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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금호 |
중원문화가 꽃핀 충주는 역사 향기 그윽한 곳이다. 중원고구려비 중앙탑 등 문화재가 즐비하고 남한강 중상류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관광자원 또한 풍부해 발길 닿는 곳마다 명승지가 이어진다. 우륵이 가야금을 타며 즐겼다는 탄금대를 비롯해 충혼탑·우륵기념비·대홍사·탄금정 등과 함께 상모면에는 수안보온천·문경새재 관문·미륵리유원지·월악산 송계계곡 등이 줄을 잇는다. 또한 충주호 일대에는 충주댐 건설에 따라 단양까지 뱃길이 생겨 수상관광자원이 개발됐다.
이 중 특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장소는 넓은 조각공원과 호반이 어우러진 중앙탑 사적공원이다. 국보 제6호로 지정된 중앙탑을 중심으로 넓은 잔디밭과 조각작품들이 어우러져 역사와 예술의 향기가 그윽하다. 아이들에게는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맘껏 뛰놀 수 있는 여유로운 소풍장소로 더없이 좋고, 연인들에겐 기억에 남는 데이트 장소가 될 만하다. 또 공원 안에 충주박물관과 향토민속자료전시관, 남한강 수석전시관이 자리하고 있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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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주박물관 |
사진으로만 보다가 직접 중앙탑을 보는 이들은 그 늘씬한 규모에 먼저 놀란다. 게다가 인위적으로 조성한 높다란 축대를 지반으로 하고 있어 ‘우러러’ 봐야 하는 양상이라 더욱 느낌이 높고 크게 다가온다. 높이는 14.5m로 현존하는 통일신라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큰 석탑으로, 화강암으로 된 2층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을 이뤘다. 국보 제6호. 신라 원성왕 12년에 건립됐다고 하는 중앙탑의 정식 이름은 중원 탑평리 7층 석탑. 이 탑을 건립한 시기인 통일신라시대 때 이 곳이 국토의 중앙에 위치한다고 해 중앙탑으로 불려졌다. 당시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 지역에 탑을 세워 신라의 영토임을 널리 알렸다. 그 가운데 중앙탑은 고구려의 국원성이었던 이 지역에서 신라의 강한 모습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세운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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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탑 |
중앙탑과 관련해 두 가지 전설이 남아 있는데, 하나는 이 지역에 왕이 태어날 기운이 있다고 해 그 기운을 없애기 위해 탑을 세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신라의 고승 김생이 이웃 반송산에 사찰을 세우고 서적을 보관하기 위해 탑을 세웠다는 전설이다. 당시 신라의 남쪽과 북쪽 끝에서 걸음속도가 같은 두 사람을 동시에 출발시켰더니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이 곳에 도착했으며 그 때부터 중앙탑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중앙탑 사적공원 인근에 있는 중원고구려비도 눈여겨 볼 가치가 있는 중요한 문화재다. 선돌마을 어귀에 서 있던 돌기둥이 고구려비로 밝혀진 건 1979년 예성문화연구회에 의해서다. 이후 단국대학교 학술조사단이 현지 조사해 학계에 알려지게 됐다. 국내외에 현존하는 고구려비는 현 길림성 집안시 통구에 있는 광개토왕릉비와 중원고구려비뿐인데, 이 비는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유일한 고구려비이므로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이 비는 마모된 부분이 많아 전체 내용을 완벽하게 알아낼 수는 없지만, 고구려와 신라가 국경문제로 다투다가 화해한 기념으로 세워진 것으로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쌍방화친을 하면서 고구려가 형이 되고 신라는 아우가 된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 삼국시대의 역사를 살필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단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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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새조망대 |
아이들을 동반한 나들이라면 탄금호 철새 관찰지역 전망대도 빼놓을 수 없다. 탄금호는 상류의 충주댐과 하류의 조정지댐 사이에 조성된 호수다. 설치된 망원경을 통해 탄금호에 서식하는 여러 종류의 철새들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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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원고구려비 |
*가는 요령
중부고속도로 → 영동고속도로(호법분기점) → 중부내륙고속도로(여주분기점)→ 북충주IC → 중앙탑 사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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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주박물관 역사1실 |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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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각공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