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보지 못한 사람은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아무도 없다. 처음부터 인류는 지구 밖의 다른 외계를 보아 왔다.
2005년 7월, 난 정말 우주를 보았다. 밤이라는 게 곧 우주였던 것이다. UN이 지정한 청정지역 몽골에서였다.
몽골의 수도인 올란바타르(Ulaanbaatar:붉은 영웅이라는 의미). 이 곳엔 뒤늦은 자본주의 영향으로 어설픈 신도시처럼 꼴사나운 건물들이 하나둘씩 더해 들어서고 있다. 이 도시에서는 "여기가 몽골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국색(韓國色)이 즐비하다. 많이 본 자동차와 익숙한 글자들…. 따분하고 지겹기 그지없다. 이 곳에 온 지도 어언 5년. 아직 도시를 그리고 일을 떠나 그 깨끗하기 그지 없다는 몽골을 느껴본 적이 없다.
어느 날 시공을 초월할 기회가 생겼다. 여행을 가게 된 것이다. 비가 온 뒤라 질퍽해진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4륜구동차 오프로드 여행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건 지금 생각해봐도 내 인생 전후를 통해 몇 번 없을 기회였다.
아침 해가 채 인사도 하기 전 우리는 도시를 마치 도망치듯이 순식간에 빠져 나왔다. 우리를 태운 자동차는 달리는 포장도로마저도 도시의 잔재로 생각했는 지 엄청난 엔진 소리를 내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려 그 기나긴 해가 질 때쯤에서야 도시의 냄새를 피할 수 있었다.
안내자인 내가 아니라 마치 자동차의 안내를 받듯이 남쪽으로 남쪽으로 그저 태양만 보고 내달리다가 질퍽한 길을 만나고서야 멈췄다.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는 시간은 저녁 10시30분. 안내자의 생각보다 훨씬 더 멀리 온 이 곳에는 게르(Ger, 몽골의 전통 이동식 천막 가옥)캠프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너무 멀리 와버린 낯선 땅에서 이제 그 원망의 대상은 안내자였으나 모두들 내색하지 않는다. 오히려 즐거워하며 그 야생같은 벌판을 찬송했다.
자동차를 벽처럼 두르고, 그 가운데 가져온 장작으로 모닥불을 피워 놓고 라면을 꺼내 끓여 먹는데, 그 맛이 모두 탄복할 정도였다. 여기에다 보드카의 힘을 빌어 서먹한 사이가 오손도손 이야기꽃을 피우는 동무가 됐다. 그 기나긴 이야기꽃과 내일에 대한 화려한 기대들은 장작이 다 탄 뒤에야 끝났고, 이내 텐트로 들어가 모두들 잠을 이뤘다.
아침 해는 초원에 촉촉히 젖은 이슬같은 빗방울을 금방이라도 증발시킬 것처럼 강렬히 내려쬤다. 우리가 도착할 곳은 거대한 절벽들로 이뤄진 ‘욜링암(Yolin am, 독수리계곡)’으로 남고비에 형성된 커다란 암산, 암벽지대다. 고비라는 지역은 사막지대로 아시아 최대의 사막이다. 사막이라는 용어로 쓰이는 단어가 바로 이 ‘고비(Govi)’.
참가자들은 각자 고비에 대한 여러 해석을 내놓는다. 가장 우리의 이목을 끈 익살스런 해석은 한 고비, 두 고비에서 나온 말이라는 주장이다. 중동, 아라비아 사람들은 사막을 시련과 성장, 고독, 죽음 등의 의미로 새기며 사막에 대해 신비감을 갖는다. 그들이 말하는 사막은 우리가 말하는 그냥 모래가 있는 사막이 아닐 것이다. 더 이상 생명이 없는 곳을 사막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몽골의 고비지역 사람들은 고비를 경계선으로 생각했다. 고비사막에서 신기한 점은 사막과 초원 사이에 실개울이 흐르고, 그 경계가 아이러니하게도 물길로 나뉘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욜링암으로 들어가기 위해 처음 맞는 사막, 고비였다. 고비는 몽골국에서 지정한 국립공원단지로 이 곳에는 여러 체계있는 게르형 캠프장, 방갈로가 많이 형성돼 있다. 우리도 이 곳에 묵을 계획으로 예약된 캠프매니저와 인사를 하고 여장을 풀었다. 매니저는 반갑게 우리를 맞으며 “어제까지 심하게 불던 바람이 여러분들이 오기 바로 전 언제 그랬냐는 듯 멈췄다”며 기뻐했다.
캠프 주변의 목동들은 모두 낙타를 방목하며 시간을 즐기듯 초원에 기대앉아 지나가는 우리에게 한 손을 들어 반갑게 인사한다. 신기한 듯 일행들은 낙타로 달려가 타보기를 소원하자 주인은 흔쾌히 낙타타기를 도왔다. 말과 낙타는 보법(步法)이 서로 매우 다른데, 이는 좌우전후의 발이 모두 엇갈리는 말의 보법과 좌우 각 한 쪽의 전후가 동일하게 나가는 보법과의 차이다. 칭기스한시대 전투마 중 ‘조로모리’라 불리는 궁수의 말 보법이 이 낙타의 보법을 따라 교육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지루한 도시를 떠나 두 번째 밤을 고비에서 보낸다. 우리는 다시 두 번째의 밤을 기념하듯 밤새 축배를 들었다. 취기가 가득한 게르 안을 벗어나 시원한 공기로 가득찬 대지로 나왔다. 모든 캠프장은 불이 꺼져 있고, 주위엔 구분할 만한 어떤 불빛도 없을 무렵 무서울 정도로 놀라운 광경을 발견했다. 무심코 쳐다본 하늘은 우주였다. 사방을 둘러봐도 나만 남아 있는 우주였다. 풀벌레 소리마저 없었다면 난 별들이 반짝거리는 소리를 들을 뻔 했다.
초원 들판에 쓰러지듯 누워 우주를 보고, 그 우주 속의 나를 생각했다. 잠시 후, 난 그 별들이 내 눈 앞 가까이 있는 걸 목격했다. 어떤 별은 멀리, 어떤 별은 바로 코 위에…. 별들은 작고 큰 게 아니라는 걸 순식간에 알아버렸다. 마치 지구에 등을 대고 우주를 보고 있는 것처럼 환상적인 이 광경은 결국 사진에 담아지지 않았다. 그 날 난 초원에서 보드카에 취한 게 아니라 별에 취해 잠들어버렸다.
욜링암에 도착한 건 그 다음날 오후였다. 거대하고 웅장한 암산과 암벽의 자태에 탄복하는 그 순간 찌를 듯한 절벽 계곡의 끝자락에서 독수리 한 마리를 발견한 우리는 섬뜩한 기분까지 느꼈다.
그 곳을 통과한 우리는 다시 동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덜컹거리는 차와 펼쳐진 초원은 우리를 더 빨리 내달리게 만들었다. 광대한 초원 위에 바퀴자국들이 엉켜 마치 차선처럼 된 이 곳을 통과할 때, 기사의 “어떤 곳을 찾아가는 길은 여러가지지만 모든 길은 통한다”는 말에 이 혼돈스런 길 가운데에서 안심할 수 있었다.
동고비에 닿은 우리는 기암괴석이 있는 만달고비지역에서 차가 빠져 어떤 방법으로도 나올 수 없는 큰 낭패를 보게 됐다. 주위에는 인적도 드물어 모두들 긴장하고 있을 무렵, 멀리서 말떼를 몰고 오는 귀인을 목격하고 필사적으로 그를 불렀다. 결국 그의 5마리 말의 도움을 얻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 귀인은 ‘바야라(Bayaraa)’라는 이름의 남자로 2~3km 떨어진 자신의 보금자리로 우리를 안내했다. 이내 우리는 말떼들과 경주하듯이 귀인이 이끄는 방향으로 달렸다.
우리는 그 곳에서 민박을 하게 됐다. 그는 유목민으로 벌써 3대가 부족처럼 살고 있었다. 주인은 객을 위해 서슴없이 음식들을 줄줄이 내왔고, 가족들 속에 동화돼 우리도 그날 ‘바야라(Bayaraa)’씨의 가족이 됐다.
다음 날, 그 짧은 하루의 긴 우정을 뒤로 하고 다시 며칠을 거쳐 올란바타르로 복귀했다. 처음의 자리로 돌아온 우리는 다시 멍해졌다. 그 똑똑하던 도시는 우리를 바보처럼 만들었다. 맥주로 여정을 달래는 자리에서도 우리는 그 여행을 안주삼아 이야기하고, 지금도 모든 화두를 장식하는 추억, 낭만이 됐다. 그 초원과 별, 사람의 냄새는 앞으로도 쉽게 가시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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