겨진 여행지였다. 산중에 자리한 주산지는 인공으로 만들어진 호수다. 청송군 부동면 소재지인 이전리에서 3km에 위치한 이 곳은 약 270년 전에 만들어졌다. 길이 100m, 넓이 50m, 수심 7~8m 로 그다지 큰 저수지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말라 바닥이 드러난 적이 없다고 한다. 특히 저수지 속에 자생하는 약 150년생 능수버들과 왕버들 20여수는 울창한 수림과 함께 더없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곳에서부터 계곡을 따라 별바위까지 이르는 등산로도 손꼽을 만한 경관이다.
*가는 요령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에서 나와 안동시내를 거쳐 청송 방면 34번 국도를 탄다. 37km 남짓 가면 진보면 월전리. 이 곳에서 청송 방면으로 우회전해 31번 국도를 따라 14km 가면 청송읍. 청운리에서 좌회전해 914번 지방도를 타고 8.7km 가면 왼쪽으로 주왕산국립공원 입구가 보인다. 이를 지나쳐 계속 직진하면 주산지와 절골 계곡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좌회전해 2km 남짓 들어가면 주산지 주차장이다.
*별미
주산지 주변에는 음식점이 없다. 별미를 맛보고 싶다면 청송 달기약수터의 백숙요리를 빼놓을 수 없다. 약수식당(054-873-2167, 2423)이 그 중 터줏대감격. 닭과 찹쌀, 마늘, 인삼, 대추 등을 넣고 약수로 푸욱 고은 백숙은 연하다. 무슨 특별한 조리법이 있는 게 아니라 약수가 독특한 맛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스틸 사진은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의 장면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