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의 4세대 중형 세단, 조용한 로체

입력 2005년11월21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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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가 중형 세단을 교체했다. 옵티마의 바통을 새 얼굴 로체가 이어받은 것.

기아의 중형차 역사는 콩코드-크레도스-옵티마로 이어진다. 그러니 로체는 4세대 모델이 된다. 2세대까지는 일본 마쓰다의 중형차를 베이스로 만든 모델이고, 옵티마와 로체는 쏘나타와 플랫폼을 공유하는 기아의 독자모델이다. 단지 이름만 살펴도 기아와 현대는 다르다. 현대의 중형차는 30년동안 쏘나타 하나다. 반면 기아는 이름이 계속 바뀌어 왔다. 역대 4종의 중형차 이름만 불러봐도 기아자동차 질곡의 역사가 와 닿는다.

새 얼굴을 만나며 옛날을 추억하는 건 맞선을 보는 자리에서 첫사랑을 떠올리는 격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예의는 아니다. 새 차이니 새 기분으로 새롭게 대하는 예의를 차리자. 시승차는 로체 LEX 2.0으로 자동변속기를 달았다.

▲디자인
압구정동에 있는 기아 국내 영업본부에서 만난 로체는 예뻤다. 컬러풀한 차들을 전시한 데다 조명이 받쳐줘 실제 이상으로 돋보였다. 발표회 며칠 후 주차장에서 만난 로체는 또 달랐다. 예쁘다는 느낌은 사라지고, 대신 무난한 이미지가 새로 느껴진다.

중형차임이 분명한데 차는 작아 보인다. 막상 차 안에 앉아보면 작거나 좁지 않은데 밖에서 보기엔 ‘중형차 맞아?’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화장발, 조명발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로체는 엔진룸, 실내, 트렁크로 3분되는 전통적인 세단이다. 앞뒷모습은 튀어 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노력한 것처럼 소박하다. 과거 옵티마가 부분적으로 과장되고 튀는 면이 있었다면 로체는 그 반대다. 보수적이다. 큰데 작아 보이고, 튀지 않는 보수적 디자인이어서 공무원들이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내에 들어서면 느낌은 달라진다. 블랙톤으로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고 대시보드에 우드그레인을 배치해 고급스러움을 강조했다. 계기판, 스티어링 휠, 시트, 대시보드 등의 촉감이 좋다. 질감이 우수해 손으로 느껴지는 품격이 있다.

운전자의 입장에서는 인테리어에 충실한 차가 더 좋다. 익스테리어가 예쁘고 멋있으면 좋기는 하지만 그 것을 보고 즐기는 사람들은 운전자가 아니다. 차 바깥의 사람들이다. 정작 돈을 내고 차를 산 사람은 실내에서 인테리어만 마주하면서 운전한다. 외부 디자인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인테리어가 그 만큼 더 실질적이고 의미있다는 말이다. 로체의 인테리어는 선택할 수 있다. 베이지 투톤, 블랙, 브라운 프리미엄, 블랙 프리미엄 중 소비자의 취향대로 고를 수 있다.

엔진룸은 비교적 공간여유가 있는 편이다. 정비하기가 편해서 정비사들이 좋아할 것 같다. 트렁크에는 골프백 4개가 들어간다.

▲성능
로체에는 현대·기아연구소가 개발한 세타엔진이 올라간다. 1.8, 2.0, 2.4ℓ로 배기량이 다른 세 종류의 엔진이 있다. 알루미늄 엔진블럭을 적용한 경량엔진이다. 23kg을 감량했다고 한다. 무게를 줄이는 것 자체가 큰 기술이다. 차의 실질적인 힘이 세지고 연비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세타 엔진은 배기량이 큰 2.4ℓ 엔진이 오히려 연비가 좋다.

시동을 걸었다. 첫 시동소리가 경쾌하다. 방음이 잘 된 듯 실내에서는 엔진소리를 듣기 힘들다. 중형차 수준임을 감안해 기대했던 수준보다 더 조용하다. 실내에서 듣는 엔진소리는 다른 세상 소리처럼 아득하다. 일본차, 특히 토요타의 조용함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무난함을 선호하는 40~50대의 점잖은 이들에게는 기분 좋은 첫 느낌이다.

가속반응은 즉각적이다. 밟으면 튀어나간다. 자동변속기에서 나타나는 가속지체시간은 느끼기 힘들다. 그러나 스포츠카의 가속감과는 조금 다르다. 경쾌하고 가볍지 않다. 잡아끄는 듯, 타이어가 바닥에 늘어붙은 듯 끈적거린다.

시승차의 엔진은 2.0ℓ 144마력이다. 공차중량은 1,395kg으로 마력 당 무게비가 9.7kg이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의 도달시간이 11.5초다. 배기량과 출력, 가속시간 등이 적절하다. 고성능 세단이라기엔 조금 약하지만 중형 세단의 편안함을 유지하며 역동성을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속도는 도로만 허락하면 원하는 만큼 나온다. 물 흐르듯 흐름이 좋은 도로에서는 시속 160km 이상을 낼 수 있고, 한적하다 싶으면 200km에도 도전할 만 했다. 북악스카이웨이의 와인딩로드를 거침없이 오르내리는 걸 보면 국내의 어떤 도로에서든지 힘이 달리는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유의 조용함은 속도가 높아지면서 사라지고 차창에서 부서지는 바람소리가 실내를 파고든다. 상대적으로 엔진소리는 여전히 작은 편이다. 특이한 점은 속도가 높아질수록 운전대가 무거워진다는 점. 물론 대부분의 차들이 그렇지만 로체는 무거움을 확연히 느낄 수 있을 만큼 차이가 컸다. 물론 안전을 위해 좋은 현상이다. 속도가 높을수록 운전대의 조그만 움직임에도 차의 흔들림이 큰 만큼 운전대를 무겁게 해 차의 안정성을 높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실내에서 손이 닿은 모든 곳의 질감은 아주 좋다. 고급스럽고 치밀하다. 부품들이 꽉 짜여져 빈틈없음이 손으로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사소한 부분이 오히려 돋보인다. 변속레버가 그랬다. 수동에서 자동으로 변속레버를 옮길 때 힘없이 빠지는 느낌이다. 자동에서 수동으로 옮길 때는 잘 물려 들어가지만 그 반대일 때는 치밀하게 물리는 느낌 대신 툭 던져지는, 혹은 빠지는 기분이다.

로체에는 급제동 급선회 시 엔진토크와 브레이크를 함께 조절해주는 차체제어장치(VDC)가 적용됐다. 대형 사이드 에어백은 허벅지까지 커버해주고 여기에 커튼식 에어백이 추가돼 실내충격을 최대한 흡수한다. 운전석 아래로 무릎보호대가 있고 연료탱크 누출진단 시스템도 적용됐다.

무난함이 특징일 수 있을까. 로체를 보면서 무난함도 특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난함은 의외로 소비자들에게 잘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특히 국내 소비자들은 보수적이고 무난한 차들을 선호한다. 빨간 색에, 눈에 확 띄는 디자인의 차를 사람들은 좋다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이 차를 살 때는 은회색계열의 무난한 디자인을 고른다. 보기엔 개성 강하고 화려한 차가 좋지만 내 차는 무난하고 평범한 차여야 한다는 게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에 대해서 보이는 이중적인 태도다. 그런 면에서 로체는 저력이 있다. 그 저력은 무난함에서 나오는 힘이다.

▲경제성
앞서 말했듯이 로체의 연비는 2.4ℓ엔진이 11.1km/ℓ로 조금 더 좋다. 1.8과 2.0 엔진은 10.9km/ℓ로 같다. 모두 자동변속기 기준이다.

로체의 판매가격은 1,473만원부터다. 1.8LX 모델의 값이다. 가장 비싼 모델은 2.4 LEX 블랙 프리미엄 최고급형으로 2,619만원이다. 쏘나타의 가격대는 1,689만원부터 2,699만원까지다. 쏘나타 V33은 3,200만원. 2.0부터 3.3 엔진을 포진한 쏘나타보다 조금 낮은 가격대에 로체가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다. 쏘나타와의 경쟁을 피할 수는 없겠으나 나름대로 차이를 두려고 노력했음을 보여주는 가격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선택의 폭이 넓어졌지만 아쉬운 면도 있다. 1,400만원대의 쏘나타를 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3,200만원대의 로체를 사려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권윤경 기자 kwon@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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