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자동차들이 고급을 지향한다. "싸구려"라고 말하는 차는 없고 모두 나름대로 고급이며, 럭셔리한 부분이 있다고 강조한다. 소형차에서조차 합리성보다 고급스러움이 강조되는 걸 보면 조금 심하다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런 현상은 고급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그 만큼 많다는 걸 반영한다.
럭셔리 세단의 수준을 알려면 누가 그 차를 타는 지 보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다. 물좋은 구역을 관리하는 조폭이 타는 럭셔리 세단이 있는가하면 내로라하는 기업체의 CEO가 타는 차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가 그 차를 타는 지 보고 “나도 그 차를 타야겠다”고 마음 먹기도 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면에서 왕이나 대통령이 타는 차는 "최고의 차"라는 소리를 듣기 마련이다. ‘대통령이 타는 차’라는 말 한 마디면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롤스로이스가 영국 황실의 차라면 캐딜락은 "대통령의 차"다. 부시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캐딜락을 이용했고, 한국에서도 캐딜락은 오랫동안 대통령의 차였다. 1911년 순종이 구입해 타고 다녔다는 차도 캐딜락이었다.
그 캐딜락의 플래그십 모델은 DTS. 최고의 캐딜락이다. 캐딜락 중의 캐딜락, DTS를 탔다.
▲디자인
힘세고 강한, 덩치 큰 미국인의 이미지가 캐딜락에도 그대로 묻어 있다. 길이가 5.3m에 달하는 거구다. 휠베이스만 3m에 조금 못미친다. 무게가 1,870kg이니 두 사람이 약간의 짐을 들고 타면 2t이 넘는다.
한 눈에 캐딜락임을 알 수 있을 만큼 DTS 역시 최근의 캐딜락 디자인의 패밀리룩에 충실한 모양이다. CTS와 STS를 나란히 세워 놓고 보면 이들 3총사가 형제임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이 차에는 HID 제논 헤드 램프가 적용됐다. 헤드 램프와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는 세로로 배치됐다. 특히 수직으로 세워진 리어 램프가 인상적이다. 앞뒤로 붙여 놓은 캐딜락 엠블럼이 다소 화려한 듯 하나 이들 제외하면 단순하고 꾸밈없는 디자인이다. 기교를 부리지 않은, 단순함에 캐딜락의 이미지로 승부를 걸었다. 트윈 머플러가 좌우로 배치돼 모두 4개의 배기구를 갖췄다. 4.5ℓ가 넘는 배기량에 어울리는 모습이다.
인테리어는 알차다. 무늬목과 가죽이 적절하게 어울리며 야무지게 마무리됐다. 틈새가 치밀하고 몸에 달라붙는 인테리어임을 앉아보면 알게 된다. 운전석에서 모든 스위치들을 조작하기 쉽고 게이트 방식의 변속기 레버도 손에 착 감겼다. 무엇보다 공간이 넉넉해 마음도 한결 여유롭다. 럭셔리 세단의 뒷좌석에 몸을 파묻고 창 밖을 내다보는 기분은 괜찮았다.
앞뒷모습을 한참 보고 있노라면 이 게 차가 아니라 하나의 건축물같다는 생각도 든다. 세로로 곧추선 부분들이 기둥처럼 보이고, 단조롭지만 격조있는 지붕을 얹어 놓아 잘 만들어진 건축물같다.
▲성능
덩치 큰 차를 운전하기는 사실 성가시다. 좁은 주차장, 밀리는 도로, 끼어들어야 하는 상황 등에서 절대 불리한 체구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캐딜락이 좋은 이유는 차 임자는 대개 뒷자리에 있어서다. 불편한 건 운전기사이고 차 오너는 편하게 앉아 있는 것이다. ‘쇼퍼 드리븐 카’의 전형이다.
노스스타 V8 4.6ℓ 엔진에 자동 4단 하이드로-매틱 변속기의 조합은 다소 의외다. 5단도 아닌 4단 변속기이기 때문. 이미 검증된 엔진과 변속기의 안정된 조합을 유지하는 편을 택했다고 보고 싶다. 어쨌든 이 파워트레인은 291마력에 39.6kgㆍm의 토크를 낸다. 배기량에 비하면 출력이 그리 강한 편은 아니다. 엔진 배기량 1ℓ당 63.3마력이 나오는 셈이어서 효율적이지 않다.
그러나 힘의 질은 다르다. 터보나 인터쿨러 등을 이용해 억지로 힘을 늘린 엔진에서 나오는 거친 파워와 달리 부드럽고 끈기있게 터지는 출력은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배기량이 작은 엔진이라면 효율을 따져가며 출력을 높이려 했겠으나 배기량이 큰 엔진이니 억지로 힘을 끌어올릴 이유가 없다. 그러지 않아도 필요한 만큼의 파워를 충분히 얻을 수 있어서다. 실제로 부드럽지만 힘있는 가속감은 이 차만이 갖는 묘한 매력이다. 거칠고 폭발적인 야성의 힘이 아니라, 부드럽지만 뒷심이 강한 힘이다. 맨주먹이 아니라 글러브를 낀 펀치를 연상케 한다.
캐딜락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출렁거림을 연상할 지 모르겠다. 캐딜락은 덩치 큰 미국차를 연상시키고, 이는 다시 물렁한 서스펜션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이 차의 서스펜션이 부드러운 건 맞다. 급한 코너에서는 스티어링 휠보다 브레이크에 의지하며 탈출하는 게 편하다. 그러나 소프트한 서스펜션이 이상하게 잔진동이 없다. ‘쿵’하고 1차 쇼크를 받고 나면 두세 차례 진동이 남기 마련이지만 DTS에는 이 게 없다. 한 차례 충격이 전부다.
럭셔리 세단에 맞게 실내는 조용했다. 120km/h에서나 160km/h에서나 소리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DTS는 6개의 기본 에어백을 장착했고, 앞좌석에는 충격강도에 따라 팽창력이 달라지는 듀얼 뎁스 에어백을 적용했다.
▲경제성
DTS는 GM을 대표하는 대형 럭셔리 세단이지만 판매가격은 유럽산 고급 중형차 수준에 불과한 9,980만원이다. 연비는 6.7km/ℓ로 3등급이다. 1억원을 밑도는 가격에 ‘대통령의 차’를 탈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인 제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미국차’라는 것 때문에 이 차를 꺼리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영철 GM코리아 사장은 고객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시승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타보면 잘못된 선입견을 씻어내고 이 차의 가치를 알게 될 것이란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직접 타본 입장에서 일정 부분 이 말에 동의한다. 사람들의 막연한 거부감을 걷어내는 데 시승은 큰 효과가 있겠다. 하지만 좀 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시장에서 GM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서다. “좋은 차를 너무 못파는” 상황이다. 적극적으로 시장을 공략해 이 보다 몇 배의 성적을 내야 캐딜락의 명성에는 걸맞다. 저평가된 지금이 오히려 기회일 수 있는 건 그 만큼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권윤경 기자 kwon@autotimes.co.kr