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증시에 미국 GM이 파산보호를 신청할 것이란 소문이 나돌면서 한 때 긴장감이 돌았다. 이미 GM의 부품 자회사인 델파이가 파산보호를 신청한 데 따른 여파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증권사에 근무하는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GM이 파산보호를 신청할 것이라는데, 그렇게 되면 한국 자동차업계가 반사이익을 얻지 않겠느냐는 게 질문의 요지다.
과연 그럴까. 보는 사람마다 시각은 다르겠지만 업계에선 "결코 그렇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GM의 위기는 표면적으로는 아시아, 특히 일본과 한국에 득이 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오히려 위기가 될 수 있어서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미국 의회가 제기하는 "환율조작"이다. 일본과 한국정부가 환율조작에 개입했고, 그 결과 두 나라 업체들이 상대적으로 미국차보다 싼 값에 자동차를 판매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는 미국 내에서 강력한 우먼파워를 자랑하는 힐러리 클린턴 전 대통령 부인이자 상원의원이 나서고 있다.
보다 중요한 건 힐러리 의원의 말에 상당히 많은 정치인들이 공감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아이콘이자 자존심인 GM이 망한다는 건 곧 미국의 상처이고, 이는 세계 최강대국으로서의 위상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GM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람 모두가 유권자임을 감안할 때 GM이 몰락할 입장까지 처하면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예측이다.
그렇다면 경제문제가 정치논리로 풀어질 때 어떤 영향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우선 미국이 일본과 한국 자동차업체에 불이익을 줄 수 있음을 지적한다. "환율조작"을 핑계삼아 미국에서 판매되는 일본과 한국차에 고율의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달 미국 디트로이트에 취재를 갔을 때 이 같은 분위기는 충분히 감지되고도 남았다. 심지어 GM의 고위 임원도 의회의 이런 움직임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했을 정도다. 오랜 동안 고배기량 저효율의 자동차를 앞세우다 유가폭등이라는 유탄을 맞아 판매가 부진한 걸 알면서도 겉으로는 이를 일본과 한국의 환율조작으로 몰아세우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자 일본은 발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일본차를 판매하는 토요타는 당장 판매 인센티브를 없앤다고 발표했다. 필요하면 GM이 하이브리드카를 개발할 수 있도록 적극 돕겠다는 뜻도 밝혔다. 토요타 스스로 판매를 줄이고, GM의 판매는 늘려주겠다는 뜻이다. GM이 망해봐야 토요타에게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재빨리 간파한 것이다. 실제 GM이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일부 토요타 기술을 사용했다는 점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다.
토요타의 움직임과 달리 한국은 상대적으로 여유를 부리고 있다. 이는 미국 자동차시장에서 한국차의 비중이 작을 뿐 아니라 판매대수도 변변치 않은 상황에서 불이익은 일본이 먼저 당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심지어 현대는 얼마 전 이례적으로 한국차의 비중이 미국에서 매우 작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틈만 나면 미국에서 승승장구한다고 자랑하던 태도가 하루 아침에 바뀐 셈이다.
그러나 어차피 미국이 불이익을 준다면 이는 일본과 한국 양측 모두에게 적용되고, 이 경우 한국보다 일본이 더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의 끈끈한(?) 관계를 감안하면 어느 순간 한국에게만 불이익이 돌아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세계 최강대국을 유지하는 데 있어 미국에게 일본의 경제력은 결코 적지 않은 매력이기 때문이다. 그럴싸한 명분만 찾아낸다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미국을 상징하는 기업이 휘청한다는데 정치인들이 외면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설명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도 일본처럼 보다 적극적인 대응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눈치를 보자면 실컷 욕먹는 세상이지만 주력 수출시장인 미국에서의 후퇴는 더 큰 실패를 초래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권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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