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 머무는 곳

입력 2006년03월25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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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생가
봄의 전령, 봄꽃을 찾는 사람들로 남쪽지방이 떠들썩하다. 이 곳은 그와 대조적이다. 찾는 이 드물어서가 아니라 ‘침묵’의 의미를 되새겨보려는 이들이 조용한 걸음으로 봄날의 서정을 즐기고 있어서다.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시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시인이자 승려,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 선생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산과 들, 바다가 조화를 이룬 홍성군은 예부터 내포지역의 중심으로 손꼽혀 왔다. 내포지역이란 조선후기 실학자 이종환이 쓴 <택리지>에 보면, 가야산 앞뒤 10고을을 말한다. 주로 서해안을 낀 충청도 일대의 고을이다. 수려한 자연경관은 말할 것도 없고, 매죽헌 성삼문 선생을 위시해 청산리대첩의 백야 김좌진 장군 등이 태어난 홍성은 그 중에서도 역사적 향기와 문화전통이 남다른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 홍성 인터체인지에서 빠져나가 결성읍으로 이어지는 지방도 샛길로 들어서면 한용운 생가를 알리는 이정표가 곳곳에 친절하게 이어진다. 이정표를 보면서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로 시작하는 <님의 침묵>을 마음속으로 읊조리다보면 어느새 잘 단장된 생가터에 도착한다.

심우재


저울산의 나지막한 능선 아래 자리잡은 한용운 선생 생가터에는 전형적인 초가삼간의 생가가 복원됐고, 사당인 만해사가 자리하고 있다. 싸리나무 울타리가 둘러 처진 집 안으로 들어서면 댓돌이며 툇마루가 잊고 지낸 향수를 자극한다. 두레박이 놓인 우물과 장독대를 돌아 집 뒤 야산에는 적송과 조릿대가 무성하게 자라는 모습은 아득한 시절의 고향을 떠올려준다.



그러나 방문객의 기척에도 내다보는 이 없는 적막한 생가는 주인의 공백을 잘 말해주고 있었다. 툇마루에 놓인 액자에는 시 <님의 침묵>이 담겨 있고,‘심우재(尋牛劑)’현판이 붙은 방문을 열자 만해의 영정과 앉은뱅이책상 하나만 놓여 있을 뿐이다.



싸릿나무 대문
봄 햇살이 졸고 있는 툇마루에 앉아 잠시 그의 시 <알 수 없어요>를 떠올렸다.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波紋)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만해 한용운은 고종 16년인 1879년 성곡리에서 태어났다. 6세부터 성곡리 서당골에서 한학을 배워 9세에 문리를 통달, 신동소리를 들으며 자란 그는 26세에 강원도 백담사에서 불문에 들었다. 삼일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 체포돼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내면서 저항문학에 앞장섰는가 하면, 불교 개혁운동에 일생을 바쳤던 그는 1944년 6월 69세를 일기로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서 별세했다.

시가 있는 쉼터


생가에서 나오면 오른쪽 동산에 쉼터가 마련돼 있다. 그 곳에는 만해의 대표 시들이 오석에 새겨져 있다. 소나무 우거진 붉은 황톳길을 천천히 걸어 올라가면서 <복종>, <나룻배와 행인>을 나지막한 소리로 읊조리다 보면 가슴 속에 뜨거운 그 무엇이 울컥 매달려온다.



만해 선생 동상은 홍성읍에서 보령으로 내려가는 21번 국도변에 있는데, 여유있는 걸음이라면 한 번 찾아볼 만하다.



언덕에 핀 제비꽃
*가는 요령

서해안고속도로 홍성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국도 40번을 타고 안면도 방향으로 가다가 지방도 샛길을 타고 결성읍으로 향한다. 이후 이정표를 따라 움직이면 된다.



*별미

홍성은 한우, 돼지, 닭을 많이 키우는 전국 제일의 축산군이다. 특히 한우를 사고팔던 우시장과 더불어 많은 한우가 거래되고 있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그 만큼 타지역보다 육질이 월등하고 맛이 담백한 한우를 이 곳에선 맛볼 수 있다. 홍성에서 보령 방향으로 외곽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홍성시내 쪽에 위치한 명신갈비(041-632-2404)는 3대째 내려오는 생갈비 전문집으로 유명하다.

우물과 장독대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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