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타에 대해 폭스바겐은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유럽차라고 소개했다. 데뷔 이후 세계적으로 660만대를 팔았고, 미국에서는 가장 많이 판매된 유럽차 중 하나라는 것. 미국에서 성공했다고 쉽게 얘기할 수 있으나 가볍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차들이 가장 규제가 까다롭다는 미국시장에서, 천차만별인 고객들의 입맛에 맞추며 성공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매불망 미국에서의 성공을 갈망하며 10년째 고군분투중인 현대자동차를 보면서 미국에서 성공한다는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겠다. 그런데 제타는 성공했단다. 미국에서다.
벤토, 보라는 그 동안 지역별로 사용된 제타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한국에서도 한 때는 보라였다. 다시 제타라는 본래 이름으로 돌아왔다.
제타는 "베이비 파사트"로 불린다. 준중형급이라고는 하지만 엔진 배기량이 2.0과 2.5ℓ이니 한국 기준으로는 중형급 이상이다. 제타 2.5 프리미엄을 시승했다.
▲디자인
이번 제타는 5세대 모델이다. 간결하고 단순했던 모양은 조금 더 둥글어졌다. 유순한 이미지의 헤드 램프, 라디에이터 그릴의 가로줄이 무난함 속에서 나름대로 개성을 나타내고 있다. V형 라디에이터 그릴은 폭스바겐의 새로운 패밀리룩이다. 파사트, 골프 등과 비슷해 보이는 이유다. 옆에서 차를 보면 조금 작다 싶지만 차 길이가 4,550mm로 구형보다 178mm 늘어났다. 확대된 길이는 대부분 실내공간에 사용됐다. 뒷모양은 간결하지만 힘있는 모습이다. 리어 컴비네이션 램프에는 LED가 적용됐다. 시대흐름을 충실히 따르는 세련된 디자인이다.
깔끔하게 정돈된 인테리어는 편안하다. 있어야 할 그 곳에 스위치들이 자리잡고 있어 새 차와 적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따로 필요없다. 기발한 상상력보다는 모두가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인테리어를 지향했다. 센터페시아를 보고 있으면 마치 흑백사진을 보는 것 같다. 뒷좌석은 6대4로 접을 수 있다. 수납공간은 여유있을 뿐 아니라 핸드백이나 쇼핑백 등을 걸 수 있게 세심한 배려를 했다. 쇼핑백걸이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큰돈 들이지 않고도 자상한 마음 씀씀이로 고객 얼굴에 미소를 머금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무 것도 아니지만 따지고 보면 그런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 상품 이미지를 좌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플레이보이는 폭스바겐을 싫어한다는 농담이 있다. 조수석을 누이려면 둥근 레버를 한참 돌려야 한다. 레버를 젖히면 바로 넘어가야 제대로 작업이 이뤄질텐데 레버 돌리다가 날 새고 만다는 얘기다. 반대로 플레이보이를 경계해야 하는 요조숙녀라면 폭스바겐을 믿어도 되겠다. 제타 역시 마찬가지. 조수석을 누이려면 시트 모서리에 손을 넣고 한참을 돌려야 한다.
▲성능
제타는 제트기류를 말한다. 그래서 이 차의 한국 출시행사 때 항공기 컨셉트를 응용해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그런 선입견이 생겼는 지도 모른다. 속도를 높이면서 가장 먼저 바람소리가 귀에 닿는다.
브레이크 반응은 약간의 적응시간이 필요하다. 운전자에 따라서는 브레이크가 민감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초기반응이 빠른 편으로 운전하는 동안 쉽게 적응할 수 있을 정도다.
2.5ℓ 엔진에서 터지는 파워는 150마력. 여기에 6단 팁트로닉 변속기가 맞물리면서 만만치 않은 힘이 효율적으로 발휘된다. 0→100km/h가 9.6초로 빠른 편은 아니지만 여유있는 파워는 깊이가 있어 탑승객의 편안함을 보장한다. 순발력있는 움직임은 오히려 2.0ℓ 터보 FSI 엔진이 앞선다. 0→100km/h 7.2초, 최고속도 235km/h로 2.5 엔진을 앞선다. 2.0은 성능을, 2.5는 중량감있는 승차감을 지향하다고 봐야 하겠다.
여유있는 파워는 시속 100km을 지나도 탄력을 잃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시속 160km를 넘기면서 긴장감이 다소 느슨해지기는 하지만 시속 180km까지는 쉽게 가속할 수 있다. 200km/h에의 도전은 쉽지 않다. 도로사정, 가속력 등이 얽혀 쉽게 200 고지를 허락하지는 않는다. 끈질기고 집요하게 공략하면 물론 가능하다. 그러나 왜 그렇게 빨리 달려야 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시속 160~180km 구간에서 운전자가 큰 불안감없이 운전할 수 있으면 세단으로 필요한 성능은 충분히 확보했다 할 수 있다. 그 이상은 허세고 욕심이다.
서스펜션은 단단한 편이다. 일반도로에서의 코너는 전혀 부담없이 돌아나간다. 젊은 취향이다. 물렁거리는 푹신함을 찾는다면 이 차는 아니다. 단단한 성능에 여유있는 승차감. 합리적인 차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대목에서 ‘역시 독일차’라는 감탄이 나온다. 성능, 합리성, 각 부분의 조화가 ‘역시 독일차’다. 코너에서 차의 반응이 좋은 건 서스펜션에 힘입은 바 크겠지만 차의 비틀림 강성이 우수한 점도 크게 작용한다. 차의 골격이 휘거나 비틀리지 않고 흔들림없이, 혹은 그런 움직임이 적게 코너를 돌아나간다는 말이다. 회사측은 이 차의 비틀림 강도를 15% 이상 개선했다고 강조했다.
전동식 스티어링 휠은 무게감이 있다. 전동식 파워 스티어링은 연비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이 차의 스티어링 시스템에는 직선운행 교정기능이 있다. 도로의 경사면을 스스로 인식하고 기울어진 반대방향으로 스스로 운전대를 움직여 항상 직진성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똑똑한 차다.
이 차의 사이드미러는 전동 접이가 안된다. 이 부분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래도 수입차인데 그 정도는 있어야 할까. 아니면 합리성을 강조하는 준중형급인데 굳이 그런 장치까지 필요할까. 판단은 소비자들의 몫이다.
▲경제성
제타는 2.5 프리미엄과 컴포트, 2.0 TFSI로 라인업을 이룬다. 2.0이 가격도, 성능도 2.5를 뛰어넘는 흔치 않은 차종이다. 2.5 컴포트가 가장 싼 3,090만원, 프리미엄은 3,720만원. 이에 반해 2.0 TFSI는 4,410만원이다. 일반인들이 보기엔 조금 헷갈리는 라인업이다. 작은 엔진이 비싸고 성능도 좋은 반면, 큰 엔진이 오히려 싸게 팔린다.
제타 2.5의 연비는 10.1km/ℓ로 배기량에 비해 우수한 편이다. 경제성을 고려하면 2.5가, 달리는 재미나 운전하는 맛을 더 많이 원한다면 2.0을 택한다는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둘 중 하나를 고르는 시험문제에 제시된 ‘보기’들이 그리 나쁜 편이 아니다. 어떤 선택을 해도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판단한다면 괜찮은 차로 자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권윤경 기자 kwon@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