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현대ㆍ기아차그룹 비자금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가 현대차 그룹을 상대로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강온 양면 전략을 구사해 주목된다. 재계 서열 2위의 대기업인 현대차 그룹 총수 일가를 겨냥해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배합해 수사성과를 최대한 내면서 "경제위기론"으로 무장한 역풍을 피하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검찰은 13일 정몽구 회장의 중국 출장을 허락해준 직후 정 회장의 최측근인 이정대 재경본부장과 김승년 구매총괄본부장을 비자금 조성 혐의로 전격 체포했다. 중국 방문을 허용해 현대차의 경영활동을 측면 지원하는 "당근"을 주는 동시에 비리와 관련된 정 회장의 최측근 2명을 체포함으로써 정 회장의 수족을 묶어버린 것이다.
검찰은 지난달 26일 현대차그룹 양재동 사옥을 전격 압수수색한 뒤 현대차 총수 일가와 임원진을 강하게 압박하며 "몰아치기" 수사를 해왔다. 이 때문에 검찰이 정 회장의 중국 출장을 허용하자 "의외"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정 회장이 수백억원대 비자금 조성 및 금품 로비, 편법 경영권 승계 의혹 등에 연루된 정황이 상당 부분 포착돼 소환 조사가 임박한 점을 감안하면 출국 허용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착공식에 중국의 VIP들이 다수 참석해 정회장이 직접 가야할 사정이 있고, 착공식을 미루면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공사를 못해 공장을 짓는 데 차질이 빚어질 것 같아 출국을 허용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검찰의 태도는 정몽구 회장이 돌연 미국으로 출국했던 때와는 사뭇 달라진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끈다. 검찰은 정 회장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도피성 출국 의혹 및 도피 방조 논란이 거세게 일자 "당연히 약속대로 귀국할 것"이라며 태연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연일 정 회장을 향해 노골적인 압박 발언을 내놓았다.
채 기획관은 "대기업 수사는 하면 할수록 혐의가 늘어난다. 비자금 용처 수사를 위해 정 회장과 정의선 사장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한다"며 사실상 정 회장의 귀국을 공개적으로 종용했다. 심지어 "글로벌 기업의 총수이고 인품과 책임감을 갖추신 분인데 들어오시지 않겠느냐"며 재벌 총수의 "인품"까지 거론했고 "경영권 승계" 과정의 비리 의혹에도 칼을 들이대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이런 태도 변화는 재계를 중심으로 현대차 수사를 빨리 끝내달라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강신호 전경련 회장 등 재계 인사들이 12일 한덕수 경제부총리와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을 만나 "현대ㆍ기아차 수사가 조속히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수사가 3주째에 접어들면서 국가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냐는 국내외 언론 보도와 여론도 검찰이 유화제스처를 한 배경으로 분석된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해외 언론이 현대차의 위기를 보도하며 "잘 나가던" 현대차에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며 비관적 전망을 내놓은 데 대해 검찰로서도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채 기획관이 현대차 비자금 사건에 대해 로비 부문 수사는 계속하겠지만 기업 경영을 힘들게 하는 수사는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것도 현대차의 입장을 고려한 "온탕전략"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검찰은 정 회장의 최측근 2명을 전격 체포하는 "채찍"을 다시 꺼내들어 현대차의 경영 활동과 비리 수사는 별개임을 다시 한번 천명했다. 수사의 끝이 결코 간단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