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오버라는 말이 유행이다. 장르를 넘나드는 혼합이다. 음식점에서는 퓨전이고, 자동차에서는 크로스오버다. 승용차, SUV, 미니밴, 왜건, 해치백, 노치백 등등의 장르를 적당히 버무려 새로운 형태의 차를 개발해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없던 걸 창조하는 게 아니라 있던 걸 조합해 만든다. 새로움이 주는 맛이 다른 건 그 때문이다.
사브 9-3를 만났다. 지난 2월 데뷔한 새 모델 9-3 스포츠 콤비다. 아니나 다를까, 이 녀석도 크로스오버 타입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세단과 컨버터블로 구성된 9-3 라인업에 크로스오버 타입을 더했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작년 3월 제네바모터쇼에서 데뷔했으니 꼭 1년만에 한국시장에 데뷔한 셈이다. 2.0ℓ 아크 모델을 먼저 판매하고 디젤 모델은 2·4분기중 출시한다. 9-3 스포츠 콤비 시승을 시작한다.
▲디자인
때로 자동차는 옷차림에 비유되곤 한다. 늘씬한 선을 가진 재규어 XJ를 보면 연미복을 차려입은 영국 신사가 생각나는 식이다. 새로운 모습의 9-3를 보는 순간 청바지에 콤비를 받쳐입은 청년을 연상했다. 그 만큼 분위기가 젊고 경쾌했다. 특히 뒷모양이 주는 강한 인상이 그랬다. 경사진 리어 램프는 LED와 투명 렌즈를 사용해 이전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좌우의 리어 램프 사이를 이어주는 크롬라인도 눈을 자극한다. 사이드 뷰에서는 사브 특유의 하키 스틱 벨트라인이 도드라져 보인다. 이 차를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하키 스틱이 보인다. 리어 게이트는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활짝 열린다. 트렁크 공간은 적재함을 이중으로 구성할 수 있다.
이그니션 키 홀을 변속레버 아래 쪽에 배치한 장난끼는 여전하다. 남과는 뭐가 달라도 다른 이 같은 배치가 한 눈에 이 차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게 해준다. 운전석에 앉으면 마치 항공기의 콕핏과 마주한 기분이 든다. 사브가 원래 비행기를 만들던 회사인 만큼 여기서 오는 연상작용일 것이다. 운전석은 좁지 않으나 뒷좌석은 아무래도 성인이 팍 퍼져서 편안한 자세로 앉기에는 힘들 듯하다.
계기판은 간단한 구조다. 있어야 할 것들만 자리잡았다. 시계, 온도계, 라디오 주파수 표시 등은 대시보드 중앙으로 분리했다. 단순한 계기판은 보기에 편하지만 계기판 말고 봐야 할 것 들이 있어 시선이 분산되는 걸 막을 수는 없다. 계기판에 위치한 터보게이지는 운전하는 데 자꾸 눈에 밟힌다. 안그래도 기름값 비싼데 확확 넘어가는 터보게이지를 보면서 마음껏 가속 페달을 밟을 강심장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전동시트는 뒤로 밀면서 허리를 누이는 게 동시에 안된다. 버튼 하나씩 차례로 해야 작동하고 동시에 누르면 움직임을 멈춘다.
▲성능
그래도 눈을 질끈 감고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터보 엔진이 주는 가속감이 발 끝을 타고 머리와 가슴으로 전해진다. 어느 시점을 지나며 터지듯 분출하는 파워는 여전했다. 가속력은 압권이다. 비행기를 만드는 회사라 했던가. 날개를 달면 하늘로 날아 오를 태세다.
놀라운 가속력을 가능케하는 또 하나의 비밀은 기어비에 있었다. 이 차는 5단 기어비가 1대1이다. 일반적으로 5단 자동변속기라면 4단에서 기어비를 1대1에 맞추고 5단에서는 오버 드라이브, 즉 0.9나 0.8 정도로 둔다. 오버 드라이브 상태에서는 구동축보다 피구동축이 더 많이 회전해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가속은 기대하기 힘들다. 6단 변속기도 5, 6단이 오버 드라이브인 상태가 많은데 이 차는 5단 변속기면서 5단에서 1대1 기어비이니 특이한 세팅이다. 효율성보다는 동력성능에 그 만큼 중점을 뒀다는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연비는 10.2km/ℓ로 4등급 수준이다. 기어비를 조정했으면 더 좋은 연비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잘 달리려면 하체가 튼튼해야 하는 법이다. 이 처럼 고성능을 추구하는 조건을 갖춘 차라면 서스펜션과 타이어가 강해야 한다. 다리가 부실해서는 제대로 달릴 수 없는 이치와 같다. 225/45R 17 타이어는 소리없이 강했다. 수차례 급한 코너를 거칠게 몰아부쳐도 타이어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조용히 차체를 받쳐주면서 운전자의 의도에 맞게 움직였다. 별 것 아닌 줄 알았다. 코너링을 마치자마자 차에서 내리는 순간 고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고무가 타들어갈 정도면 꽤 심한 소리가 나야 정상인데 비명 소리 한 번 없이 잘 달렸다.
가로, 세로 정확히 86.0mm인 스퀘어 엔진은 박력이 있었다. 터보와 맞물려 175마력의 힘을 토하는 엔진은 힘의 부족함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시속 180km 전후의 고속에서 차가 흔들리는 건 당연하다. 엔진소리와 바람소리가 적당히 섞이면서 고속주행할 때 느끼는 긴장감이 기분좋게 온몸을 휘감는다.
럭셔리 세단만큼의 안락함을 기대해선 안된다. 그러나 그 정도의 기준이 아니라면 그런 대로 강한 개성과, 어디 가서도 밀리지 않을 정도의 성능을 갖춘 제법 쓸 만한 차라는 평가를 하는 데 주저할 필요는 없겠다.
▲경제성
앞서 말했지만 이 차의 연비는 4등급 10.2km/ℓ 수준으로 우수한 편이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계기판에 터보게이지가 있어 마음껏 페달을 밟고 싶은 욕망을 조절해준다는 사실이다.
판매가격은 5,350만원. 가격은 조금 아쉽다. 그래도 유러피언 세단인데 턱없이 낮은 가격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수입차시장이 가격을 화두로 삼아 아래로 아래로 몰리는 요즘이고 보면 5,000만원을 넘기는 가격표 앞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들 다 타는 차 말고 뭔가 남다른 차를 원한다면 사브는 좋은 후보일 수 있다. 아직 이 차를 타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까닭이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권윤경 기자 kwon@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