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볕 희롱하며, 아득한 시간 속으로…

입력 2005년11월12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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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집과 초가집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외암리 민속마을 전경.
한 치 빈 틈 없이 꽉 찬 가을볕이다. 그냥 보고만 있기가 아깝다. 풍덩, 저 가을볕 속으로 한 번 빠져 보자. 온몸에 내리쬐는 가을볕을 희롱하며 홀씨처럼 가볍게 아득한 시간 속으로 떠나보자.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를 찾아가면 시간이 멈춘 듯한 고적한 옛마을과 마주하게 된다. 광덕산 아래에 자리한 외암리 민속마을은 500년 전 이 마을에 정착한 예안 이 씨 일가가 현재까지 살고 있는 집성촌으로, 조선조의 옛 모습이 고스란히 보전돼 있다.



마을 입구 부릅뜬 눈의 장승을 비롯해 물레방아, 연자방아며 구불구불 이어지는 좁은 돌담길을 따라가면 기와집과 초가집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까치밥을 남겨 놓은 감나무와 밤나무, 은행나무, 산수유 열매가 빨갛게 익은 마당에 내걸린 빨래가지며 강아지가 뛰노는 풍경은 박제된 풍경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는 여느 민속마을과 달리 이 곳은 주민들이 거주하면서 옛모습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집집이 쌓은 돌담장은 외암리 민속마을의 대표적 풍경이다.


모두 60호 정도 되는 집들은 대부분 초가집이고, 기와집이 10여 채 된다. 이들은 충청남도 반가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데, 대개 100년에서 200년 이상씩 된 집들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양반집은 영암군수댁과 이참판댁이라 불리는 집이다.



영암군수댁은 옛 양반가의 정원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집으로, 울창한 고목과 수석이 어우러진 멋진 정원을 거느리고 있다. 또 이 집의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라고 전해지는데 현재는 일반인의 출입을 막고 있어 아쉽다.



가을볕에 고추며 감 껍질, 시래기 등을 말리고 있다.
이참판댁은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된 집으로, 조선 말기에 이조참판을 지낸 퇴호 이정렬(1865~1950)의 집이라 한다. 이사종의 11세손인 이정렬은 할머니가 고종 비인 명성황후의 이모여서 명성황후로부터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이 집도 고종황제가 하사한 집으로, 영왕이 9세 때 쓴 현판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건물 자체만으로도 민속자료의 가치가 있지만 이 집에서는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민속주인 연엽주를 만들어 팔고 있다. 연엽주는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된 술로 예전에는 매년 봄 고종에게 진상했던 술이라 한다. 연엽주는 찹쌀로 빚은 누룩에 연근과 솔잎을 넣고 발효시켜 만든 술로 맛은 정종과 비슷하다.



외암리 민속마을은 마을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돌담장에 둘러싸인 듯한 느낌을 줄 만큼 집집이 쌓은 돌담장이 눈길을 끈다. 이 돌담은 대개 막돌을 허튼층쌓기(규칙없이 아무렇게나 쌓는 방법)로 쌓은 모습인데,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 마을과 함께 가장 아름다운 돌담으로 손꼽힌다.



돌담과 함께 마을 구석구석으로 냇물이 파고들어 흐르는 것도 독특하다. 마을의 배산인 설화산이 불기를 내뿜고 있는 형상이라고 해 그 불기를 잠재우려고 마을을 휘감고 내려가는 개울을 집집마다 끌어들여 인공으로 조성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집집마다에도 작으나마 연못이 있는 걸 쉬이 볼 수 있다.

널뛰기, 떡메치기 등 관광객을 위한 여러 민속체험 행사를 베풀고 있다.


이렇게 옛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덕분에 외암리 민속마을은 사극이나 영화 촬영이 많이 이뤄진다. 드라마 <덕이>와 <야인시대>, 영화 <취화선>과 <태극기 휘날리며> 등이 이 곳에서 촬영됐다. 그 때문에 더욱 많은 관광객이 외암리 민속마을을 찾고 있다. 해마다 10월중순경이면 (사)외암민속마을보존회에서 개최하는 짚풀 문화제를 비롯해 매주 일요일에는 떡메치기 행사를 벌이고 고구마 캐기, 솟대 만들기, 추사체 탁본 뜨기, 두부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 등이 관광객을 위해 열리고 있다.



*가는 요령

경부고속국도 천안IC → 국도21번(20km) → 온양온천 → 국도39번(6km) → 송악 외곽도로 진입통로 → 외암리 민속마을에 이른다.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서평택IC → 국도39번(28km) → 온양온천 → 국도 39번(6km) → 송악 외곽도로 진입통로 → 외암리 민속마을에 닿는다.

박제된 풍경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외암리.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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