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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성천 건너 무섬마을. |
전국 각지에 꽃놀이를 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봄꽃으로 유명한 이름난 관광지나 매스컴이 들쑤셔 놓은 촬영지엔 더 많은 인파가 몰린다. 사람, 사람, 사람들과 온갖 종류의 장사꾼들이 가는 곳마다 따라붙는 떠들썩한 꽃놀이 뒤끝에 왠지 모를 씁쓸함이 차오르지 않는가.
봄날의 감흥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는 여행지가 그립다. 마음 속에 쉼표 하나를 갖기 위해 행장을 꾸리는 이라면 이 곳,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의 무섬마을을 빼놓을 수 없다. 단아한 정취와 고풍스런 멋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전통마을이다. 이 곳을 다녀가는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 속에 간절함을 하나 지니게 된다. 이 곳만은 제발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헤쳐지고 얄팍한 상흔이 뒤엉키지 않기를, 지금 이 모습 이대로 오랫동안 지켜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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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격을 드러낸 고택. |
사실 요즘 ‘전통마을’이라고 하면 다 그렇고 그렇겠거니 하고 새겨 듣는다. 거죽만 옛모습이지 드러내 놓고 전통을 파는 장삿속으로 돌변한 곳이 어디 한두 군데던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분명 이 곳 무섬마을은 지켜지고 보호돼야 할 가치가 있는 곳이다.
내성천이 마을을 빙 둘러싸고 있는 무섬마을은 그 가운데 섬처럼 떠 있다. 마을을 휘감아도는 강을 따라 은백색 백사장이 펼쳐지고, 마을 뒤쪽으로는 소나무, 사철나무 등이 숲을 이뤄 나지막한 산으로 자리잡았다. 마을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은 강 위로 놓여진 다리가 유일하다.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서면 머리를 맞댄 즐비한 옛 고가들이 훌쩍 시간을 뛰어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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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우당. |
맨 먼저 보이는 해우당은 단지 모습만 오래된 옛집이 아니라 선비의 단아한 격식이 느껴지는 고택이다. 조선 고종 때 의금부도사를 지낸 해우당 김락풍 선생이 건립한 것이라 한다.
해우당과 함께 경상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된 만죽재는 더욱 눈길을 끈다. 만죽재는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입향시조(入鄕始祖)인 반남 박씨(박휘수)가 현종 7년(1666)에 최초로 지은 집이다. 원래 당호는 섬계초당이었으나 입향조의 8대손이 중수 후 당호를 만죽재라 했다. 무섬마을의 중심부 높은 곳에 위치한 만죽재는 이 마을에 있는 ㅁ자형 가옥 중 건립연대가 가장 오래된 집으로, 당시의 평면구성을 잘 보여준다. 안마당에서 보면 4면 기와에 둘러싸인 하늘이 퍽이나 인상적인 이 고택에는 서울에서 살다 내려온 종부가 기거하고 있다. 부엌 외벽에 나있는 환기통같은 구멍을 보면 옛 조상들의 지혜를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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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ㅁ자형 한옥에서 본 하늘. |
무섬마을은 요즘 건물 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지방문화재청에서 나온 감독과 인부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지붕을 걷어내고 집의 골격만 앙상히 남겨 놓은 모습을 보면 ‘이거 또 마을을 어떻게 낮도깨비처럼 바꿔 놓으려나’하는 염려스런 마음이 앞선다.
봄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는 백사장으로 나가면 내성천 맑은 강줄기에 몸을 담근 외나무다리가 정겹다. 마을사람들이 한 푼 두 푼 돈을 모아 만든 외나무다리는 그야말로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날 수 있다. 기우뚱거리는 몸의 균형을 잡으며 조심스럽게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표정이 더없이 행복하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물줄기를 한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텅 빈 마음 속에 찰랑찰랑 차오르는 맑은 물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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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마솥. |
*가는 요령
중앙고속도로 영주 인터체인지에서 나와 직진하면 영주·봉화 방면으로 가는 국도 28번을 타게 된다. 이 길을 따라가다가 영주시내로 들어가기 전, 외곽으로 연결되는 국도 5번을 타고 안동 방면으로 향한다. 5km 남짓 가면 오른쪽으로 보이는 ‘수도리 전통마을’ 이정표를 따라 움직이면 된다. 공단으로 연결되는 다리 건너서 좌회전해 10km쯤 더 간다. 대중교통은 영주 시내버스 터미널에서 무섬마을까지 하루 4회 시내버스가 있다.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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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엌벽의 환풍구. |
무섬마을 안에는 음식점과 상가가 없다. 무섬마을로 들어가는 수도교 건너편에 ‘꽃은 피고 물은 흐르고’라는 전통식당이 있다. 또 무섬마을 가는 길에 폐교를 이용한 색다른 분위기의 ‘대일펜션민박가든’이 눈에 띄는 정도.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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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죽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