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주모 씨는 지난해 8월 신호위반하는 차에 사고를 당했다. 가해자는 형의 차를 운전하다 사고를 일으킨 것. 주 씨는 대인 보상은 받았으나 차에 대한 수리비와 렌트비는 자동차보험의 대물보험으로 처리받지 못했다. 많지 않은 수리비 때문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힘들었다. 2월부터 대물보험 가입이 의무화돼 1,000만원 한도 내에서 보상받을 것으로 알고 있던 주 씨는 의무화 혜택을 받지 못했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자동차사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대물보험 의무가입제를 도입한 지 1년이 됐으나 피해자 보호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반쪽자리 제도’로 전락했다. 그러나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과 자동차보험 약관이 충돌하고,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 등의 문제로 해결책 마련이 어려워 피해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건설교통부는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이하 자배법)을 개정하면서 사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지난해 2월22일부터 자동차보험 가입자는 기존의 대인Ⅰ(책임보험) 외에 대물보험(가입한도 1,000만원)에도 반드시 들도록 강제했다. 그러나 자배법만 개정됐을 뿐 대물보험관련 자동차보험 특별약관은 바뀌지 않아 법으로는 대물보상이 이뤄져야 하지만 실제로는 종전과 마찬가지로 피해자와 가해자가 ‘민사’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자동차보험 특별약관에는 운전자의 연령과 범위를 제한하는 대신 보험료를 낮춰주는 각종 한정특약에 가입할 경우 특약에서 정한 운전자의 연령과 범위를 벗어난 운전자가 차를 몰다 낸 대물피해에 대해서는 보상해주지 않게 규정돼 있다. 이와 달리 인명피해와 관련된 대인Ⅰ은 누가 운전하다 사고를 내더라도 자배법에 따라 정부보장사업으로 보상받고 있다.
대인Ⅰ과 대물은 모두 똑같은 의무보험이지만 피해자 보상에서는 다른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는 뜻이다. 부부 한정특약에 가입된 차를 부부 외의 사람이 운전하다 사고를 냈을 때 인명피해는 보상되나 대물피해는 특별약관에 따라 보험사가 책임지지 않아 피해자가 직접 가해자와 만나 보상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것. 이는 피해자를 보호하겠다는 대물보험 의무화의 취지에 어긋난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무면허 가해자가 일으킨 대물사고는 특별약관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어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특별약관은 보통약관과 달리 운전 여부를 따지지 않기 때문에 무면허 가해자라도 운전가능한 연령이나 범위에 포함된다면 보상이 되는 것. 단, 2004년 8월 시행된 자배법 5조2항에 따라 50만원(대인은 200만원)의 ‘무면허 부담금’을 내야 한다.
소비자단체는 이에 대해 자동차보험 약관에 대물 1,000만원까지는 누가 운전하다러도 보상해주도록 자동차보험 약관을 개정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조연행 보험소비자연맹 사무국장은 “대물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면서 보상에는 제한을 둬 보험사만 이득을 보고 있다”며 “보험사가 특약 적용없이 보상이 가능하도록 약관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보험업계는 누가 운전해도 대물피해까지 보상해준다면 사고 보상에 대한 걱정이 크게 감소, 가입자가 보험료를 가장 많이 줄일 수 있는 한정특약을 선택한 뒤 특약상 운전할 수 없는 사람에게 운전을 맡길 수 있는 등 도덕적 해이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따라 보험금 지급이 늘어나 보험료가 올라가면 다른 가입자들까지 피해를 보게 된다며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보험업계는 자기차량손해담보 가입자들이 정비업체 등과 결탁, 가해자를 모른다며 보유불명사고로 신고해 타간 보험금 규모가 2004년 1,915억원에 달했고, 2000년 이후 매년 20% 이상 늘어나 손해율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그 근거로 내세웠다.
보험사 보상담당자는 “한정특약은 운전가능자를 제한하는 대신 보험료 할인혜택을 보겠다는 가입자와 보험사와의 약속”이라며 “특약에 상관없이 대물피해를 보상해주면 특약의 존재이유가 사라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금융감독당국과 보험업계가 함께 모여 대물보험 의무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고민했으나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보험업계 일각에서는 대인을 각각 의무보험(대인Ⅰ)과 종합보험(대인Ⅱ)으로 나눈 것처럼 대물보험도 운전자에 상관없이 1,000만원까지 보상해주는 대물Ⅰ과 한정특약이 적용되는 대물Ⅱ로 구분하자는 대안을 내놨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대물Ⅰ이 한정특약에서 제외되는 만큼 보험료를 올려야 하는데, 한정특약에 맞게 운전해 온 가입자들이 보험료 인상에 반발할 수 있어서다.
현 상황에서는 가입자들의 반발을 무릅쓰더라도 보험료를 올려 대물보험 의무화의 취지에 맞게 피해자 보호기능을 강화할 것이냐, 아니면 대물피해는 대인피해보다 소액이고 피해자도 상대적으로 적다는 걸 위안삼아 그대로 유지할 것이냐를 놓고 선택해야 한다. 피해자도 보호하고, 보험료 인상 부담도 없애거나 줄여주는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대물보험 의무화는 반쪽자리로 계속 존재할 수밖에 없다.
최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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