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은 햇살이 제법 따뜻해지는 계절에 한겨울 사진을 붙여 이야기를 쓰려니 난감하다. 시승에 나선 날은 때마침 폭설이 내렸다. 온 세상 하얗게 뒤덮는 눈을 보며 느꼈던 기분도 ‘난감함’이었다. 눈오는 날 처음 만나는 차를 타고 먼 길을 가야 하는 기분은 그리 편치 않다. 새 차를 만나는 설레임은 크지만 눈 쌓인 길을 달리며 엄습하는 불안감은 앞서의 설레임을 한 방에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세단이었다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시승을 취소해야 했다. 그러나 오늘의 시승차는 BMW X3다. 눈 내렸다고 SUV 시승을 취소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반겨야 할 일이다. 어쨌든 펑펑 눈이 쏟아지는 날 디젤엔진을 얹은 X3 3.0d를 만나 양평을 다녀오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에 올라섰다.
▲디자인
X3라는 이름만 들으면 작다는 선입견이 생긴다. 3이라는 숫자 때문이다. 5나 7이라면 모를까 3을 보면 왠지 ‘작다’는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X3는 작지 않다. 길이가 무려 4.5m를 넘는다. 넉넉히 크다고는 할 수 없으나 3이라는 숫자만으로 소형차 수준의 크기로 지레짐작하면 안된다.
정면에서 이 차를 마주하면 세련된 모습 안에 과거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키드니 그릴과 두 개의 원형 램프는 과거 BMW 프론트 마스크의 전통적인 특징이었다. 지금은 많이 변형되고 세련됐지만 오래 이 차를 응시하면 과거의 그 모습들이 보인다. 휠베이스는 길고 오버행은 짧다. 바람직한 체형이다. 안정된 달리기 성능을 짐작할 수 있겠다.
인테리어를 보면 ‘역시 BMW’라는 소리가 나온다. 지나침도, 부족함도 없다. BMW라는 브랜드에 걸맞게 고급스러움을 잃지 않았고, 체면 때문에 기능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스티어링 휠이 굵어 손에 잡히는 맛이 있다. 기어 노브는 아무런 장치없이 심플하다. 그냥 손잡이일 뿐이다.
계기판을 보면 240km까지 표기됐다. "디젤차가 과연 그 속도를 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은 곧 깨졌다. 엔진룸에는 스트럿 바가 있다. 달리는 성능을 무시하지 않은 차임을 암시해주는 부분이다.
이 차의 압권은 선루프다. 기존 선루프의 두 배에 이를 정도로 넓게 열린다.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함을 준다. 그 선루프를 통해 보이는 하늘은 더 넓었다.
▲성능
BMW는 이 차를 SAV로 정의한다. "스포츠 액티비티 비클"이라는 설명이다. SUV가 오프로드 주행에 좀 더 치우친 장르라면 SAV는 스포츠카처럼 잘 달리는 데 중점을 더 뒀다는 해설이 덧붙여진다. 달리는 맛은 역시 BMW 따라올 브랜드가 많지 않다는 데 동의하지만 SUV와 SAV의 차이를 일반인들이 구별하기란 불가능하다. 남과 다름을 강조하기 위해 나만의 이름을 만들어내는 것은 좋으나 생소한 이름을 볼 때마다 헷갈리는 게 사실이다.
200마력이 넘는 파워, 51.0kg·m의 토크는 자랑할 만하다. 휘발유엔진도 아닌 디젤엔진이 3,000cc 배기량에서 218마력을 뽑아낸다는 건 경이적인 일이다. 0→시속 100km를 7초대에 끊고 최고속도가 210km/h에 이른다는 제원표를 읽다보면 디젤엔진임을 감한할 필요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엔진은 파워풀했다. 좀 밟았다싶어 속도계를 보면 바늘은 140km/h에서 160km/h 사이에 있었다. 이 정도 성능이면 휘발유엔진이 부러울 게 없다.
공회전에서 2,000rpm까지의 비교적 낮은 엔진회전수에서는 선 굵은 엔진소리가 디젤차임을 쉽게 알 수 있지만 속도가 높아지면서는 엔진소리가 오히려 묻혀버린다.
공차중량이 2t에 조금 못미치는 1,925kg에 풀타임 4륜구동인 만큼 연비가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제원표를 살폈다. 11.0km/ℓ로 1등급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롱스트로크 엔진에 17:1의 압축비를 가진 디젤엔진과 6단 변속기가 완벽에 가까운 조화를 이루며 만든 연비다. 무게를 좀 더 가볍게 한다면 환상적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다. 그러면 도로와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묵직한 느낌도 함께 사라질 지 모르겠다.
도로 위에서의 움직임은 세단과의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 저속에서는 물론 고속에도 민첩함과 안정됨을 잃지 않았다. 휘발유엔진차와의 차이도 달리다보면 잊어버린다. 가끔 들리는 굵고 낮은 소리가 엔진의 정체성을 말해주지만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도를 버리고 유명산 자락의 가파른 경사로로 차를 올렸다. 쏟아지는 눈에 대한 불안함을 차에 대한 믿음으로 애써 상쇄시키며 길을 재촉했다. 고갯길을 거의 넘어섰을 무렵, 환상적인 경치에 차를 세운 게 화근이었다. 변속기를 D에 넣고 다시 출발했다. 바퀴는 열심히 앞으로 굴렀지만 차는 뒤로 움직였다. 네 바퀴가 모두 미끄러지면서 차가 잠시 뒤로 밀렸던 것. 차가 아무리 좋아도 대자연 앞에서는 극복하기 힘든 상황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좋은 차를 탈수록 겸손하지 않으면 더 큰 화를 당할 수 있다.
내려오는 길에서는 HDC(내리막길 자동 주행조절장치) 효과를 톡톡히 봤다. 미끄러운 길을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고 운전대만 붙들고 천천히 내려왔다. 언덕을 내려가면서 속도가 더 붙을 때마다 "우드득"거리며 스스로 제동하는 순간엔 차에 대한 신뢰가 절로 생긴다.
▲경제성
디젤차는 동급 휘발유차에 비해 비싸다. 적어도 한국시장에서는 진리에 가까운 명제다. 그러나 BMW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휘발유엔진차와 똑같은 값에 디젤 엔진차를 판다. X3 3.0d의 가격은 7,250만원으로 X3 3.0i와 같다. 얼마나 기분좋은 일인가. 디젤엔진이 300만원, 많게는 500만원 이상 비싼 게 당연한데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같은 값을 책정한 것.
디젤값이 비싸진다고는 해도 휘발유보다 더 비싸지지 않는다면 연료 자체가 갖는 매력은 여전하다. X3 3.0d가 주는 "보너스"인 셈이다. 이 차는 경제성에서 특히 탁월한 경쟁력이 있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권윤경 기자 kwon@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