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가 RX350을 내놨다. RX330을 업그레이드한 마이너체인지모델이다. 숫자가 변한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업그레이드의 핵심은 엔진이다. RX330이 2003년에 나왔으니 약 3년만의 변화다.
이 차를 타고 강원도 인근으로 시승에 나선 날은 때아닌 눈이 펄펄 내렸다. 내리는 눈이 반가웠던 건 타고 간 차가 네바퀴굴림의 SUV였기 때문이다. 어떤 차를 타느냐에 따라 반응은 이 처럼 달라질 수 있다. SUV를 몰면 좀 더 여유롭게 자연과 마주할 수 있음은 분명하다. 바로 이런 이유로 세단보다 SUV를 더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디자인
렉서스의 디자인은 하나같이 자연스럽고 세련됐다. 물론 고급스럽기도 하다. SUV라면 조금은 강하게 보일 필요도 있겠지만 RX는 강한 얼굴이 아니다. 미끈하게 생긴 도시 남자같다. 강한 남자보다 곱게 생긴 미소년을 요즘에는 더 좋아하는 것처럼, SUV도 부드럽고 세련된 모양을 더 쳐주는 시대다. RX350은 이 같은 시대상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사실 주변을 둘러보면 거의 모든 SUV들이 미소년처럼 아름다운 모양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SUV는 오프로드를 거침없이 질주하는 모습보다 도심을 점잖게 달리는 게 더 어울린다. 심지어 네바퀴굴림 장치조차 포기하고 두바퀴굴림으로 달리는 SUV들도 있음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야성이 사라진 SUV를 접하노라면 마치 거세한 환관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개인적 취향일 뿐이다. 시장이 넓어지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SUV를 원하고, 그들의 입맛을 고려하다보니 과거와는 다른 모양이 되는 것이다. 좋고 나쁨의 문제는 아니다.
인테리어는 부자집 거실을 들여다 놓은 듯 고급스럽다. "럭셔리 브랜드" 렉서스답다. 운전석은 편하다. 엉덩이부터 허벅지까지 충분하게 받쳐준다. 뭐니뭐니해도 이 차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시원하게 뚫린 지붕이다. 3등분돼 접히며 열리는 선루프는 시원한 하늘과 통하는 통로다. 선루프를 다 열면 오픈카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주절주절 디자인에 대해 늘어놨지만 한 마디로 줄일 수도 있다. 전과 동. 즉 RX330과 같은 모양이어서 디자인 변화를 찾기는 힘들다.
▲성능
앞서 말했듯이 숫자, 즉 엔진 배기량의 변화는 이 차의 가장 핵심적인 변화다. 3.3ℓ 엔진이 3.5ℓ로 바뀌면서 최고출력이 276마력으로 43마력 높아졌다. 배기량이 늘어나면 연비는 안좋아지기 마련인데 토요타의 기술은 이 같은 상식을 거스르고 있다. 8.0km/ℓ였던 연비가 8.9km/ℓ로 오히려 더 좋아졌다. 성능과 연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
시동을 걸고 공회전 상태에서는 차 안과 바깥 사이가 이중창으로 분리됐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조용하다. 살짝 흔들리는 rpm 바늘만 시동이 걸렸음을 말해줄 뿐이다. 역시 소리에 관한 한 양보하지 않았음을 절감했다.
바람이 꽤 불어대는 날씨여서 속도를 120km/h 이상으로 올리자 바람소리가 드세다. 사납고 변덕스러운 날씨는 끊임없이 차체를 괴롭혔다. 간간이 바람이 잦아들 때 시승차는 매우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속도를 160km/h 이상으로 높여도 흔들림은 크지 않았고 서스펜션과 타이어는 차체를 거뜬히 받쳐줬다. "조용하고 안정적"인 모습은 "역시 렉서스"였다. 칭찬일 수도, 아쉬움일 수도 있는 말이다.
"펀 투 라이브", 즉 운전하는 즐거움을 느끼기에 이 차는 적합하지 않다. 운전하는 즐거움이란 다른 게 아니다. 운전자가 이것저것 간섭하며 직접 개입해 판단하고 조작하며 그 반응과 소리를 즐기는 데에 펀 투 드라이브의 묘미가 있다. 그러나 이 차는 운전자에게 그렇게 많은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고작 자동변속기를 수동처럼 조작하는 정도만 허용할 뿐 나머지는 차가 다 알아서 한다.
ETC 자동변속기는 주행상황에 따라 변속시점을 달리하며 최적의 주행상황을 만들어주고, 듀얼 VVT-i 엔진은 밸브 타이밍을 정밀하게 조절한다. 비클 스태빌러티 컨트롤(VSC), 즉 자세제어장치는 스스로 알아서 엔진의 구동력과 제동장치를 조절한다. VSC는 심지어 가속 페달을 밟아도 엔진이 반응하지 않게 만들기도 한다. 급코너를 돌아나가면서 가속 페달을 바닥까지 밟아도 엔진은 반응하지 않았다. 차의 흔들림이 지나고 제자리를 찾은 후에서야 엔진이 비로소 회전수를 올리며 힘을 쓴다. VSC 작동을 임시로 해제할 수도 있어야 할 텐데 이 차는 그 게 안된다.
풀타임 4륜구동장치도 그렇다. 구동장치를 조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차가 스스로 알아서 구동력을 배분한다. 운전자는 운전대만 꽉 붙들고 있으면 된다. "운전자는 차를 믿고 편안하게 운전만 해라. 나머지는 차가 다 알아서 한다"는 식이다. 편한데 재미는 없다.
운전석 모릎 에어백을 포함, 모두 7개의 에어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하다.
▲경제성
RX350의 판매가격은 6,960만원이다. 노약자 및 장애인용인 RX350 모빌리티도 있는데 7,300만원이다. 앞서도 말했듯 이 차는 배기량이 높아졌음에도 연비는 훨씬 더 좋아졌다. 이전 모델에 비해 무게가 가벼워진 것도 아니다. 듀얼 VVT-i 등의 첨단 기술에 힘입어 엔진의 효율성이 높아졌다고 봐야 한다.
레이저 크루즈컨트롤, AFS, 에어 서스펜션 등 미국시장에서 적용되는 고급 옵션들은 생략됐다. 이왕이면 미국서 판매중인 앞바퀴굴림 모델을 조금 더 싼 가격에 국내에서도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권윤경 기자 kwon@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