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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석사 극락전 |
서해안 서산 일대로 나들이를 가는 사람들은 드라이브 도중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있다. 부석사를 가리키는 이정표 때문이다.
“아니, 부석사가 언제 이 쪽으로 옮겨왔대? 소문도 없이…”
부석사,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북 영주에 있는 고찰을 떠올린다. 하지만 서산시 부석면에도 부석사가 있다. 신기하게도 두 절은 한글뿐만 아니라 한자(浮石寺) 표기, 창건설화와 역사까지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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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양루 목어 |
서산 부석사는 영주 부석사처럼 큰 규모의 절은 아니다. 서해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도비산 기슭에 아담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바다에 떠 있다는 부석, 중국을 마주보는 절의 위치는 의상스님과 선묘낭자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더욱 실감나게 뒷받침해준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 진덕여왕 4년(650)에 의상스님이 당나라로 유학을 갔는데 선묘낭자라는 처녀가 신라에서 온 스님을 흠모했다. 스님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열심히 공부해 마침내 문무왕 1년에 신라로 돌아가게 됐다. 의상스님이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들은 선묘낭자는 떠나기 전날 스님을 찾아와 사랑을 고백했다. 이에 스님은 자신은 불도를 닦는 사람이어서 그 것은 불가하다고 했다. 선묘낭자는 “결혼은 못하더라도 스님 곁에서 불도를 배우겠다”고 애원했으나 스님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자 죽을 것을 결심하고 깊은 바다로 뛰어들었다. 의상스님은 자기 때문에 죽은 낭자를 생각하며 몹시 괴로워하고 있는데, 죽은 낭자가 용이 되어 의상스님이 탄 배를 따라 신라까지 오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스님이 가는 곳마다 숨어 따라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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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문객을 위한 쉼터 |
어느 날 의상스님은 자기 때문에 죽은 여인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절을 세우기로 하고 절터를 찾았다. 산세가 수려하고 중국과 마주보며 바다가 늘 보이는 곳, 바로 이 곳 서산군 부석면 도비산 중턱이었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도비산에 절을 짓는 걸 반대해 다 지어가는 절을 부수려고 했다. 그 때 갑자기 큰 바위 하나가 공중에 둥둥 떠오더니 산이 흔들리도록 큰 소리로 사람들을 꾸짖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했고, 그 모습을 본 의상스님은 ‘저 바위는 용으로 변한 당나라 선묘낭자가 다시 바위로 변해 나를 도와주는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물러간 후 바위는 훌쩍 날아가 절에서 바로 보이는 바다에 떠 있으면서 절 짓는 공사를 지켜봤다. 사람들은 이 돌을 물 위에 떠 있다 해서 부석이라 이름을 지었으며, 절 이름도 부석사(浮石寺)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부석사는 뚜렷한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창건연대는 불분명하다. 다만 1955년에 부석사 극락전이 노후돼 해체 복원공사를 할 때 극락전의 대들보 속에서 발견된 기록문으로 보아 문무왕 때 의상스님에 의해 창건됐고, 일제말에 중수된 건물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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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룡장과 심검당 |
근대에는 한국 선불교를 중흥시킨 경허, 만공 대선사들이 머물렀던 도량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관심있는 이들은 지혜의 검을 찾는 곳이라는 ‘심검당(尋劒堂)’ 현판 글씨를 눈여겨본다. 바로 경허스님의 글이기 때문이다. 부석사에 현존하는 건물은 극락전, 안양루 그리고 같은 건물로 연결된 심검당, 무량수각 등이다.
부석사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서해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전망이다. 이 곳 스님들은 일화당 2층에서 보는 게 가장 아름답다고 추천한다. 안양루 뒤편 방문객들을 위해 마련된 쉼터에서 보는 바다도 참으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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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 마당에서 본 전망 |
*가는 요령
서해안고속도로 서산 IC에서 나와 32번 국도를 타고 서산시를 지나 간월도, 안면도 방면으로 이어지는 649번 지방도를 탄다. 부석면에서 이정표를 따라 도비산으로 올라가면 부석사에 이른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천안 IC - 아산 - 예산 - 29번 국도 - 덕산 - 해미 - 서산 - 부석 - 부석사에 이른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