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신작 영화 ‘파이어월’을 얼마 전에 봤다. 은행 보안 전문가인 주인공이, 은행을 털기 위해 가족을 인질로 잡은 악당을 상대로 벌이는 한판 승부를 그려낸 전형적인 미국 헐리우드 영화다. 이 처럼 간단히 줄거리를 줄일 수 있을 만큼 상상력이 부족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뻔한 얘기다. 악당에 붙잡혀 있는 가족들을 구해내는 능력있고, 착하고, 강한 아버지. 그 아버지는 300C를 탄다. 물론 크라이슬러가 PPL로 지원한 차다. 해리슨 포드의 중후하고 남성적인 이미지와 잘 맞는 차였다.
300C는 미국 냄새가 물씬 풍긴다. 크다. 힘도 세다. 범접하기 힘든 외모도 한 몫 한다. 그러나 300C 디젤은 오스트리아에서 만들어진 유럽산 차다. 유럽에서 만든 미국차 300C 디젤을 시승했다.
▲디자인
300C는 덩치가 크고 격자 무늬 그릴이 거의 수직으로 버티고 선 모양이다. 친근하게 다가서는 인상이 아니라 쉽게 접근하기 힘들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사람에 따라 그 무엇은 갖고 싶은 위엄이나 권위일 수 있고 혹은 어려움, 허세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대형 럭셔리 세단으로는 어디 내놔도 꿇리지 않을 외모다. 옆에서 보면 높은 벨트라인은 마치 장갑차를 보는 듯 하다. 차 크기에 비해 차창의 면적은 좁아 보인다. 큼직하게 만들어 놓은 18인치 휠이 이 차의 성능을 미리 말해준다.
실내는 넓다. 해리슨 포드 정도로 덩치 큰 사람 다섯이 타도 충분할 것 같다. 운전석은 몸을 감싸듯이 받아준다. 실내에 앉으면 벙커 안에 들어앉은 느낌이다. 챙이 긴 모자를 쓴 것처럼 시야가 좁다. 차창면적이 좁은 데다 운전석이 앞에서 볼 때 깊숙히 안으로 들어간 형태여서 시야에 간섭을 받는다.
▲성능
3.0ℓ 디젤엔진의 최고출력은 218마력. 차 무게는 1,835kg으로 마력 당 무게비가 8.4kg에 불과하다. 최대토크는 더 놀랍다. 52.0kg·m로 가솔린 5.7ℓ 300C 헤미엔진의 최대토크 53.9kg·m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디젤차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이 차의 운전석에 앉으면 당황하거나, 아니면 이 차는 디젤차가 아니라고 박박 우겨댈 지 모른다. 디젤엔진 특유의 진동과 소음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운전석에서 느끼는 실내 분위기는 시끄럽고 어수선한 게 아니라 차분하고 조용하다. 가속 페달이나 차 바닥을 통해 발 끝으로 전해지는, 혹은 변속레버를 통해 손 끝으로 전해지는, 시트를 통해 엉덩이로 전해지는 디젤의 진동은 더 이상 없었다. 놀라운 수준이다.
뿐만 아니다. 디젤엔진은 이제 더 이상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공해의 주범이 아니다. 까다로운 규제를 만족시키려고 부단히 기술을 개발한 결과 유럽시장에서는 디젤이 친환경 엔진으로 대접받는 수준에 이르렀다. 300C의 디젤엔진 역시 유로4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시킨다. 크라이슬러의 큰집 격인 메르세데스 벤츠가 개발한 엔진인 만큼 신뢰성은 높다 하겠다.
이 엔진은 저속에서 강한 토크가 압권이다. 가속하면 여유있게 옆차들을 따돌릴 수 있다. 묵직하고 힘있게 추진되는 가속력은 스포츠카의 경쾌함과는 거리가 있다. 안정감있게 쭉 뻗어가는 힘이 매력적이다. 속도를 높이다가 어느 순간 콱 막히는 디젤의 답답함이나 거친 감각은 없다. 0→100km/h 가속 7.3초면 거의 스포츠카 수준이다. 이 배기량에 이 정도 덩치라면 가솔린엔진이어도 7.3초에 끊기 힘든데 디젤엔진으로 이 같은 성능을 보이는 게 경이롭다.
서스펜션은 안정적이지만 한계에 다가서면 차체를 버거워한다. 노면 요철이 있는 급한 코너를 힘있게 돌아나갈 때 서스펜션은 차체를 밀어내듯이 튕긴다. 그렇다고 불안할 정도는 아니다. 후륜구동인 점도 이유다. 후륜구동은 코너에서 한계에 다가서면서 극도로 불안한 거동을 보이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한계를 넘기지만 않으면 그럴 일은 거의 없다. 전자제어의 힘이다. 주행안전장치(ESP)는 한계상황에서 적절하게 엔진 동력과 바퀴 제동력을 조절하며 차의 자세를 제어한다. ESP가 작동되는 상황에서는 때로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아도 엔진은 여기에 반응하지 않고 동력을 조절하며 차의 흔들림이 도를 넘지 않게 만든다. 필요하다면 ESP 작동을 멈추게 할 수 있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 차의 또 하나의 매력은 오디오다. 오디오를 통해 나오는 낮은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울린다. 보스톤 어쿠스틱스 사운드 시스템이 적용됐다고 하는데, 특히 저음에서 아주 매력적이다.
▲경제성
300C 디젤의 경제성은 인정해야 한다. 연비는 11.9km/ℓ에 달한다. 디젤엔진은 동급의 가솔린엔진에 비해 연비면에서는 확실한 우위를 보인다. 게다가 연료가격도 싸다. 대신 차값은 5,980만원인 3.5 휘발유엔진 모델보다 300만원 비싼 6,280만원이다.
크라이슬러는 7년 또는 11만5,000km에 달하는 매력적인 무상보증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수입차를 타는 데 가장 꺼려지는 것 중 하나가 만만치 않은 정비비용인데 7년동안 엔진, 변속기 등 주요 부품을 무상 수리해준다는 건 분명 멋진 유혹이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권윤경 기자 kwon@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