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안트는 영어로 "variable"의 독일식 표현이다. ‘다양한’이라는 의미를 담은 말이다. 이름에 ‘바리안트’를 붙인 자동차가 있다. 폭스바겐 파사트다. 파사트의 왜건형으로 ‘파사트 왜건’으로 불러도 좋을 차다.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처럼 많은 자동차메이커들이 왜건을 왜건이라고 하지 않는다. "바리안트", "에스테이트" 등으로 돌려 말한다. 왜건이라는 단어를 피하는 이유는 왜건이 갖는 ‘짐차’라는 이미지 때문이다. 그래서 화물용이라는 분위기가 강한 왜건 대신 승용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바리안트나 에스테이트라는 이름을 쓰는 것. 이름이 주는 분위기로 호감을 불어넣기 위해 “왜건 말고 바리안트”로 이름을 지은 것이다. 자동차에서 이미지가 갖는 중요성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한국에서는 왜건이라는 단어를 피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왜건으로 성공한 차가 없어서다. 왜건이 원래 틈새차종으로 많이 팔리는 차가 아닌 건 분명하지만 그래도 한국시장에서는 왜건이 특히 약했다. 국산 왜건은 물론 수입 왜건 역시 재미를 못봤다. 한국시장이 내용보다 형식을 중시하는 특성이 유난히 강한 탓이다. 파사트 바리안트를 탔다.
▲디자인
제타와 페이톤 사이. 폭스바겐의 라인업에서 파사트의 자리다. 페이톤에 이어 넘버2의 자리를 차지하는 모델이 파사트다.
C필러를 따라 흘러내리는 트렁크 라인이 사라지고, 대신 쭉 뻗어나간 지붕이 D필러에 달린 스포일러를 지나 살짝 라운드를 그리며 아래로 꺾인다. 뒷유리를 기울게 처리했다. 바리안트, 즉 왜건은 이 트렁크 공간이 포인트다. 세단이 아닌 바리안트인 이유가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세단보다 단단해 보인다.
전체적으로 디자인은 폭스바겐의 패밀리룩이 적용됐다. 골프, 제타, 파사트 등 각각의 모델 이름을 떠올리기보다 그냥 ‘폭스바겐차’라는 이미지가 먼저 생각날만큼 모델 각각의 개성보다는 폭스바겐의 아이덴티티가 더 강조된 모양이다. 라디에이터 그릴의 크롬 적용은 보는 사람에 따라 호, 불호가 갈린다. 깔금해 보일 수도 있고, 덜 고급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인테리어는 고급스럽게 마감했다. "무늬목=고급"이란 등식을 그대로 적용한 인테리어다. 고급차에 내비게이션 모니터가 없는 건 아쉽다. 센터페시아를 보면 당연히 있어야 할 게 빠져 있는 데서 오는 허전함을 느낀다. 뒷좌석을 접으면 짐을 싣는 트렁크 공간까지 완전히 평평한 바닥을 만들 수 있다. 침대로 이용할 수 있을 정도다. 왜건이 누릴 수 있는 장점이다.
이 차는 어쩌면 "세단 말고 다른 차"를 찾는 이들에게 어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단은 지겹고, 그렇다고 SUV로 옮겨 타자니 부담스럽고, 그 사이의 마땅한 대안을 찾는 이라면 이 차가 눈에 띌 법하다. 세단의 지루함을 벗어버린 모습이기 때문이다.
▲성능
먼저 짚어야 할 건 왜건에 대한 기준이다. 즉 스포츠 세단이거나 고성능 세단이 추구하는 가치와 왜건의 그 것은 다르다. 또 달라야 한다. 2인승 스포츠카라면 달리고, 돌고, 서는 본능에 충실해야 한다. 패밀리카로 쓰는 왜건이라면 달리고, 돌고, 서는 본능보다 편안함, 안락함, 안전, 유용한 기능 등이 좀 더 가치있는 덕목이다. 즉 성능보다 ‘기능’ 혹은 ‘안전’이 중요한 게 왜건이란 차다.
시동을 걸 때 운전자가 놓치는 곳이 있다. 헤드 램프다. 시동을 켜면 헤드 램프가 살짝 움직이며 자리를 잡는다. 마치 눈을 껌뻑하는 것 같다. 운전대를 돌리는 방향으로 빛을 비추는 기능도 물론 있다.
먼저 짚고 가는 대목에서 짐작했을 지 모르지만 달리기 성능은 왜건답다. 스포츠카의 날쌘 몸놀림을 기억한다면 이 차의 운전석에서는 조금 답답함을 느낄 지 모른다. 디젤차도 날아다닐 정도로 빠른 세상에 이 차는 느림의 미학에 취한 듯 빨리 달리기를 거북해한다. 계기판은 시속 260km까지 표시됐으나 160km/h를 넘기면서부터 힘겨워한다. 가속 페달을 힘줘 밟을 필요는 없다. "왜건"임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여유있게, 천천히, 부드럽게 차를 다루면 즐거운 달리기를 할 수 있다. 더 나은 성능을 원한다면 200마력짜리 엔진을 올린 2.0 TFSI 모델을 택하면 된다.
크루즈컨트롤은 장거리 운전중에 가끔 써먹을 만하다. 특히 시속 10km는 물론 1km 단위로 속도를 조절해 고정시킬 수 있어 좋다.
2.0ℓ 150마력 엔진에 6단 변속기는 부드럽게 차를 움직이는 데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엔진과 변속기가 최적의 궁합은 아닌 듯하다. 굳이 6단이 아니어도, 혹은 엔진이 좀 더 파워풀해도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는 조합이다.
왜건이 되면서 파사트의 체중은 불어났다. 공차중량 1,680kg은 보통의 세단보다는 무거운 몸이다.
변속기에는 오토홀드 기능이 있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 차가 정지할 때 자동으로 사이드 브레이크가 작동하는 것. 가속 페달을 밟으면 사이드 브레이크는 저절로 해제된다. 급제동할 때 차가 알아서 비상등을 켠다. 똑똑한 차다.
일반적으로 왜건은 뒤쪽 서스펜션을 강하게 세팅한다. 짐을 실었을 때 차의 높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파사트 바리안트는 강한 서스펜션을 느끼기 힘들다. 커브에서 하체를 단단히 잡아주며 감칠맛나게 달렸다. 승차감도 우수한 편으로 왜건에 대한 우려를 씻어준다. 짐과 사람을 가득 실었을 때 어떤 반응이 나올 지 궁금하다.
▲경제성
파사트 바리안트는 오늘 시승한 FSI와 2.0 TFSI 그리고 디젤엔진인 2.0 TDI 등 세 종류가 있다. 판매가격은 FSI가 4,210만원, TFSI가 4,680만원, TDI가 5,250만원이다. 수입차시장에서는 비교적 낮은 가격대에 포진했다. 특히 FSI의 가격 4,210만원은 수입차에 대한 막연한 심리적 저항을 무마할 수 있는 가격대가 아닐까 싶다.
연비는 10.9km/ℓ로 1.6t에 달하는 체격을 볼 때 칭찬할 만한 수준이다. 왜건의 무거움을 FSI라는 엔진기술과 6단 변속기 등이 어울려 극복한 연비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권윤경 기자 kwon@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