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고찰에 머무는 봄빛을 찾아

입력 2006년03월17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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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급했던 것일까. 섬진강변에 만개한 매화와 산수유 꽃소식을 들으며 이웃한 지리산으로 내달렸더니 그 곳은 아직도 입을 앙다문 꽃봉오리들이 방문객을 맞고 있었다. 아무래도 강바람보다 산바람이 더디게 봄기운을 전하는 모양이다.

실상사 전경.


천 년 고찰 실상사의 봄을 만나고 싶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천 년 전의 그 봄 햇살을…….



지리산 실상사를 찾아가는 길은 순조롭다. 지리산의 북쪽 관문인 인월에서 심원, 달궁, 뱀사골 방면으로 향하다 보면 3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왼쪽 마천 방면으로 접어들면 만수천변의 너른 들판에 천 년 세월을 머리에 인 실상사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실상사를 처음 찾는 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갸우뚱해한다.



“아니 무슨 절이 들판 한가운데 있어? 절이라면 산중 깊은 곳에 들어앉아 있어야지”



그 건 모르는 소리다. 실상사가 처음 이 곳에 자리할 때만 해도 이 곳은 그야말로 심산유곡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곳이 부처님의 품을 찾아든 사람들로 마을이 이뤄지고, 그들을 위한 논밭이 만들어지다보니 오늘과 같은 모습이 됐다고 한다. 그러니 이 모습이야말로 천 년 세월을 견뎌 온 실상사의 연륜과 넓은 법문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산수유 핀 해우소.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828) 증각대사 홍척이 당나라에 유학을 떠나 지장의 문하에서 선법을 배운 뒤 귀국해 세운 절이다. 증각은 실상사를 창건하고 선종을 크게 일으켜 수많은 제자들이 전국에 걸쳐 선풍(禪風)을 일으켰다. 신라 불교의 한가운데서 번창했던 실상사는 그 이후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화재로 전소됐다가 세 차례에 걸쳐 중수 복원돼 오늘에 이른다.



‘구산선문 최초 가람’으로 한국 선풍(禪風)의 발상지인 실상사는 호국 사찰로도 유명하다. 특히 실상사에는 일본과 얽힌 설화가 많이 전해진다. 그 중 하나가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망하고, 일본이 망하면 실상사가 흥한다"는 구전이다. 그런데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실상사 경내의 보광전 안에 있는 범종에 일본 열도의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스님들이 예불할 때마다 종에 그려진 일본 열도를 두들겨 치게 된다고 한다. 그 동안 이 범종을 많이 두드렸기 때문일까. 지금은 범종에 그려진 일본 지도 중 홋카이도와 규슈 지방만 제모양으로 남아 있을 뿐 나머지 열도는 희미해져 가고 있다고 한다.



실상사에는 백장암과 서진암, 약수암 등의 암자가 있으며 이 곳에는 신라시대의 많은 문화유산들이 산재해 있다. 현재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국보 제10호인 백장암 3층석탑과 보물 11점을 포함해 단일사찰로는 가장 많은 17점의 지방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높이 약 5m의 백장암 3층석탑은 전형에 구애받지 않은 자유로운 설계를 하고 있어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공예탑이다.



실상사 입구에서 만나는 인상적인 민속문화재는 돌장승인 벅수. 만수천을 가로지르는 반달 모양의 돌다리인 해탈교 양쪽에 세워져 있다. 잡귀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상원주장군은 두 눈과 코가 크고 둥글며 머리에는 모자를 쓰고 손은 창을 든 것 같은 모습이다.



실상사의 주 법당인 보광전은 1884년(고종 21) 월송대사가 세운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이다. 건물 안에 모셔진 삼존상 중 본존불은 조선시대에 조성한 것이고, 좌우의 관음 세지 두 보살은 원래 극락전에 아미타불과 함께 봉안됐던 것으로 월씨국(베트남)에서 모셔 왔다고도 한다. 단청이 돼 있지 않아 나뭇결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보광전의 모습이 소박하면서도 친근하게 느껴진다.

천왕문.


*가는 요령

88고속도로 지리산 IC에서 나와 인월 - 산내에서 60번 지방도를 타면 실상사로 이어진다. 혹은 대전 진주 간 고속도로와 88고속도로가 만나는 함양 교차로에서 광주 - 남원 방향으로 진행 - 지리산 IC로 나와 인월 - 산내 - 실상사에 이른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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