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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창읍성 성문. |
"조선의 봄을 한 번 만나보시겠습니까"
시정에 나도는 헤픈 봄날이 아니다. 솔바람 대숲소리가 그윽하게 성안을 채우고, 성벽을 둘러싸듯 만발한 연분홍 꽃구름은 사나이 가슴도 흔들어 놓는다. 조선식 경관의 풍류와 격조가 고스란히 머물고 있는 곳, 전북 고창군의 고창읍성을 만나보자.
‘고창’하면 먼저 선운사와 동백꽃이 떠오른다. 그 유명세로 인해 고창읍성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늘 뒷전이었으나 이 곳을 아는 이들은 이 곳에 머무는 봄날의 정취를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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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멈춘 성 안. |
차들이 씽씽 달리는 읍내 한가운데 자리한 고창읍성을 처음 마주하면 참으로 생뚱맞게 느껴진다. 지형적인 조건 상 우리나라의 성들은 대부분 산성(山城)인데 반해 이 곳은 들판 한가운데, 아니 동네 한가운데 "떠억"하니 자리잡고 있어서다. 이런 곳이 몇 군데 더 있다. 순천의 낙안읍성과 서산의 해미읍성이 바로 같은 경우다"
읍성은 지방의 주요 지역에 관부(官府)와 민거(民居)를 둘러싼 성으로 유사시에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 기능을 담당했다. 조선시대의 읍성들은 평야지대에 양면을 돌로 쌓아 만들고 성문 위에는 누각을 지어 적을 감시하고 전투를 지휘했다.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원년(1453년)에 왜침을 막기 위해 전라도민들이 축성한 성곽이다. 일명 모양성이라고도 불린다. 성의 둘레는 1,684m, 높이가 4~6m, 면적은 5만172평이다. 동, 서, 북문과 3개소의 옹성, 6개의 치성을 비롯해 성 밖의 해자 등 전략적 요충시설이 두루 갖춰져 있다. 성내에는 동헌, 객사 등 22동의 관아건물과 2지 4천이 있었으나 전화로 소진되고 성곽과 공북루만 남아 있던 것을 1976년부터 옛 모습대로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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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곽따라 성 밟기. |
이 곳에는 예부터 전해내려오는 답성(성밟기)놀이가 있다. 성을 밟으면 병이 없어 오래 살고 저승길엔 극락문에 당도한다는 전설이 남아 있어서다.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리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극락승천한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성을 돌 때는 반드시 손바닥만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돌아서 입구에 다시 그 돌을 쌓아두도록 돼 있다. 그 까닭은 고창읍성이 만들어질 때 아낙네들의 힘만으로 축조됐다는 전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성문 입구 화단 잔디밭에는 세 명의 여인네가 머리에 돌을 이고 가는 동상이 이를 설명해준다. 그렇게 따진다면 이 곳도 행주산성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관광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성벽에 올라 성곽을 따라 한 바퀴 돈다. 이 때 아주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성밟기를 하면서 고개를 왼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 돌려 보면 성 안이 보였다가 성 밖이 보였다가…. 조선시대 관아와 동헌마당이 보였다가 한순간 현대식 빌딩과 건물이 자리잡은 고창시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좌우 고개돌림에 따라 이쪽저쪽 역사 500년이 순식간에 교차한다.
아, 이 곳엔 500년 전의 세월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조선의 그 봄날이 고스란히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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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곽따라 핀 벚꽃. |
*다른 볼거리
세월을 잊은 고창읍성의 성문 앞 광장에는 동리 신재효 선생 고택과 고창 판소리박물관, 국악당이 자리하고 있다.
판소리문학의 이론가, 연출가이자 광대의 지휘자라는 평을 듣고 있는 신재효 선생은 1812년 이 곳 읍내리에서 태어나 말년까지 이 집에 살면서 노래청을 두고 수많은 제자를 불러 명창들을 길러냈다. 토끼타령, 박타령, 심청가, 적벽가, 춘향가, 가루지기타령 등 6마당의 판소리 사설을 편술했고, 4대 법례를 집대성함으로써 근대 국악 중흥을 주도했다.
중요 민속자료 제39호로 지정된 신재효의 고택은 1850년경에 지어진 걸 1979년 보수해 현재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로 지어진 사랑채와 오동나무, 우물 등이 남아 있다. 국악당에서 틀어 놓은 판소리가 내내 흘러나오는 신재효 고택 뜨락 한쪽에는 그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국악당은 신재효 선생을 기념하고 국악 발전을 위해 건립한 곳으로 가야금, 판소리, 민요, 농악 등을 교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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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소리박물관. |
*가는 요령
서해안고속도로를 타면 아주 쉽게 찾아갈 수 있다. 고창 인터체인지에서 나가 고창읍내로 들어가면 바로 읍성이 보인다. 호남고속도로는 백양사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지방도 15번을 타고 고창 방면으로 향한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